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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Sep 26. 2024

천지개벽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아이

  내가 오늘 천성이에게 연락한 이유는 오늘이 부모님 기일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크리쳐 레이드에 피해급과 재해급으로 나뉘게 된 최초의 재해급 크리쳐에 휘말려 돌아가셨다. 그 최초의 재해급 크리쳐는 아직까지도 도시민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10월의 푸스웨일]]이다. 10월의 어느 날, 비가 장대처럼 내리던 그 어느 날 하늘이 열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일대가 잠겨버렸다. 크리쳐에게 직접적으로 당한 것도 아닌 간접 피해로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나는 학교에서 CIS 국제연구센터로 견학을 간 상황이었고, 천성이는 나와 떨어진 상태였을 테니 아마 트리플S 길드에 있었거나 레이드에 참여했겠지만, [[10월의 푸스웨일]]이 남긴 흔적은 천지개벽이었다.


  "푸스웨일... 당연히 기억합니다. 저도 그 레이드에 참여했었거든요.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기억하고 있다는 천성이는 조용히 입을 다문다.


  최초의 재해급이었으니 처치까지 9일 하고도 21시간이 걸렸다. 원래라면 짧게 끝났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9일 동안 낙하한 크리쳐는 [[10월의 푸스웨일]]만이 아니다. 크리쳐는 하늘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죽어나간 능력자만 최소 2천 명이고, 능력자가 죽으며 폐쇄된 소규모 길드만 해도 수백은 된다. 크리쳐가 낙하한 곳은 산업 A구역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꽤 지나며 연결되어 있는 거주 A구역으로 이동하면서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 이후 [[10월의 푸스웨일]]을 처치하면서 CIS 국제연구센터에서는 기억하자는 의미로 사망자의 명단을 공개했다. 12만 명의 시민 사망자가 발생했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피해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5만 개의 구를 찾아 총 17만 명의 사망자와 능력자 2천 명의 희생으로 [[10월의 푸스웨일]] 레이드는 끝났다.

  나는 CIS에서 명단을 공개했으니 당연히 천성이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전에는 오늘처럼 내가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하면서 그날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연락하지 않았다. 알고 있겠거니 알아서 찾아오겠지 안일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다. 매년 홀로 이곳을 찾아왔지만, 오늘 천성이로부터 들은 것이 진짜라면 연락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애초에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그의 대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응. 부모님은 그때 휘말려서 돌아가셨어. 나는 학교에서 견학을 간 상황이었고, 부모님은 어디에 있었는지는 나도 몰라. 그냥 그 일대 어딘가에 돌아다니다가 물에 잠겨 돌아가셨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거에 두려웠고, 하지만 능력자들이 버텨주길 바라면서 기도했지만, 내게 찾아온 건 기나긴 이별이었지."

  우리는 길을 천천히 걷는다.


  "그러면 제게 왜 연락 안 했어요? 뭐가 되었든 오늘처럼 만나볼 수는 있었을 텐데.."


  "나는 네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피해복구가 진행되기 전 공개된 1차 사망자 명단에서 부모님의 이름도 있었으니까. 네가 당연히 봤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겨진 레이 드니까. 희망이라 불리던 도시에게 크나큰 지옥을 안겨준 일이었으니까. 아직도 그 일대를 지나다니다 보면 소름이 끼치고 그래. 그리고 심지어는 그날의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센터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알 수 있지. 그래서 연락하지 않았어. 미안해, 늦게 연락해서."

  나는 조용히 천성이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그대로였다.


  "죄송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서. 부모님이란 존재도, 형이라는 그쪽의 존재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도 제가 모르는 저의 과거 속 오늘이 중요한 날이라고 하니 가보죠. 그곳에서 무언가 알게 될 수도.."

  그가 먼저 앞장선다.


  "그래, 가보자."


  우리는 천천히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승천묘각 升天墓閣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기와집들을 지나 어느 큰 문에 도달했다. 나무패에 적힌 이름은 승천묘각이었다. 이곳은 고어용문에서 하늘에 오른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다.

  공동묘지 등의 자리는 아니고 추억을 담을 수 있도록 고어용문에서 직접 설계한 안치실이다.


  "우리는 C결연계로 들어가면 돼. 저쪽이야."

  나는 천성이의 손을 잡고 끌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그.


  "뭐 해?"

  천성이가 무언가 열심히 살피고 있다.


  "궁금해서요."

  그가 문 바로 앞에 있는 패드를 열심히 뒤적인다.


  "아... 유호필, 자성희. 부모님 성함이야. 음... 같이 오면 좋겠지만, 너는 트리플S 길드에 소속되어 있고, 능력자니까 레이드로 바쁘겠지. 그러니까 나중에 꼭 혼자서라도 와. 처음부터 내가 알려줄게."

  천성이 곁으로 다가간다. 패드 위로 내 손을 얹자 인식한 듯 정보들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네 정보를 등록하면 너도 나처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정보 등록은 사용자의 혈액을 통해 등록할 수 있어. 누군지 모를 외부인이 엄한 곳에 들어갈 수 없도록 시스템에서 분류하는 작업인데, 내 DNA는 부모님 DNA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너도 등록하면 들어가기 쉬울 거야. 여기에 엄지 손가락을 얹어볼래?"

  나는 사용자 정보 등록 버튼을 누르고 옆의 뚜껑이 열리는 작은 틈을 가리켰다.

  "살짝 따끔해. 혈액을 추출하는 과정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네? 피를요?"

  그리고 갑자기 손을 파딱 세게 쳐낸다.


  "아, 깜짝이야. 왜, 왜.. 왜? 왜 그래?"


  "피는 안 돼요."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불안해하는 천성이다.


  "하지만 등록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어. 지금은 나랑 동행인으로 인식되겠지만, 맨날 나랑 같이 올 수 없잖아."


  "괜찮아요, 같이 올 거예요. 그리고 피는 안 돼요. 그냥 안 돼요, 안 돼."

  천성이가 빠르게 내 팔을 잡아 끈다.


  능력자고, 레이드도 많이 참여했으니 피를 무서워하는 건 아닐 테고, 왜 그렇게 불안한 눈빛이었을까. 괜히 걱정스럽다. 트리플S 길드에서 못된 짓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레이드에서 무언의 트라우마라든지, 좋지 못한 기억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부스럭.


  천성이가 한참을 들여다본다. 별 것 없이 그저 사진 몇 장과 부모님의 유골이 담긴 나무상자, 그리고 가족의 추억이 남아있는 칩케이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보인다.


  "10월의 푸스웨일 레이드 희생자면, CIS에 따로 추모비가 있을 텐데 거기로 보내지 않고 왜 이곳에 옮겼어요? 그곳이 더 지원이 빵빵하고, 더 관리될 텐데..."

  천성이의 고민이 뭔지 알 것 같다.


  "그 추모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아?"

  맞다. CIS 국제연구센터는 레이드에 휘말린 모든 희생자들을 위해 추모비를 만들었다. 도시 어딘가에 희생자들을 묻고, 그 위에 추모비와 공원을 만들었지. 하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것들이 있다. 유가족들에게만 공개된 것들.


  "CIS 국제연구센터 아닌가요?"


  "그러게, 거기였다면 당연히 나도 동의했겠지. 정확히는 문화보존기구 박물관이야. 그 역사박물관에 이름 없는 작은 공원이 바로 추모 공원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위치는 몰라. 박물관 옆 공원이 어디 한 두 개겠니. 그리고 CIS는 희생가 유가족들에게 이런 최대의 레이드는 반드시 미래에 남겨야 한다고, 기억을 남기자고 박물관에 전시를 한다는 동의서를 받았어."

  다시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그게 무슨 문제... 아, "


  "역시 넌 알고 있을 것 같았어. 문화보존기구 박물관에서 역사를 보존하는 방법은, 문화를 보존해 전시하는 방법은, 기억 추출이더라고. 보존 5법칙에 따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가장 최고의 방법은 기억 등의 것들을 뽑아내는 것. 홀로그램, 책, 음성, 영상 등의 모든 기록물은 불투명한 과거의 기억을 뽑아내 직접 파헤치며 투명하게 만드는 것. 그때 그 사람들이 이 과정을 뭐라고 이름을 말했던 것 같은데,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거라서 잘 기억나지는 않네... 역사박물관에 전시될... 아니, 어쩌면 박제될 부모님의 모습을 보자니, 오늘 같은 날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나의 슬픔을 들키고 싶지 않았어.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최선의 선택은 '절대 안 돼'였어."

  우리 옆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유품들이 보인다. 누구의 것인지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없어진 그 자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나 말고도 거부한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고. 박물관에 전시해도 된다는 선택을 했을 땐 CIS에서 보상한다고 했나 봐. 헉, 소리 날만한 정도였다는데 부럽지 않더라고. 이런 곳에 사람들 눈에 그저 과거로만 남기고 싶지 않아서 여기로 옮긴 거야. 원래는 집에서 갖고 있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삶이 너무 우울해서 찾고 찾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생령방울."

  천성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그랬어."


  "그래도 여기 묘각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을텐데..."


  "고생 좀 했지.. 좋은 연이 닿아서 이곳에 옮길 수 있었어. 너의 그 '형'이란 답처럼 나도 누군가를 만났어. 절대 잊을 수 없을 우연이었지. 그 사람에겐 필연이었을지 몰라도."


  승천묘각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고어용문의 묘각이다. 고어용문은 고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을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적으로 알려진 모습이다. 매년 오늘이 되어 찾아올 때면 나는 알 수 있었다. 여긴 CIS 국제연구센터에 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걸 말이다.

  고어용문에서 연구하는 학문으로는 고대어가 있다. 고대어라 함은 도시가 세워지기 이전의 모든 언어를 뜻한다. 도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연결되어 대화가 통하기 때문이다. 고어용문에 자유롭게 드나들기 위해서는 고대어를 한 가지라도 반드시 알고 있거나 모르는 도시민들을 위해 학당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입학 후 반드시 졸업해야만 출입할 수 있다. 그 정도로 경계가 심하고, 특별히 CIS 국제연구센터의 모든 일들을 따지고 들들 볶으며 매일같이 언론에 등장하는 사상집단이다. 그럼에도 범죄집단이라 인식되지 않는 이유는 CIS에서 합법적인 집단이라 공식 인정했고, 또 고대어의 해석으로 도시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했기에 교류가 있으면서도 절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특별히 승천묘각은 CIS 출신이거나 가족들은 출입이 불가능했다. 학당에 입학하고 졸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금지하고 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장소이고, 마치 보물이라도 숨겨 놓은 듯한 곳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부모님을 담아둘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의 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 말로는 필연의 연으로 내가 본인을 찾아왔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라며 콧웃음 치는 그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누구?"


  "있어, 그런 사람. 참 이상한 사람."


  띵, 띵, 띵.

  천성이의 폰에서 소리가 난다.


  "급한 연락이야? 먼저 가려면 가도 돼. 나는 여기 더 있다가 갈게."


  연락을 확인한 천성이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봤다.

  "여기에 다른 입구 있어요?"


  "아니? 왜?"


  "제가 연락하기 전까지 여기서 절대 나오지 마요. 절대로."


  "왜? 무슨 일이야? 근처에 크리쳐가 떨어졌어?"

  질문에 답을 않고, 천성이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길드에서 활동해 왔다면 걱정이 된다. 무슨 연락이었을까. 나가서 볼까, 아니면 기다릴까.






커버이미지: 미리캔버스 AI 드로잉 '조용한 한옥 거리'

사진1 (기와): 미리캔버스 AI 드로잉 '한옥 차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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