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뜨 Sep 22. 2024

헛된 꿈

나는 모르는 그가 나를 안다.

  씨앗을 가장한 폭발을 퍼뜨리는 사자의 모습을 한 민들레 크리쳐는 [재해급 크리쳐 데인델라이온]이었다. 크리쳐는 피해재해으로 나뉜다. 피해급은 피해 정도로만 끝나는 사망자 없는 규모의 레이드를 뜻하고, 재해급은 사상자의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큰 레이드를 뜻한다. 재해급 크리쳐는 지정 기준에 아예 크리쳐가 정해져 있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서 많이 없지만, 허브라 일컬어지는 공격성 없는 기괴 존재였던 일루젼피쉬를 단번에 뭉개버리며 등장한 방금의 데인델라이온은 꽤 놀라웠다. 


  "어디 가요?"

  나와 함께 박물관을 찾아온 앤티크의 리더인 '슈아'였다. 그녀는 트리플S 길드의 소속 길드원들 답게 S 등급 능력자로 셀리나 다음의 길드장으로 거론되고 있을 만큼 꽤 강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왜 내 옆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따라오지 마세요.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레이드는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일에 집중하셨으면 좋겠네요. 당신의 고백 따위 필요 없으니까."

  나는 괜한 논란거리 만들고 싶지 않다.


  "천성... 씨. 왜 이렇게 딱딱하게 말해? 우리 사이 이렇지 않았잖아. 내 고백이 아니라 이건 길드에서도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 트리플S가 한 번 더 도약하자는 거, 누구도 따라잡지 못하도록. 도시는 우리,"


  "슈아 씨. 저는 원래 이랬습니다만. 공적인 자리에서 예의라는 것 좀 갖추시죠?"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제 말 한 번이라도 들어주세요."

  그녀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왜 길드에서 나가려는 거죠? 트리플S 길드는 서포터 천성 씨를 잘 이끌어줬어요. 아주 화려하게 데뷔시켜 줬다고요. 그동안 있었던 모든 레이드와 행사들, 트리플S 길드를 바라보는 팬덤과 그의 많은 소속 그룹, 그리고 지금은 해체되어 없지만 많은 선배님들까지. 천성 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요. 유천성 서포터는 트리플S 길드의 아이덴티티예요. 절대로 이렇게 나갈 수 없다고요. 이건 저만의 마음이 아니라 셀리나 님의 선택도 담겨 있어요. 더 좋은 조건이면 될까요? 돈이 더 필요하신가요? 무엇이 더 필요하죠? 조건에 맞춰드릴게요. 계약서도 다시 쓰죠? 필요하다면 제 부길드장의 자리도 내어드리겠습니다."

  슈아가 절절한 목소리로 내 손을 놓지 않는다.


  "하, 이끌어 줬다고요? 뭘요? 제 앞길을? 어떻게 말이죠? 지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는 망가져왔어요. 제 삶은 없었다고요. 트리플S 길드는 제 앞길을 막았어요. 제가 살고자 했던 모든 추억을 산산조각 내버렸죠. 그건 이끌어 준 것이 아니라 가시밭길 위에 저는 내동댕이 쳐진 것에 불과해요. 제 가족들은 어디 있죠? 제 친구들은 어디 있죠? 제 사랑하는 추억은 어디 있죠? 말하세요. 당신은 방관했을 뿐이라고. 트리플S 길드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서 셀리나 길드장과 당신, 그리고 수많은 길드원들까지 모두 저를 방관했어요. 제가 아픔에 고통스러울 때마저도 그 누구도 옆에 있어주지 않았잖아요."

  화가 치밀어 온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겠는가. S급 길드원 사이에서 고작 A 등급 따리 서포터가.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고요? 저희는 모든 시간 속에 닫히지 않은 현재의 시간 속에 천성 씨와 함께했어요. 모르는 소리 말아요."


  "네? 옆에 있어줬다고요?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마세요!! 시간 따위 조작하면 그만인 것을. 제가 모를 줄 알았나요? 슈아 씨, 조심하세요. 이건 범죄예요. 셀리나 님께서 제게 주신 정을 봐서 참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만하시죠."

  트리플S 길드에서 나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범죄들을.


  "... 어디까지... 기억하나요, 천성 씨?"


  "그만하죠, 더 이상 트리플S와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가주세요. 제 성의도 여기까지입니다."


  "답해주세요. 어디까지 기억하나요, 천성 씨? 이건 길드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나보다는 여전히 길드인가. 길드의 안전이 중요한가. 포기 못한 듯 보인다.


  "그만, 하라고! 꺾어버리기 전에! 당신이 S급이라곤 하나 저는 서포터입니다. 동시에 업그레이더죠.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켜준다라... 길드 연구소에서 한 연구 리스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업그레이더가 본인의 능력을 업그레이드시켰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궁금한가요?"

  나는 살짝 내려간 안경의 위로 그녀를 쏘아봤다.


  "... 알겠습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찾아오지 마세요. 그딴 범죄집단에 있고 싶지 않으니까. 셀리나 님과도 이미 말 끝났습니다. 동의하셨고, 오늘부터 트리플S 길드와의 연은 끝입니다. 다시 찾아오셔서 또 그딴 소리 지껄이시면 협회에 정식으로 신고접수 하겠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자료는 제게도 있으니 앞으로 모쪼록 조심하시길. 그럼, "


  쾅! 나는 문을 세게 닫았다. 굳게 닫힌 문에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하... 죽고 싶다. 노예처럼 살아왔는지, 삶이었는지, 동물원의 원숭이었는지... 다 필요 없어. 모든 걸 되돌려야 해.'


  나는 레이드를 돕는 서포팅 능력을 가진 서포터다. 서포팅 능력은 딜러들에게도 존재하긴 하지만, 보통은 사용되지 못했다. 그저 무력으로 처치시키기만 하면 되는 레이드에서 강한 자만 데려가려는 길드들의 속내 때문이다. 이에 서포팅 능력만 가진 서포터라니. 나도 시술을 받았을 땐 매우 절망스러웠지. 하지만, 우연의 기회로 지금의 트리플S 길드장인 셀리나를 만나게 되었고, 도시의 비판의 시선들과 함께 길드에서 다른 능력자들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업그레이더로 철저히 길드 보안 아래 자라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트리플S 길드의 이면을 보게 되었다. 앞에서는 시민들의 미래를 밝힌다며 아름다운 목소리와 능력으로 도시의 앞길을 연주했지만, 뒤에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 비윤리적인 일들을 벌이며 능력자들을 사육하고, 굴리며 많은 일들이 있다는 걸 봤다. 하지만 갑자기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지.

  또다시 길드의 이면을 봤다가 또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고, 또다시 길드의 이면을 봤다가 또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뇌는 버티지 못하고 기억은 잊지 않으려 노력했고, 나도 노력했다. 그랬더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나를 향한 트리플S 길드의 거짓 미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능력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굳이 트리플S 길드가 아니더라도 그래도 능력 있는 능력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시술 이후 서포터라는 것을 느꼈을 땐 좌절스럽기도 했지만, 능력자들을 지킬 수 있겠다는 마음에 다시 일어섰던 것이다. 하지만 트리플S 길드는 나를 망쳤다. 가족도 잃었고, 친구도 잃게 만들었다. 

  기억봉인 능력은 말 그대로 기억을 봉인하는 능력이다. 도시에 알려지지 않은 특수 능력자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트리플S 길드에 소속되어 있고, 이들은 능력자들을 우후죽순으로 생산했다. 필요하다면 과거도 지우고, 새로운 신분을 만들고, 외톨이가 되었을 때 마치 구원자처럼 나타난 트리플S 길드처럼 말이다. 아마도 길드의 뒷 이면을 본 나도 수차례에 걸쳐 기억봉인을 당했왔겠지. 내가 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오랜만이지? 천성아..."

  단정한 차림의 남자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를 보며 앉는다. 사람은 내가 집에서 나오기 내게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다. 


  "기억해? 나 누군지?"


  "죄송해요.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봉인된 기억의 저편에서 마치 찾고 있었다는 듯 내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는 '형'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도, 가족도, 사랑했던 것들도.  


  "그럼 아까 왜, '형'이라고 불렀던 거야?"

  내심 기대했던 것 같은 이 사람, 눈빛이 죽는다.


  "느낌이 났어요. 봉인... 아니, 어딘가의 기억에서 익숙한 것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어요. 제게 자신이 형이다, 가족이라며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쪽은 달라요. 뭔가 달라."

  일반인에게 능력자들의 속사정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 뭐... 15년이라는 시간이 길기는 길었나 보네.. 사진 보여줄까? 너 어릴 때 사진 있어. 가족들도 있고, 엄마아빠는... 기억나? 그럼 다른 것도 기억나지 않겠네..."


  "죄송해요."

  부모님... 전혀 기억에도 없다. 봉인의 영향이겠지. 빨리 봉인을 풀 해금자를 찾아야겠어.


  "사진 더 있는데 볼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건네준 사진들 속에는 내가 모르는 나의 과거들이 있었다.


  "그래서 뭐 더 확인해야 될 게 있어? 아니면 나랑 같이 어디 좀 갈래? 오늘 특별한 날이라서 너랑 꼭 가고 싶어서 그래."

  이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디...?"


  나는 그를 따라 길을 나선다. 우리는 가까운 승강장에서 기동차량을 타고 도시의 동남쪽으로 날아가 한적한 곳에 안착했다.

  그리고 보이는 거대한 나무패가 보인다.


승천묘각 升天墓閣


  "고어용문에는 무슨 일로?"


  "오늘 부모님 기일이야. 기억나? 도시에 엄청 큰 레이드가 있었던, 재해급 크리쳐가 최초 나타난 10년 전 그날. 두 분 다 레이드에 휘말려 돌아가셨어. 오늘이 그날이고, 나는 혼자 매년 이곳에 왔었어. 그런데, 오늘은.. 너랑 같이 왔네.. 좋다, 어서 들어가자."

  멍한 나를 이끌고 들어가는 이 사람.






커버이미지: 미리캔버스 AI 드로잉 '모락모락 풍기는 커피'

이전 04화 의문의 연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