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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Sep 19. 2024

의문의 연락,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크리쳐는 기괴 존재라는 대분류에 포함되는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까 공격성을 띤 기괴 존재를 크리쳐라고 부른다. 다르게 말하면 능력자들이 투입되어 토벌의 대상이 되는 기괴 존재를 크리쳐라고 부른다. 그렇다는 건 공격성을 띠지 않은 기괴 존재도 있다는 말이 된다.

  공격성을 띠지 않는 기괴 존재를 지칭하는 말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있다. 바로 초식동물을 뜻하는 단어인 'herbivore'의 앞 글자를 딴 Herb 허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괴 존재들 중 레이드 대상으로 분류되는 크리쳐는 고작 2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피해가 하나 같이 어마어마해서 크리쳐 분류도 2개로 나눠질 뿐이다. 그냥 피해가 적은 크리쳐, 피해가 많은 크리쳐다. 나머지 80퍼센트는 CIS 국제연구센터 산하의 사육센터인 허브에어(Herb Air)에서 사육되고 있다. 또 허브에어에서는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공간으로 물론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허브를 공개하고 있다. 도시에 동물이라고는 인간 밖에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의 대체제로 허브에어에 가기도 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안전하게 집까지 도착한 나는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쯧!"

  해파리의 촉수가 찐뜩하게 들러붙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 살갗이 살짝 긁혀 피와 수액이 서로 뒤엉켜있었다. 찢어진 바지는 소각장으로 던져버리고, 바로 샤워실로 향한다.


  수와... 수와...


  '설마.. 날 알아본 건 아니겠지?'

  천성이와 마주친 그 눈이 생각났다. 촉수에 붙잡힌 내 다리를 피해 촉수만 정확하게 잘라낸 그의 몸짓 뒤로 내 눈과 마주칠 때 놀란 반응이었던 천성이가 나를 알아본 건 아닐까 걱정이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15년이란 시간이 길기는 길었나 봐. 천성이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네..'


  도시의 최대 관심사는 서포터 유천성과 그의 스승 되는 듯한 셀리나다. 셀리나는 도시의 4대 길드 중 하나인 트리플S 길드의 길드장이다. 동시에 도시에서 최초로 최고 등급인 S 등급을 판정받은 능력자로 아직까지도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 능력자였다. 그런 셀리나가 차고 넘치는 S 등급 길드원들을 제치고 S 등급도 아닌 유천성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소식은 도시를 충격에 빠뜨릴만했다. 진짜로 둘이 연애를 한다거나 사랑에 빠졌다는 아니라 러브콜을 보냈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더 충격적인 점은 트리플S 길드는 능력자 길드가 아니라는 거다. 능력자 길드로 CIS에 신고하기 전, 트리플S 사는 엔터테인먼트에 특화되어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케어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였다. 사무를 보는 몇몇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가수, 배우 등의 직종을 갖고 있었고 능력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이익이 있었던 회사였다. 하지만, 셀리나가 대뜸 능력자 길드로 신고하면서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메개융합시술을 받게 되었고 지금은 소속된 엔터테이너들이 자신의 원래 직업과 관련된 능력을 갖게 되면서 더 유명한 회사가 되었다. 이런 셀리나가, 이런 트리플S 길드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A 등급에 불과한 유천성 서포터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건 뭔가 의심할 만한 껀덕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하필 공격력이 강한 딜러도 아닌 서포터라니. 유천성이 약점을 잡혔든, 그가 약점을 잡았든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언론에서는 셀리나가 드디어 미쳤다라며 신랄하게 트리플S 길드의 이미지를 까내리거나 유천성의 뒷 이야기를 파는 등 추측성 카더라식의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트리플S 길드에 소속되어 이름을 날리던 유명한 몇몇의 아이돌 그룹들도 탈퇴하는 등 셀리나의 단독 행보는 자신의 길드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데에 한 몫했다는 것이 언론의 비판이다. 그럼에도 셀리나는 기어코 서포터 유천성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트리플S 사의 3대손이라 불리는 3개의 유명 아이돌 그룹인 앤티크, 크림파이, 엑스더엔드가 소속사와 다름없었던 트리플S 길드에서 탈퇴하며 해체로 이어졌고, 이는 팬덤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꽤 큰 충격을 안겨준 셀리나와 유천성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결과였다.


  '천성이랑 셀리나... 트리플S 길드까지 하면 너무 복잡해. 이대로 모른 척 살아가려니 미안하고, 그렇다고 연락을 하자니 부담스럽고, 복잡하게 중간에 끼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 내 상황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미리 꺼내둔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라운더리, Roundry.

  옷 태그에 적힌 문구다.


  슬림함을 강조하고, 매끄러운 둥그런 디자인을 채택해 세련함을 돋보이게 하는 의류 브랜드다. 트리플S 길드가 또 다른 초거대 길드인 현성그룹의 의류 사업을 사들여 리런칭한 브랜드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현성그룹이 아닌 이름 없는 어느 누군가의 말로 시작된 과거 트리플S 엔터의 자본력을 뒷받침해줄 꽤 큰 사업이었고, 소속 엔터테이너를 통해 광고하기 시작하며 본격 몸집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CIS로부터 회계 감사를 받게 되어 지금은 트리플S 길드에서 분사시켜 독립적인 의류 기업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트리플S 길드를 뒤에서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옷이 아무리 예뻐도, 세탁물에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알아야 해. 환경우선, 쓰레기 없는 세상, 후대에 물려줄 아름다운 세계, 그딴 건 없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낡아지기만 할 뿐 이미 만들어지고 탄생한 이후 깨끗해질 순 있어도 절대 새로워질 수 없어.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관없이 말이야. 도시도 그래. 국제연구센터나 트리플S 길드나 나 또한 그렇고, 너도 그렇고. 환한 앞면이 있다면 뒷면도 있을 거야. 빛이 있다면 그림자 또한 존재하니까.

  이름 없는 그 누군가의 말이다. 라운더리 사에서는 분사된 이후 경영진이 바뀌면서 사내 기조 또한 바뀐 듯 이런 막말에 대해서 조심하는 분위기이지만, 셀리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친구가 한 말에서 시작된 의류 사업이라고 한다. 


  매일 이 옷을 입으며 생각해 왔다. 

  '그래, 더 좋아지는 건 없을지라도 나빠지지만 않으면 돼.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듯 자연스레 어스러질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필요 없다면 필요 없는 대로, 필요하다면 필요한 대로 자연스럽게.'


  그래서 오늘 중요한 일을 해보려고 했다. 좋아지는 건 없을지라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

  '천성이도 자연스럽게. 바빴으면 더 바빴지, 나는 바빴던 게 아니니까. 내가 관심이 없었던 게 맞지. 잠깐 스치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나를 확실히 알아본 눈치였어. 필요하다면 만나는 것도 각오해야겠지. 얽히고 싶지 않은 것이 내 마음일 뿐이지. 천성이는 다를 수도 있어. 의지가 되어줄 가족이란 사람들이 전부 떠났으니 외로웠을지도... 그런 것이 아니라면 더 무서울지도...'

  나는 인포데이터를 확인하기 위해 관자놀이 부분을 살짝 건드린다. 눈 위로 홀로그램이 쫙 깔리기 시작하더니 마치 주변 공간을 스캔하는 듯한 빛과 함께 몇몇의 데이터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 1건]

  [저장되지 않은 번호 3건]

  [도시안보 뉴스 15건]


  홍보성 스팸 메시지와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신경 쓸 일도 아니고, 도시안보 뉴스야 말 그대로 크리쳐 등장으로 인한 레이드나 대피 안내 메시지기에 딱히 중요한 내용들은 아니었다.

  나는 바로 주소록에 들어가 천성이의 연결 카테고리를 확인했다.


  '.. 어?'

  그와 연결된 점이 아무것도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이해했다.


  '아.. 15년이면 길었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으니까.'

  연결 카테고리는 데이터적으로 상대와 나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포데이팅의 대표적인 기능이다. 단순 검색으로 상대를 찾을 수 있고, 모든 데이터는 CIS 국제연구센터가 운영하는 우주정거장 도킹구역의 데이터센터에 저장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과거 슈퍼컴퓨터라 불리는 시스템에서 더 화려하게 개발된 SUM(데이터 관리의 안전화) 프로세서로 운영체제를 막론하고 데이터의 유연한 처리로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기에 도시의 모두가 인포데이팅을 잘 사용해 왔다.

  보이는 방식은 '.(점)'으로 나타나지는데 사용자의 점은 파란색으로, 찾고자 하는 대상자는 붉은색의 점으로, 그 외 주변의 것들은 흰색으로 나타난다. 이는 지도와는 조금 다른데, 위치에 따라 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원을 그리는 눈금화면에 연결되는 데이터에 따라 사용자로부터의 거리가 짧아지고 멀어진다. 그러니까 나와 천성이는 그 시간이 너무나 길기 때문에 어떤 접점도 없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직접 전화를 거는 수 밖에는 없는 거잖아. SNS라도 길드에서 관리하고 있겠지. 블로그라든지 뭔가 기록을 남길만할 것 같지도 않고..'


  '유천성'이라는 글자 위로는 어떤 사진도 첨부되지 않은 기본 프로필과 밑으로는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화면의 가장 끝에는 버튼 몇 개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끝의 버튼을 누른다.


> 접근을 시도합니다. 연결 카테고리에 등록됩니다.


  맑은 안내말소리와 함께 유천성에게로 전화가 걸린다.




  달칵.


  시야 한쪽 끝에 전화 알림이 떠오른다. 하지만 모르는 번호. 


  "... 여보세요?"

  받았다.


  길드 방침에 따라 외부 접촉은 일절 금지다. 하지만 받아버렸다. 


  '후우...'

  전화 너머 들려오는 건 상대의 호흡뿐이다.


  "누구시죠?"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그가 입을 연다.


  '... 나야.'

  목소리뿐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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