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속
천성이가 나간 지 벌써 1시간 째다. 그로부터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위험한 연락인 것 같았지만, 혼자 그대로 내보낸 것이 후회가 된다.
'별 일 아닐 거야. 괜찮겠지...'
'아냐, 같이 나갔어야 했어. 이건 내 잘못이야. 나가자.'
'그래도 기다리라고 했는데, 기다릴까?'
'스읍... 위험한 일일까?'
왔다 갔다,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천성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모르겠다.
'나가자, 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언제까지고 뒤에서 숨어있을 순 없어. 천성이가 실력도 좋고, 유명한 능력자라고 해도 그도 사람이고, 위험하다면 도움이 필요한 거야.'
나는 나가기로 했다. 곧 연락 준다던 천성이에게 제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빌며, 밖으로 나간다.
저벅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 나가자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그만 멈추세요!'
'브넷사, 여긴 무슨 일이죠? I.M. (아이엠)까지 함께 온 것을 보면 위험한 일인가 보죠?'
'서포터 유천성, 그만 멈추라고 했습니다.'
천성이와 군부대로 보이는 로봇들이 바로 앞에 있었다. 나는 들키지 않게 벽 뒤에 숨는다.
'서포터 유천성, 트리플S 길드와의 계약을 위반하고 보안을 어긴 것으로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능력을 거두고 항복하세요.'
'계약과 보안을 위반했군요, 제가. 브넷사 양, 증거는 있나요?'
'당연하죠. 앤티크 리더인 슈아 씨로부터 녹취록을 입수했습니다. 트리플S 길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었으니 다시 한번 더 이렇게 찾아온다면 그동안의 기록들을 퍼뜨리겠다는 자백이 담겨있죠.'
'아.. 슈아 씨는 왜 저를 따라왔는지 알고 있나요? 그녀가 말 안 하던가요? 제가 기억한다고.'
'당신의 기억과 이 일은 상관없습니다. 그만 항복하세요.'
브넷사라고 불리는 여자가 로봇들을 조종하며 천성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은 감히 버티지 못할 압력에 나도 주저앉고 말았는데, 천성이의 힘들어하는 얼굴과 달리 버티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마치 과거의 저처럼. 슬프군요. 브넷사 양과 셀리나 길드장님.'
천성이의 고개가 브넷사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해 젖혀진다.
브넷사 옆으로 또 다른 사람이 걸어왔다. 분홍색이라고 하기엔 너무 옅고, 그렇다고 보라색이라고 하기엔 너무 짙은 밤하늘 같은 황혼색의 매근한 머릿결의 여자였다. 브넷사와 달리 단정한 정장 차림의 그녀는 작은 주사기 같은 것의 끝과 끝을 엄지와 검지로 쥐고 있었다.
'길드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브넷사, 이 아이는 상관없어. 이미 나하고 이야기 끝난 일이야. I.M. 과도 이만 돌아가.'
'네? 셀리나 님과 이미 끝난 일이라고요? 하지만, 저는 방금 사무실에서 셀리나 님과 아이를 찾으라고 대화를 하고 온 상태인데... 아, 그리고 길드장님은 흰을 만나고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흐음...'
셀리나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인다.
'저는 그만 가도 될까요?'
천성이가 심각한 그 둘의 사이에 끼어든다.
'아뇨, 가만히 계세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브넷사가 그의 앞을 위험하게 가로막았다.
'그렇게 된 거로군... 브넷사 돌아가도 좋다. 아이는 내가 잘 이야기해보지.'
'하지만, 이 사람은 길드의 중요한 정보들을 갖고 있다고요. 길드와 관계가 없어진 지금이야말로 더 위험한 상황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른다고요.'
'브넷사, 이만 돌아가도 좋다고 그랬다만. 오전부터 뉴스에 찍히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돌아가.'
'...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브넷사가 함께 끌고 온 로봇들과 돌아간다.
'셀리나 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이사회라고 불러야 할까요?'
천성이가 일부로 긁는 듯한 질문을 했다.
'네가 길드를 떠나는 건 내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아, 아이야.'
'그렇겠죠.'
'어디 한 번 날 뛰어봐.'
'셀리나 님은 제게 응원해 주셨어요. 길드를 나가도 좋다고. 도시의 미래를 바꿔주라고. 하지만, 이사회 모두가 같은 뜻은 아니군요. 이사회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꼴통이 많이 모여있다는 건 알겠네요.'
'흠흐흐흐 하.., '
셀리나가 기이하게 웃는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기억 봉인은 함부로 풀 수 없을 텐데...?'
'봉인을 풀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죠.'
'감히!'
셀리나가 눈을 부릅뜬다. 동시에 주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싶더니 번쩍번쩍 정전기처럼 빛이 튀고, 몸이 살짝 들려진다.
'그만하시죠.'
천성이가 그녀를 쳐다봤다.
이상한 분위기, 따뜻한 날씨에도 냉랭하고 서로에게 날카로운 답을 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내겐 빙하처럼 느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반짝.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시간이 멈춘 느낌. 내가 눈을 떴을 땐 우리를 감싸는 거대한 회오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