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알아야 해
번쩍!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내가 눈을 떴을 땐 주변을 휘몰아치는 거대한 회오리뿐이었다.
대낮에 태양도 가려버릴 만큼의 자욱한 안개와 먼지로 가득해져 가까웠던 건물마저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가득 메운 셀리나의 거대한 회오리가 불고 있었다. 그 소리는 얼마나 큰지 소리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 댔다.
천성이와 셀리나에겐 이건 가벼운 정도인지 힘든 행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저 벽 뒤에 숨어 있던 내가 버티기엔 무리였나 보다. 주위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잡을 겨를도 없이 나는 그저 무거운 바람에 끌려 날아오른다.
"으악~!"
숨어서 지켜보려던 나의 의도가 이렇게 들켜버리고 빙글빙글 돌며 들려 올라가는 속도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뭐든 잡았지만, 그마저도 함께 뿌리째 뽑혀나갔다.
내 비명을 따라 그 둘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도시민이 이곳엔 왜..."
셀리나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건 천성이도 마찬가지였다.
"형..?"
한 사람의 눈에서는 걱정스러움이, 다른 한 사람에게선 불쾌함이 느껴졌다.
"형 내가 나오지 말... 일단 이럴 시간이 없어."
"형?"
셀리나가 나를 계속 이상하게 쳐다봤다.
"이렇게 들키고 싶진 않았는데, 길드장 님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네요. 지금 상황이 아주. 인질이 생겼으니까."
천성이는 태평하게 일부러 셀리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듯하다.
"이건 예정에 없던 일이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이야, 이것도 네가 계획한 거니?"
그녀의 눈이 붉게 타오른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내자 매섭게 불어 오르던 바람이 멎고, 회오리의 허울만 남아 빙빙 돈다.
"아니죠, 잘못 생각하셨네요. 셀리나 님의 잘못된 판단으로 시민이 휘말리게 된 겁니다. 그것도 고어용문에서. 이제 다시 묻고 싶군요. 길드장 님, 이사회의 손은 어디까지입니까? 제 기억도 이사회의 금제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천성이의 모습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지내왔다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기억 봉인? 기억 조작? 도대체 하나같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셀리나라는 사람이 천성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이사회는 또 뭐고,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하늘을 부유하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지켜보는 것 밖엔 없었다.
"그만 멈추시죠."
천성이가 오른쪽 손을 펼쳤다.
두웅- 우웅-
그의 손에 나타난 건, -검은 우주-였다. 저것도 능력의 일종인지 아직 능력이 그저 공기만 빨아들이며 검은 블랙홀이 유영하고 있었다.
"감히!"
셀리나의 미간이 살짝 흔들렸다. 검은 우주로부터 셀리나가 동요하면서 위협을 멈춘 회오리가 다시 매섭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늘을 조용히 부유하던 나도 또 한 번 날카롭게 불어오는 바람에 끌려 다시 날아오른다.
셀리나가 흥분한 것 같다.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능력이 날뛰어 버린다. 회오리 기둥이 여러 갈래로 쪼개지며 일대를 덮었고, 시민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어용문에서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고, CIS에서도 온 것 같다. 돌아갔다던 브넷사도 I.M. 과 왔고, 문화보존기구에서도, 몇 소수의 길드들도 보인다. 하지만 S등급의 셀리나의 위력에 버티지 못하고 나처럼 올려지기 일쑤였다.
천성이가 회오리의 눈에 중심을 잡고 능력을 사용하던 셀리나를 향해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공간 팽창!"
쾅!
검은 블랙홀이 순간적으로 압축되며 없어졌다가 굉음과 함께 퍼진다.
일대 떨어져 나간 회오리도, 위험하게 부유하던 부스러기들도 집어삼키며 무겁게 가라앉아 피어오른 구름과 함께 공간의 이상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까워 보였던 것들이 멀어졌고, 먼 곳에 있는 것들이 가까워 보인다. 시선 곳곳 옷이 찢긴 것처럼 검은 부분들이 보였고 그곳은 또 다른 새로운 공간들과 이어졌다. 마치 다차원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형, 정신 좀 차려봐요!! 그리고 이거 받아요."
천성이가 날아와 하는 말이었다.
"그, 그게 뭔데?"
갑자기 그가 가슴을 세게 쳐 깊숙이 손을 넣는다.
"뭐 하는 거야? 이게 뭐, 뭐야..!!"
그리고 그의 손에 붙잡혀 꺼내진 것은 붉은빛 기운이 감도는 작은 보석 같았다.
"영혼?"
"그렇게도 보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찢긴 공간이 다시 서로 맞물린다. 블랙홀에 집어삼켜졌던 회오리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나와 천성이를 갈라내기 시작했다. 강력한 대기압이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 묘각은 물론이거니와 하늘과 시간과 공간마저도.
"이 회오리에 갇히는 순간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해요. 셀리나는 저만 원합니다. 우리 둘 다 휘말릴 필요는 없어요. 다른 저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시작한 일은 제가 끝낼 거예요. 이거 받으세요."
그가 피로 범벅된 그것을 내게 건넸다.
"이, 이게..? 안돼! 여기서 널 놓을 수 없어..!"
"저도 형까지 놓칠 수 없어요. 형은 모르잖아. 능력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선을 긋는 듯한 천성이의 말이 강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상처 아닌 미안하다는 말로 느껴진다.
"이런 부탁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아니면 다신 보지 못할 걸 아는데, 정말 언젠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 내게 먼저 전화해 주었던 것처럼 나를 찾아와 줘. 형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내 생령방울이야. 형에게 라면 기꺼이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웠어. 흑백 같던 나에게 잠시나마 삶을 선물해 줘서."
"안돼!!! 손 놓지 마! 절대, 절대로! 내 내가 붙잡고 있을게. 조금만 버티면 돼..!! 조금만 버텨줘!!"
"아니, 닫힌 미래의 시간이 열린 과거의 흐름에 덧씌워지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난 이미 여러 번 경험해 왔고, 이사회는 미래의 결과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이런 일들을 반복할 거야. 형은 나를 계속 붙잡아줘. 나는 형을 놓을게. 그래야 형이 살 수 있어. 고마웠어, 그리고 사랑해."
천성이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가 나를 꽉 끌어안고는 다시 세게 떨쳐버렸다.
"안돼!!!"
'이걸로 된 거야, 셀리나.'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회오리가 천성이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하... 아,, 흑흑.. 흑흑, '
천성이나 남긴 것은 가슴에서 꺼내진 그의 생령방울과 나의 죄책감, 그리고 매서운 바람이 남긴 그의 옷자락들이었다. 자신은 놓을 테니 잊지 말고 자신을 계속 붙잡아 달라던, 고맙고 미안하다던 그는 사라졌다.
사건의 처리는 빠른 속도로 정리되었다. CIS 국제연구센터와 트리플S 길드, 연관된 사람들은 일을 덮으려 했기에 당연할 수밖에 없는 처사였다. 일개 일반인이었던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 난 일반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세계와 그들이 있는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나보다 더 형 같았던 천성이의 성숙함이 그 세계에서 시기와 질투로 시작되었을지, 어쩌면 나와 가족들의 방관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말했다. 자신을 찾아와 달라고. 흑백 같던 자신에게 삶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이젠 알아야 한다. 직접 그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내가 모르는 천성이의 비밀과 방관되었던 그의 삶, 그리고 능력자들의 말 못 할 진실을 알기 위해서.
문화보존기구: prologue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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