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철도를 따라 늘어선 모노레일과 뒤따라 추격을 벌이는 수억의 차량들, 위아래 상관없이 겹겹이 쌓인 도시의 교통 시스템은 마치 쇠사슬처럼 끊기지 않고 이어져있다. 그 사이 촘촘히 자리한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딱딱하기만 한 도시를 한층 따뜻하게 만든다. 대인관계는 없다시피 해진 the CITY의 사회는 다행히 아직 따뜻함은 남아 있는 것 같다.
'타깃 이동 중... A0-0를 통해 중심부로 이동 중입니다.'
스토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내 주변 어딘가에서 내가 알아차리지 않는 어느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지만 한 번도 마주칠 수 없었다. 소리만 들려오는, 굉장히 이상한 범죄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
'감시하는 이유야 뻔하지 뭐. 길드에서 중요한 존재가 사라졌으니 가까운 사람들을 지켜보겠다는 거겠지.'
언제부터인가 소리를 잘 듣게 되었다. 아마도 천성이가 검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이후부터인 것 같다. 감히 예상해 보건대, 셀리나가 S등급 능력자라던데 아마도 S등급의 능력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원래라면 보통 능력자 협회에 등록하고 능력자 검사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트리플S 길드의 감시 대상으로써 그들에게 비밀을 떠먹여 주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일반인이 능력자가 되는 길은 아직 메개융합시술 밖에 없다. 그렇기에 단순히 내 귀가 예민해진 것을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기에 협회에 찾아가지는 않았다.
! 키릭-
시야 오른쪽 아래로 붉은 느낌표가 떠오른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2분 남짓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 트리플S 길드에서 소속된 능력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해 추모행사를 하니 꼭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천성이가 블랙홀 너머로 사라진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왜 이제야 뒤늦게 일을 진행하는지는 그들만의 어렵고도 복잡한 그런 사정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트리플S 길드는 도시의 유명한 3대 길드 중 유일하게 사립길드다. 다른 두 개의 길드는 모두 the CITY의 필요에 의해 압력이 있었던 반면 트리플S 길드의 전신이 엔터테인먼트였단 것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능력자 협회를 포함해 4대 길드라 칭하지만, 협회는 모든 길드를 관리하는 정부기관에 속하기 때문에 보통은 협회를 제외해 트리플S 길드, 현성 길드, 마법 길드를 3대 길드라 부른다. 이 중 현성 길드는 현성 그룹이 세운 길드이나 현성 길드로부터 마법 길드가 분사되는 과정에서 CIS 국제연구센터의 큰 오지랖이 있었기에 두 길드 모두 매달 감사를 받는 공립의 위치가 되었다. 그러나 트리플S 길드는 엔터테인먼트에서 협회에 길드로의 신고 절차를 거쳐 길드가 되었기 때문에 사립이지만, 몸집이 너무 거하게 커져버려 매 6개월마다 CIS로부터 감사를 받도록 능력자 협회의 조건이 나중에 들어간 케이스라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다고 한다.
사립 길드는 트리플S 길드 말고도 많다. 현성과 마법 길드를 제외한 모든 길드가 사립이라고 보면 된다. 사립 길드도 CIS의 감사를 받지만, 매달 절차가 진행되는 현성과 마법 길드와는 달리 주기도 연단위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트리플S 길드만 최초 6개월 단위가 도입된 것이다. 사립과 공립 어중간한 위치에 있던 트리플S 길드에게 문제가 생겼다. 둘 중 하나였다면 편했을 것을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 있다 더 복잡해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와는 별개의 일이다. 일단 하나부터 열까지 감시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행사에 빠질 순 없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지각은 절대 안 된다. 복합승강장으로 들어갔다.
도시는 1층부터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파트의 1층, 2층, 3층이 아니라 층구조로 구역이 나뉜다는 소리다. 1층은 하수처리시설, 환경정화 배출구, 루시드환공 시스템, 콘크리트 연질막, 내진스프링 설계 등 전반적으로 도시 운영에 필요한 곳들이 자리하고 있다. 3층이 도시민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거주구역, 산업구역, 도킹구역 등 도시민이 돌아다닐 수 있는 층이면서 루시드환공 시스템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기질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층이 바로 복합승강장이 존재하는 곳이다. 복합승강장이 따로 분리된 이유는 마스터피스의 중력 공간의 무중력 공간화 기술로 인해 도시의 3층에 자리한 부유빌딩 때문이다. 허공에 부유하는 고층 빌딩 때문에 승강장을 그 아래에 건설할 수밖에 없었다.
복합승강장의 규모는 the CITY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면적이다. 아마겟돈 신전과 거주 C구역을 잇는 복합승강장 메인 정류소를 시작으로 산업 C구역, 거주 A구역, 거주 B구역, CIS 국제연구센터, 이끼수련 해역까지 중심이 되는 6개의 정류소를 포함해 도시에는 총 126개의 정류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쇠사슬처럼 얽힌 복합승강장의 초기 기획안은 이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도시 3층에 빌딩 사이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기획되었지만, the CITY의 부유빌딩의 무게가 이미 한계치를 넘어버렸기에 부유빌딩을 받쳐주는 원판스프링의 한계를 보수하고자 건물들이 중심을 잃고 추락할 시 1층의 도시 운영시스템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자 부유빌딩 밑에 복합승강장을 깔아 충격을 낮추는 설계를 채택했다.
수많은 기동차량들이 서고 움직이며 승객들을 태우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노선을 따라 트리플S 길드와 가까운 정류소를 찾는다.
"온더그린.. 일까, 아니면 루시드 아쿠아리움일까..."
트리플S 길드는 엔터테인먼트답게 거대한 사옥을 갖고 있다. 일반적인 길드 사무실이 아닌 외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띠고 있다. 정문에 위치한 말 그대로 트리플S 조각상이 트리플S 길드를 대표했다. 이끼수련 해역 정반대에 위치한 거주 B구역에 위치했는데, 큰 규모의 길드와는 달리 이름을 딴 정류소는 아쉽게도 없었다.
"여기서 보네요. 어디 가세요?"
인포데이팅으로 최대한 빠른 경로를 찾던 중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아, 온더그린 가려고요."
온더그린은 그 이름답게 the CITY의 깨끗한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CIS 국제연구센터의 인증된 조경 회사이고, 루시드 아쿠아리움은 통짜 거대 수족관이 자리한 아쿠아리움이다. 트리플S 길드는 온더그린과 아쿠아리움 사이에 있다. 거리적으로는 아쿠아리움이 트리플S 길드에 더 가깝지만, 시간적 여유를 돌아봤을 때 온더그린으로 향하는 차량의 배치 시간이 더 빨랐다.
"죄송해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먼저 갈게요."
나는 서둘러 그와 헤어졌다.
띵링- 띵링-
모노레일이 들어옴과 동시 안내음이 들려온다.
| 문화보존기구행 모노T 레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문화보존기구, 온더그린, 섬빛하늘고등학교를 가시는 분들은 해당 레일로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20분... 이면 충분해. 뛰어가면 괜찮을 거야."
누구보다 빠르게 자주 이용하는 좌석에 앉는다. 맨 앞칸의 두 번째 좌석이다. 모노레일 운행 중 이 좌석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이 제일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슬쩍 바라보니 내게 말을 걸었던 사람이 멀리에서 내가 탄 모노레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보이는지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섬뜩해. 조금 이상한 사람인 듯.'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건너편 호에 사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이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마주치는 방식이 왠지 섬뜩했다. 불쾌한 느낌도 받았고. 아니면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괜한 걱정일 수도.
| 이번 정류소는 약 3분 뒤 크라운 거리에 도착합니다. 다음 정류소는 무지개극장입니다. 섬빛하늘섬에 가시는 분들은 이번 정류소에서 CIS 국제연구센터행 모노T 레일 또는 NT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