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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Dec 01. 2023

낯선 곳에서 찾은 따스함

뮤지컬 컴프럼어웨이 후기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보다는 타성에 젖었던 것이 맞는 것 같다. 

이 공연을 접한 건 2017년 대체복무를 딱 하기 전, 뉴욕에 실습이 끝나고 휴가 때였다. 

우연히 뉴욕을 돌아다니다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여름기간 동안 

평일 낮에 유명한 뮤지컬의 일부 노래를 들려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여행으로 인한 낭만 필터도 많이 씌워진 탓도 있겠지만, 

연극부 시절부터 본인은 적은 소품으로 무대를 채우는 것을 좋아했다. 

노장들이 의자만을 활용하여 손뼉과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가히 충격적이었고 

노래를 완벽히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노래도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좋았다. 


공원에서 아래의 1막의 첫 시작곡을 듣고 너무나 반해버렸다. 


(웰컴투더락) 

https://youtu.be/C9Jx-aprRJ4?si=5O_c7PJTTfSHuq0g


이 공연을 보고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도저히 잊히지 않아, 바로 예약했다.


911테러가 워낙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초등학교 저학년이기 떄문인지, 

나에게는 그저 역사 속 한 장면 정도로만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그 충격도 어찌 보면 삼풍백화점 사건보다 덜한 기분이다. 

직접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아는 바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영어를 완벽히 알아듣는 편도 아니기 때문에, 

공연을 보기 전에 911메모리얼,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했다.

 이 사건 자체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고 뮤지컬을 살에 와닿게 느끼고 싶었던 호기심이 컸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더 쉽게 극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마음에 들었던 만큼 한국에도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다른 뮤지컬 덕후인 친구와 이야기했을 때, 

한국은 911테러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911 자체의 어두운 느낌 때문에 잘 안 될 것 같다고 했고, 

그렇게 6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러 한국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911테러관련되었다고 하면, 많이 극이 어두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극은 911테러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911테러로 인해 캐나다 시골마을에 비상착륙한 38개 비행기에 대한 이야기다. 

평소 4-5대 비행기 정도가 끝인, 공항을 없애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작은 마을에 이 많은 비행기가 도착하고, 인구도 2배가 되어버리는 일이 터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발 벗고 나서 이들을 도와주려 애쓴다. 

물건을 기부하는 것은 물론 요리도 해주고, 본인 집에까지 지속적으로 초대하며 잠을 재워주고, 

편하게 씻고 같이 술을 마신다. 이런 따뜻한 마음에 지갑을 도둑질 당할까 

걱정하던 사람들이 점점 편하게 어울려 놀고, 

오히려 이 마을 사람들이 자진해서 되고 싶다며 이야기한다. 


오히려 하루 빨리 떠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떠나 돌아오고나서, 

그 곳의 따스함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 

연말에 잘 어울리는 따스한 이야기다. 

한국도 최근 칼부림 사건부터 시작해서 흉흉한 이 시기에 마음을 포근하게 만드는 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마냥 따뜻하고 지루한 뮤지컬은 아니다. 

무슬림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극에 달하며, 

아랍어가 들리면 911테러를 축복하는 거냐며 소리치는 혼돈과 슬픔도 다루어서 극은 지루할 틈이 없다.


번역도 훌륭했다. Something’s missing을 공허해 라는 

딱 한 단어로 만들어내서 운율에 맞게 한 점에 감탄했다. 

그 외에도 억지로 모두 한국어로 바꾸려하지 않고, 

‘Welcome to the rock’을 ‘웰컴투더 락’으로 표현하기도해서 

그 현장감이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언어유희적으로 영단어들을 이용하기도 하는 데, 

이런 면을 억지로 한국어로 다 바꾸려고 하다 보면, 

그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영어 가사를 알고 들으며,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했는 지 비교해서 보다보면 더 재미있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남겨보면,

-       Welcome to the rock : 바위, 섬에 어서오라는 뜻도 되고, 락장르와 같은 노래를 시작으로 이 극에 어서와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       Come from away : 극의 제목이기도 한 이름. 먼 곳에서 온 사람들로 승객들.

-       Somewhere in the middle of the nowhere : 외진 곳 그 한가운데 어딘가. 그들이 잠시 머문 캐나다의 마을(갠더)을 의미. 그 어딘가에서는 맑은 하늘과 따뜻한 마음을 찾을 수 있다는 대사가 있다.


또한 이렇게 “남경주, 고창석, 최정원, 정영주, 차지연, 신영숙, 지현준” 

(다른 배우 분들도 다 너무 대단하지만, 나에게 익숙한 분들) 

대단한 배우들로 이루어진 황금 캐스팅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초연이어서 그랬는 지, 날이 갑자기 너무 추워져서였는 지 

배우들 목 상태가 조금 안 좋은 것 같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높은 음을 다 소화하셔서 기립박수를 치게 되었다.



종합적으로는 노래도 좋고, 캐스팅도 훌륭하고, 스토리도 좋고 주변에 추천을 안 할 이유가 없기에, 

어머니 동창 모임에도 이 공연을 강추하며 예약해드렸다.


내가 탄 국내 첫 비행기 ! 컴프럼어웨이 초연 !


https://youtu.be/Zizt68XLq1o?si=QWC5ced0Xfk3g6MG

마지막으로 이 노래도 참 좋다. 

실제 브라이언트 파크에서도 welcome to the rock과 이 me and the sky 

두 곡을 대표곡으로 가져왔었다. 


20세기 중반 여성 기장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 

남성 기장들의 무시와 여성 승무원들의 시기 질투를 동시에 느껴야 했을 힘듦, 

하지만 그저 하늘이 좋고 날고 싶었던 여성 기장의 이야기. 


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비행기가 폭탄이 되었다는 것.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였다. 조카들은 설명없이 영문곡을 들려줬을 때 디즈니 노래같다고 했다. 

그만큼 멜로디도 좋다.


"One thing I loved more than anything was used as the bomb"

"내가 가장 아끼는 게 폭탄이 된거야. "


공연을 보고 나서도 참 좋은 점은 유튜브 뮤직에 전 곡이 모두 영문이지만 

앨범으로 있기에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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