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이상한 매력이 있다
J는 먼저 비행기를 탔다.
며칠 같았던 하루가 끝났다. 정확히 말하면,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집에 돌아간다는 그 자체는 끝났다는 느낌과 안도감을 동시에 준다. 아쉬움이 크지만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썼던 글을 서울에서 다듬었다.
여행은 이상한 매력이 있다.
여행하기 전에는 설레고 두렵다. 썸 탈 때처럼 만나기 전에 느끼는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한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그 순간에 몸이 붕 뜨는 느낌,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 손잡이를 움켜쥐게 하는 긴장감이 짜릿하다. 절벽을 향해 뛰다 보면 어느새 기체가 들어 올려지고, 땅에 발이 닿지 않아 두려움마저 느껴지던 그 순간과도 비슷하다. 그 순간엔 묘한 쾌감이 인다. 그 느낌으로 인해 '시작했다'는 게 와 닿는다. 이제 진짜다, 저곳에 있던 나를 떠났다, 이제 현실을 떠나는 느낌이다. 해방감도 느껴지고, 진짜 어른이 되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다.
여행 중에는 그 상황마다 힘든 점과 좋은 점을 직접 느낀다. 점점 익숙해지고 의문점이 사라진다. 궁금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다가도 묻지 않고, 답을 찾지 않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어진다. 어느 순간이 되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낯선 환경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데자뷔 현상 같기도 한 것이다. 별 거였던 것들도 별것도 아닌 게 된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닳고 닳아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고, 모든 것이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routine의 어감과 비슷한 것 같다)으로 느껴져서 더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스스로가 쭈글쭈글하게 쪼그라든 것 같다. 알면서도 그걸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도 동시에 체감한다.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이 나온다. 여행이 끝난 후에는 기억은 차곡차곡 정리되어 키워드로 끝난다. '재밌었어', '많이 배웠어', '새로운 여행이었어' 등등 내게 여행은 설렘 - 적응 - 회상의 단계로 기억된다. 굳이 정리할 필요는 없지만, A = B라고 정리하고 싶다. 제주여행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일상에 다시 활력을 주는 여행, 하기 싫고 지칠 때 앞으로 열심히 하라는 선물 같다.
어떤 것이든 기회비용이 따른다. 하나를 선택하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기에 실제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기회가 있더라도 나한테 올 지, 그렇지 않을지는 가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의도치 않게 기존 일정을 포기했지만, 전혀 아쉽거나 아깝지 않다. 여행에서는 이 나름대로의 느낌과 깨달음이 있다. J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좋았고, 새롭고 즐거웠다. 충분히 느꼈으면 족하다. 만족한다.
길이 어긋나는 바람에, 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는 J가 카톡을 남겼다.
'조만간 보자'
곧 보게 될 것을 알지만 그다음이란 언제일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눈을 감았다가 뜨니, 김포에 도착했다. 보엠에서 샀던 빵이 눌릴까봐 가방에 넣지 않고 종이 봉지 끝이 풀리지 않도록 두 번 접었다. 빵을 달랑달랑 들고 들어가서, 식탁에 내려놓았다.
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