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에스터 - 유전(Hereditary, 2017년 作)
<유전>은 세 가지 패배를 목도하게 만든다.
현재가 과거에게 무릎 꿇는다. 남성은 여성에게 고개 숙인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 앞에 약자임을 시인한다.
12, 13세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다. 시험에 집중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리는 찰리(밀리 샤피로). 감독을 하던 선생님이 다가와 소녀를 타이르는데, 그 순간 갑자기 새가 창문에 와 부딪혀 죽는다. 이윽고 방과 후로 전환된 쇼트. 찰리는 풀 위에 떨어진 새의 시체를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더니 급기야 미물의 목을 가위로 잘라 주머니에 넣는다. 이 섬뜩하고 기괴한 행위는 그날 저녁 광풍이 되어 끔찍하게 재현된다. 찰리는 엄마 애니(토니 콜렛)의 종용으로 오빠 피터(알렉스 울프)를 따라 파티에 동행하게 되는데, 이 파티로부터 붉어진 일들로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혀 찰리의 목이 참수 당하는 참극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목이 잘'린' 새는 목이 잘'릴' 찰리에 대한 암시였을까.
이와 같이 <유전>은 과거의 지배력이 압도적이다. 영화의 초반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찰리의 행동 세 가지. 딱딱 소리를 내며 혀를 차는 습관이 있다. 엄마가 추도문을 읽는 도중에도 그림 그리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초콜릿을 먹을 때 땅콩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부모의 대사는 찰리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로써 찰리와 연관된 행위들은 관객에게 각인된다. 후에 반복되어 상황에 기인한다.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혀를 차는 소리는 찰리의 령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근거가 되고, 그림을 그리던 노트는 찰리를 현세로 소환하는 매개물이 된다. 마지막으로 땅콩 알레르기는 그녀를 참수시키는 유력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과거의 행위들이 현재를 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遺傳)'은 과거로부터의 어떤 것들이 불가항력적으로 현재에 전달되는 것이다. 즉, <유전>은 제목에서 이미 과거의 영향력이 본편의 중요한 골자임을 시인한다. 유전되는 것은 무엇인가. 악마와 접촉 가능한 영적인 신기(神氣). 지리멸렬한 악마의 재능은 모계(애니의 어머니 - 애니 - 찰리)를 통해 삼 대로 유전된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가졌다는 애니의 어머니는 악마 숭배자로써 아마도 음험한 능력을 소유했던 것 같다. 애니는 본인은 거부하지만 어머니의 령을 볼 수 있는 자이기도 하고, 찰리의 령이 빙의 가능한 영매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영력(靈力)이 거대하다. 찰리는 비둘기 절단 행위를 비롯해 풀숲에서 불길 속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을 정도로 의뭉스러운 능력을 소유한 소녀이다.
과거의 지배력이 막강하다는 말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 현재는 과거에 무력하다고.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늘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달리면 하늘을 날아 타임워프가 가능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이상 현재는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다. 만약 본편을 어머니라는 과거를 막아내려는 애니의 사투라는 관점으로 이야기한다면 현재의 방어가 과거에 참패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과거에 무릎 꿇은 현재.
두 번째 패배에 대한 언급은 첫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 위 오두막. 이후 카메라는 패닝해 모형 집의 단면으로 이동하고 줌 인을 통해 다시 모형 집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피터를 비추면서 이야기에 돌입한다. 오두막은 이 모든 아수라가 완성되는 장소임과 동시에 모계의 안식처다. 이곳에서 잠을 청했던 사람은 찰리와 애니뿐이었다. 모형 집은 아마도 애니가 만든 집일 것이다(그녀는 모형을 만다는 직업을 소유한 일종의 예술가이다). 말하자면 모형 집도 오두막과 마찬가지로 모계의 영역이다. 모형 집 안에서 그러니까 어머니의 공간 속에서 한낱 모형에 불과한 부자(父子)의 등장으로의 개관. 그렇다면 <유전>의 전지자는 어머니인 것인가.
파이몬 왕이 빙의 된 피터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 꿇고 있다. 이 중 주효한 세 명은 참수된 피터의 할머니의 시체, 마찬가지로 참수된 애니의 시체 그리고 조안(앤 도드)이다. 이들 모두 여성이다. 남성의 육체를 가진 왕에게 경배하고 있어 마치 결국 남성에게 무릎을 꿇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들은 자신이 경배할 사람을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니의 아버지를 굶겨 죽였고, 애니의 남편은 불에 타 죽였다. 그녀들은 가장 연약한 남성인 피터를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파이몬 왕은 외연만이 남성일 것이다. 왕관을 쓰고 어리둥절해 있는 피터에게 찰리라고 부르는 조안의 내레이션이 그것을 방증한다.
남성의 육체를 가진 여성 왕의 탄생. 여성을 왕으로 추대하는 여성 시대가 선언되면서 <유전>의 마지막 무릎 꿇음이 완성된다. 여성에게 왕의 자리를 내준 고개 숙인 남성들.
마지막 전투. 마지막 패배. <유전>의 무시무시함을 직시해야 하는 관객의 양태. 이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패배와 궤를 같이 한다. 우리는 도로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개미 먹이가 된 찰리의 머리를 봐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의 목을 절단하기 시작하는 애니의 모습과 서걱서걱 들려오는 소리를 보고 들어야만 한다. 파이몬 왕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자유이지만 어쨌든 파이몬 왕의 대관식을 봐야만 한다. 그러니까 본편을 선택한 이들은 스크린 앞에 앉는 순간부터 127분 동안 영화의 설득에 무조건적으로 대면해야만 한다(물론 이 문장은 눈을 가리면 된다는 등의 말초적 반문까지 포용할 수는 없다. 본편을 선택하고 관람한 관객의 완벽한 주체성이 기저에 놓여있다는 가정이 성립할 때 존재할 수 있는 표현 일 것이다).
대결의 끝은 승패다. 승패가 지어지면 손쉽게 이분법이 도출된다. 이분법은 무리한 혹은 구태의연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 짓겠다. 나의 역량은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유전>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휩싸인 체, 남성 위에 여성을 세웠으며, 시종일관 관객을 저글링 하는 영화광의 영화이다.
★★★★ (별 4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무력감에 휩싸인 체, 남성 위에 여성을 세웠으며, 시종일관 관객을 저글링 하는 영화광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