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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석 Jul 27. 2018

아이의 취향

[숲 소리를 들려줄게] 시간은 흐르고, 옷은 마르고, 너는 자라겠지만

빨래를 널다가 뒤집어진 아이 셔츠를 바로잡았다. 얼마전 새로 산 여름 셔츠가 몇 벌 있었다. 눈썰미 좋은 아내가 고른 옷은 아이가 대부분 좋아한다. 오늘 아침 어린이집에 가면서 신었던 자동차 무늬 양말도 널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다. 집에 있을 때 입히는 속옷 세 벌도 함께 세탁했다. 기저귀에 소변 보고 목욕하면서 몰래 흘려보낸 횟수를 더하면 아마도 어제 오늘 옷에 소변 본 게 너댓번은 되려나. 날이 더워 주스와 우유, 물 마시는 횟수가 늘어선지 아이는 소변도 자주 본다. 고맙게도 이불에 지도를 그린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세 가족 옷을 다 섞어 세탁한터라 빨래엔 각자 옷이 다 들어있다. 나와 아내 옷, 또 아이 옷을 나란히 빨랫대에 걸 때면, 그 크기로 아이 몸 크기를 다시 한번 가늠한다. 안아보면 꽤 자란 듯한데, 여전히 내 옷 하나 거는 너비에 아이 옷 네 벌을 걸 수 있다. 양말은 아직도 너무 작아서 내 옷과 아내 옷을 건 뒤 빈틈에 대충 걸어놓을 수 있을 정도다. 아이가 겪는 두 번째 여름. 아이 옷은 점점 내 옷 만큼 커질테고, 아마 더 큰 빨랫대를 사야할 날도 올 것이다. 빨래 수백 번 수천 번을 하는 동안, 아마도 내 옷이 더 커질 일은 없을 것이다. 눈에 띄게 자라는 건 이제 아이뿐이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떤 옷들이 이 집을 거쳐갈까 생각한다. 종종 아이가 좋아하는 옷이 작아져 집에서 내보낼 때가 되면 아쉽다. 아내는 꽤 아무렇지 않게 손때 묻은 물건을 잘 팔거나 누구에게 주는 편인데 나는 미련이 남는다. 아이가 좋아했던 것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끔은 아내가 묶어둔 꾸러미에서 몰래 한두 벌을 꺼내 서랍 깊숙한 곳에 숨긴다. 그러다 아내가 보곤 "어? 이거 중고상점에 내놓으려고 빼뒀던 건데 왜 여기 있지?" 내가 모른 척하고 넘겨도 결국 들킨다. "아이가 자주 입었던 옷이라서 나중에 보여주고 싶어." 내 미련 많은 바람 때문에 가끔 핀잔을 듣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옷이나 장난감을 보면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을 정도다. 이제 갓 두 살은 넘긴 꼬마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생겼으니. 요새는 계산대에 물건 올리고 '이거 띡 해주세요'(바코드 소리)만 하면 다 손에 쥘 수 있는 줄 안다. 그러니 물건 가격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고르겠지만, 여튼 아이는 좋아하는 대상을 하나씩 늘려가는 중이다. 지인이 선물한 '미니언즈' 양말을 혼자 찾아 신고, 햇볕 때문에 하늘색 모자와 선글라스도 직접 챙긴다. 처음으로 산 소방차 그림 자전거 헬맷, 대부분 중고 가게에서 산 신발과 장화, 같은 동네 핀란드 가족으로부터 23유로 주고 산 레고 두플로 시리즈. 외할머니가 소포로 보내주신 첫 자가용. 우유와 주스를 정말 좋아하고, 토마토와 가지를 인상쓰며 골라낸다. 자동차와 기차를 절대적으로 좋아하고, 공룡이나 동물에겐 큰 관심이 없다. 얼마 전 수족관에서 흰동가리를 본 이후 수영장용 방수 기저귀에 그려진 '니모'를 반가워하며 가리키고, 농장이나 공사현장을 지날 때 만나는 트랙터와 포크레인에 환호한다. 아직 엄마 아빠를 제 취향에 따라 고르지 않는 건 다행이라 해야할까. 실은 엊그제 온몸을 붙잡고 강제로 양치질했더니 아이가 이틀째 나한테 안기려 하지 않지만.



아이가 잠들고 난 뒤, 다시 요 며칠 세상 떠나간 아이 둘을 생각한다. 어린이집 통학차량에서 숨진 아이와 낮잠 시간에 죽임을 당한 아이, 어른들이 어쩌다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아득하다. 아이가 좋아했을 옷가지와 신발, 가끔은 엄마 아빠를 조르며 먹었을 맛난 간식과 잠자리 이야기. 하다못해 아이가 집안 곳곳에 남겼을 스티커와 그림까지. 그 부모들만이 기억힐 아이의 취향은, 이제 정처없이 어디로 갈까. 고 노회찬 의원을 추도하던 유시민 작가 말처럼 "다음생이 또 있으면 좋겠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아이들에게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다. 온전하게 부모와 시간을 보내고, 맘껏 친구와 놀고 떠들며 그 작은 손발로 한껏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 지금 옆 방에서 자는 저 아이가 좋아하는 옷이 작아져 이 집을 떠나더라도, 부디 내 옷만큼 큰 옷을 입을 때까지 무사히 크길 하늘에 빌 뿐이다. 시간은 흐르고, 옷은 밤새 마르고 너는 자라겠지만, 정말 간절히 빈다. 


2018.7.27 새벽 

오늘은 얼마 전 암으로 돌아가신 이모의 천도제였다. 외가 가족이 모여서 정말 마지막으로 이모를 보내셨다 한다. 며칠 전 노회찬 의원은 스스로 큰 짐을 지고 세상을 떠났고, 같은 날 최인훈 작가도 떠났다. 제 명을 채우지 못하고 간 아이들.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많은 삶과 죽음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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