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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Jul 07. 2021

혼자 배낭여행을 다니던 나, 나이가 들수록 불안하다

며칠 전 문득 내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부터다.


열정많고 꿈많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때.


배낭여행을 하면서 고생하고 힘들었어도 다시 돌아오면 그게 중독이 되어 또 떠나는 나를 발견하던 그때.  


항상 지나칠 정도로 뭐든 잘 될거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어떤일이 생기든 새롭고 즐겁게 다가왔고 사람이 좋았고 새로운 곳 어디든 가고싶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때.


첫 해외여행은 고등학교때의 가족여행이었고 그 후로 언니랑 매년 자유여행을 다녔고 모든 여행에 의미가 있고 좋았지만, 결이 다른 여행(?) 이라고 꼽을 수 있는 건 혼자 모든걸 계획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라고 손꼽는, 나에게 있어 진짜배기 배낭여행의 시작은 대학시절 여름방학에 갔던 프랑스 시골에서의 봉사활동을 포함했던 두달이 안되는 유럽 배낭여행, 그 후에 혼자 떠난 뉴질랜드 북섬 배낭여행, 혼자 떠난 미국 서부 여행 그리고 그 후로 조금씩 혼자 떠난 여행들이었다.


배낭여행은 아니지만 20대 초반에 무대뽀로 혼자 아무 연고도 없는 캐나다 작은 시골도 떠났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며 큰 열정이 생겨 너무 기대되어 심장이 뛰었던 건 봉사활동을 하고 돌았던 유럽여행과 벤쿠버, 토론토에서 환승을 해 캐나다 시골로 공부하러 떠난 그 때였다.


23명의 외국인 참가자들이 모여 프랑스 시골에서 강 개조 및 청소 (삽질) 를 하는 봉사활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숙식을 제공해줬지만 강당에 스무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매트랑 침낭 하나씩 깔고 생활하며 아침일찍 강 개조 및 청소를 했고 일이 끝나면 당번을 정해 숙소 청소와 요리를 담당했고 시간이 나면 다같이 여행을 다니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요리와 공연도 선보이며 많은 걸 했다.


 

혼자 벨기에 자전거 여행
프랑스 시골 봉사활동 중 마신 에스프레소


라떼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것도 아니고 구글맵이나 카카오톡, 인스타그램이 있던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 되는 곳도 한정적이었기에 그저 폴더폰과 지도한장만 들고 여행했다.


프랑스 시골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30분동안 인터넷을 할 수 있을까 말까였는데, 돌아보니 덕분에 더 많은 걸 보고 느껴 감사한 시절이다.


봉사활동을 하러 밤 늦은 시간에 기차와 버스를 바꿔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작은 시골로 찾아가 처음보는 23명의 외국인 친구들과 부족했던 영어로 2주가 넘는 시간들을 다같이 매트하나 깔고 강당에서 생활하며 장화를 신고 삽을 들고 강 개조 및 청소를 하던 그 시절.


벌레가 많은 그곳에서 자꾸 얼굴에 벌레가 붙어 침낭 지퍼를 얼굴도 안보이게 거의 다 잠근 상태로 잠을 자고,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모자를 뒤집어 쓰고 누워서 샌드위치를 먹고 쉬면서, 일이 끝나고 강당에서 매트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평소 읽지도 않던 책을 읽으며 (인터넷이 안되고 시골이라 할 게 없다보니 책이 너무 재밌었고 친구들이랑 디저트 먹고 말도 안되는 게임을 하는게 그렇게 즐거웠다)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사람이 좋았다. 겁많은 내가 높은 곳에서 집라인도 탔다. 시골집에 놀러가 자연속에서 커피한잔 하며 행복이 뭔지 깨닫기도 했다.


여행을 하며 같은 여행자들을 만나면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반겼고 그들과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겁고 마음이 풍족해졌다.


게다가 나보다 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들을 보며 배우는 것도 많았다.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 민박집에서 이제부터 벌어질 여행을 생각하며 사실 좀 쫄았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같은방에 나처럼 키가 작은 한 언니가 있었는데 나만한 가방 두개를 가지고 와 유럽을 돌고 있었고, 혼자 어떻게 그 큰 짐을 들고 다니냐며 대단하다니까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듯 코웃음을 치며 그 언니는 담배를 피러 나갔다.

그때 나는 그 모습에 되게 감명받았다.
(하하하 나 순진했다)


그 후로 나는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기차를 잘못 타 스위스로 이동해야 해 한 노부부의 차에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했고, 벌레가 많고 너무더운 땡볕에서 장화를 신고 진흙탕 속에서 삽질을 하며 힘들어 하다가 일하는 친구들끼리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왔고, 나는 낑낑대며 일좀 덜 하고싶어하며 몰래 깔깔대며 친구와 수다떨 때도 한 모로코 여자애는 씩씩하게 삽으로 깊은 바닥까지 팍팍 잘 파내며 거의 혼자 한 길을 만들 정도의 모습을 봤을 때,

장어 밤낚시를 가서 벌레소굴에서 미끼들을 손으로 움켜쥐고  보이지않는 물속으로 혼자 들어가 장어를  잡고 말겠다던  말레이시아 여자애를 봤을 , 음악이 나오면 어디든 갑자기 춤을 추며 깔깔 웃으며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외국인 친구들을 마주할 ,

폭우가 오든 날라다니는 벌레가 득실거리는 숙소에서 (호수 앞 펜션같은?) 뿌리는 약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외국애들은 약 필요없다고 그냥 잘거라며 아무렇지 않은 터프한 모습을 봤을 때,

뉴질랜드를 돌며 별의별일을 다겪어도 캐리어가 아닌 사람만한 배낭을 맨 북미/유럽친구들은 불평한번 없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엄청 대담하고 용감한 모습을 보였을 때,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용감하고 대담하고 독립적이며 강한 남녀들을 많이 마주하며..


나는 지금까지 온실속 화초이자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이외에도 여행을 하던 도중 가장 중요한 침낭을 잃어버렸을  누군가가 안쓰는 침낭을 줬을 , 배낭을 매고 이곳저곳 다니며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했을 때마다 해결하는  희열, 혼자 자전거를 빌려 벨기에 자전거 여행을 했을 ,

미국여행도중 신용카드 도용을 당했을 때, 뉴질랜드 시골의 안전장치 하나 없는 곳에서 승마를 하다가 갑자기 달리는 말에 낙마해서 머리를 다쳐 시골 응급차같은 거에 실려가서 하루종일 그 동네 사람들에게 괜찮냐는 안부인사 들었을 때, 미국여행때 내 짐만 도착하지 않아 3일을 짐없이 버텼을 때,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난생 처음 보는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았을 때, 여행을 하면서 처음 보는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깔깔 웃을 때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이나 카카오톡을 할 수도 없어 핸드폰이 터지는 유일한 곳에서 몇백원 내고 가족들에게 나 잘있다는 소중한 문자한통 보낼때,

 혹은 인터넷이 되는 유일한 곳에서 싸이월드에 내 근황을 올리며 걱정말라고 전할때,

캐나다에서 방에 여러마리의 쥐가 나왔을 때, 또 다른 집에선 화장실에 바퀴벌레가 득실 거렸을 때, 캐나다에서 일하면서 살 면서 혼자 별의별 일을 다 겪고 해결하며 살다보니 다 해결되고 지나갈일들 다 별거 아니구나 라는걸 깨달아 갔을 때, 뭐든 다 해결된다는 것. 어떻게 해서든 뭐든 다 된다는 것.

 

프랑스 시골 봉사활동 숙소
이 모든 것들은 ‘용기’로 할 수 있었고 ‘낭만’ 과 ‘행복’ 이 항상 따라왔다.

아 옛날이여..


여행을 하며, 도전을 하고 성공과 실패도 하며, 캐나다 시골로 혼자 비행기 두번을 갈아타면서 아무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서 새출발을 했을 때도 항상 나는 ‘할 수 있다’ 는 마음가짐과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라는 믿음이 붙어있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고 도전이 설레고 신났다.


그 도전으로 많은 고난과 역경도 겪었고 그 후에 너무 많은 현실을 겪었던 탓일까?


최근에 내가 걱정과 두려움이 많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이래저래 사람들에게도 너무 많이 치였나보다.


예전처럼 혼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떠난다거나, 혼자 배낭 하나 매고 여행을 떠난다거나, 예전처럼 이래저래 많은 레포츠나 체험이든 봉사활동이든 뭐든 한다거나, 작고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배낭여행을 하기보다는 깔끔하고 럭셔리한 호텔을 찾게 된다거나 하는 나를 보니 내가 예전엔 그 많은 걸 어떻게 했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를 때 가장 용감한걸까?


내가 20대 초반에 처음 프랑스 작은 시골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유럽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캐나다 동부에 작은 시골로 혼자 공부하러 떠나겠다고 했을 때, 혼자 뉴질랜드 북섬을 돌거라고 했을 때, 혼자 미국서부를 돌러 갈 거라고 했을 때, 일을 그만두고 또다시 혼자 캐나다로 학교를 가겠다고 했을 때 등등 항상 주변에서는 놀라며 말했다.


왜? 여자혼자 안무서워? 위험하지 않아? 괜찮겠어? 너무 늦지않아?


그땐 자신감과 기억도 안나는 무대뽀정신, 용감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심지어 스마트폰도 잘 되어있고 훨씬 많은 경험이 쌓여 잘할 수 있을텐데도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이 선택을 하면 저건 어떡하지? 이렇게 하면 저건 어떡하지? 저거 해결하면 이건 어떡하지? 이건괜찮을까? 후회하진 않겠지? 망하진 않겠지? 지금의 삶보다 더 플러스를 가지고 올 수 있을까? 잘 될까? 실패안하겠지?


오히려 지금까지의 많은 경험과 배움으로 인해 점점 성숙해지는 만큼 따라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마주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가 오히려 뭐든지 쉬웠구나.

그 때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희망과 잘될거라는 믿음으로 A의 길을 갔을 때 이런 저런 일이 생겼고, 그 길이 아니었기에 다시 돌아 또다른 기대감과 설렘으로 B로 갔지만 또 다른 이런 저런일이 생겼고 그래서 좀 더 안전한 길로 가기위해 이래저래 생각을 하게되고..


그렇게 나는 아는게 많아진 만큼 아는 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이젠 어떤 길이 안전하고 편한지도 알고 그게 좋으면서도 싫고 안전한 길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러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도 분명하다.


그리고, 아직은 내게 열정이 남아있나보다.


그때처럼 미친듯이 심장이 뛰며 설레고 빨리 그 길을 가고싶고 가기만 하면 뭐든지 원하는 건 바로 다 될 것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하고싶은 것도, 나에대한 믿음이나 희망도 있다.


살다보면 희망을 갖고 가봤던 길에 대한 크고작은 실패나 별거 없었던 결과에 대한 실망 혹은 너무 잘 아는 그 길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안전한 곳에서 다시 그 길을 혹은 다른 길을 가 보는 것 자체가 망설여 지는 것 조차 당연하다.


다만 내가 가봤던 길이라도 다시 가는 길이 아주 똑같은 길 이라는 보장은 없다.


더 잘 될 것이다.


또한, 지금 그 길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의 나로 그저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두려움이 앞서 아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다가올 나의 성장과 나에대한 가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이다.


후회없을 만큼의 많은 도전을 원없이 해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혹시 지금 있는 그 불안함을 무시하고 하고싶은 길에 대한 도전을 과감히 시도했더니..

대박! 이 터진다면 그때 내가 왜 그런 별것도 아닌 고민을 했지? 하며 피식 웃는 날이 오지 않을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테니.


이왕 가보고 싶은 길을 간다면 걱정이나 불안보다는 더 좋은 길이 펼쳐질 거라고 믿고 상상하며 설레는게 낫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다시 내안의 열정과 믿음, 희망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두려워한다고 돌아오는 것 하나 없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다. 다만 내가 준비하고 노력해서 잘 될거라고 믿는 도전에 있어서는 성장과 발전, 더 큰 행복이 따라올 것이다.


원하면 이루어진다.


프랑스 시골 강 개조 및 청소
뉴질랜드에서 타던 카약
뉴질랜드에서 낙마전 (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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