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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에 Apr 12. 2019

헬로우, 인디아!

 Welcome to India, 신들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 난 ‘인도’라는 낯선 땅, 여행하기 험하다는 그 곳으로 가는 중이다. 처음 혼자 떠나는 먼 여행이라 그런가? 비행기 타는 내내 두통이 멈추지 않아 승무원에게 두통약 한 알을 받아서 먹었다. 질끈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오진 않는다. 친구들의 걱정 어린 말이 하나 둘 떠오른다.     

“가본 곳도 아니고, 인도인데... 혼자 여행해도 괜찮겠어?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그러지.”

“인터넷에서 동행을 구해보는 건 어때? 아무래도 여자 혼자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혼자 인도를 여행한다는 내 얘기에 약간의 불안한 기색조차 비추지 않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인도에 신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 중에 나 하나 지켜줄 신이 없을라고?” 하고 호기롭게 웃으며 받아넘겼다. 부모님께는 혼자 간다고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 친구 세 명과 같이 간다고 ‘하얀 거짓말(?)’을 해둔 상태다.

하지만 눈을 감으니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함과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는지, 걱정들이 뒤엉켜 두통과 함께 다가왔다. 뭘 믿고 혼자 가겠다고, 참.      


어느 순간부터 ‘인도’ 라는 곳이 점점 마음에 들어왔고, 그 곳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그 모든 걸 생생하게 체험하려면 꼭 혼자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짧은 첫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나니 ‘가자!’ 라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정작 여행을 준비하고 출발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과연 이게 잘 하고 있는 짓(?)일까?’ 라며 괜한 염려가 앞섰다. 

 여하튼 난 비행기 안에 있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여행 준비도 제법 했겠다, 공항에서 내리면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어때? 물어보면 누구라도 알려주겠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자,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비행기 안,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차창 밖에는 붉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비행기의 덜컹거림 속에 낯선 언어들이 뒤섞여 들려온다.  사리를 입은 에어인디아 승무원이 다가와 미소 지으며 식사를 건네준다. 터번을 두른 옆자리 인도 아저씨는 낯선 음식을 앞에 놓고 어떻게 먹어야 할 지 모르는 내 표정을 눈치 채고는 의기양양하게(혹은 능숙하게!) ‘짜파티’를 손으로 쭉쭉 잡아 뜯고 커리에 찍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곤 ‘어때? O.K.?' 라는 표정으로 눈을 찡긋해 보인다. 강렬한 커리 향은 순식간에 비행기 안에 가득 퍼진다. 짜파티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입 안 가득 커리 향을 느낀다.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델리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니 거의 밤 10시다. 그나마 부치는 짐이 없어서 막힘없이 진행된 것 같다. 서둘러 환전 창구로 가서 미리 준비한 미화 20달러를 내민다. 환전소 직원이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 환전 영수증을 창구 구멍 밖에 거의 내팽개치듯 던져주는 바람에 흠칫 놀란 내게, 그 직원은 "WELCOME TO INDIA!"라고 칼칼한 목소리로 외쳐서 나를 두 번 놀라게 한다. 그런데‘인디아’라는 단어가 귓가에 울리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여긴 인도야!  

드디어, 인도에 와있다.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공항 밖으로 빠져나오니, 더운 바람이 훅- 온 몸에 감겨온다. 

여러 종류의 차량들이 그야말로 ‘정신 사납게’ 울려대는 경적 소리와 함께 강하고 매캐한 뭔가가 코 속을 마구 찔러 온다. 코에 통증이 느껴진다. 낯선 냄새들을 뒤로 하고 가장 먼저 코에 와 닿는 건  매연이구나. 

앞으로 몇 걸음 내딛기 무섭게, 밤늦게 도착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쏠쏠한 벌이를 하려는 호객꾼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눈이 마주치자마자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헬로우, 마담!” “헬로~~~, 마담!” “마담!!!”

“마담, 어느 호텔로 가요? 어디 가든 데려다 줄 테니 우선 타요!” 라고 외치는 릭샤 운전사들 그리고 자신들의 ‘거래처’ 숙소로 손님을 몰고 가려는 택시 호객꾼들 통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게다가 오도카니 서있는 외국인 여자 여행자 주위에 몰려든 인도인들은 크고 검은 눈을 굴리며 그야말로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난 ‘동물원의 원숭이’가 됐다. 정작 그네들은 코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와서 쳐다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고개를 돌려도 다른 쪽에도 눈들이 있어서 마찬가지다. 

아니, 저렇게 가까이에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다니!

그냥 쳐다만 보는 사람에, 내 얼굴을 보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에, 손을 내밀고 돈을 달라고 외치는 꼬마도 있다. 꼬마에게 동전 하나를 내밀자 저만치에 있던 열 명 남짓 되는 꼬마들이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오며 “Money!” 라고 소리치며 손을 내민다. 강하게 반짝이는 스무 개가 넘는 까만 눈동자와 손바닥...

어떡하지? 

결국 난 그 꼬마들에게 미안하다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황급히 그 자리를 뜨기로 한다.


우선 여행자 거리인 ‘파하르간즈’로 가야 한다. 선불 택시 정류장에서 여행자 숙소가 있는 '메인바자르'까지 갈 택시를 알아보는데, 다행히 같은 곳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한국인 언니, 오빠라 안심이다. 흘끗 본 택시 기사 아저씨의 인상이 그다지 선해 보이지 않아 다소 긴장되지만선불 택시는 지금 이 시간, 배낭여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하지만 택시에 앉은 순간부터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난폭 운전’이란 말로는 표현 안 되는 택시 기사의 기막힌 ‘묘기 운전’에 가슴이 계속해서 철렁거린다. 게다가 앞서 벌어진 접촉사고로 연기에 휩싸인 채 뒤집힌 오토릭샤를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쉴 새 없이 사방에서 울려대는 경적 소리와 함께 앞, 뒤, 양옆 사방으로 흔들리며 난 제발 빨리,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게 해달라고 수많은 인도의 신들께 빌고, 또 빈다. 


델리의 밤거리에는 먼지와 매연과 소음과 소와 개와 그들의 배설물과 사람들이 한 곳에 ‘잡탕처럼’ 섞여 있다.난간까지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들을 가득 싣고 가는 버스,혼잡함엔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한 자태로 차도 중간에 서 있는 흰 소, 그 소 앞에서 멈춰서운전대를 돌리고 있는승용차들,무질서하게 서 있거나급정거하는차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모두 차도 위에 있다. 

 바로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풍경들이 머릿속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무질서와혼란 속에서 내 머리는 이 말도 안 되는상황은 뭔지,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하며 정신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멍하기만 하다.

‘여기가 인도란 곳이구나.’ 


매연과 흙먼지 속에서 소와 개와 자동차들 사이를 무사히 뚫고 도착한 숙소는 여행 책자에서 봐둔 가장 저렴한 곳이다.한국 돈으로 이천 원이 채 되지 않는 그 방에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가 필요한 것들만 최소한으로갖춰져 있다. 

커버가 다 뜯어진 매트리스와 낡아빠진 빛바랜 누런 침대 시트를 보며, 이차대전 때 부상병들이 누워 있던 병원 침대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과장된 상상이순간 머리를 스쳐갔다. 이어서,침대 시트 위를 장식하고 있는빈대와 그들의시체들과 쥐똥이 눈에 들어온다. 숙소의 가격을 생각하며 억지로 여기서 자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해본다. 여행책자에서도 저렴한 숙소에선 침대 시트 관리가 잘 안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었지.그럴 때를 대비해서침낭을 준비하라고 했고, 가져 왔으니 됐지 뭐. 

 그나마이 방의 미덕이라면, 방 안에 욕실 겸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싱글룸 이라는 것인데, 얇은 칸막이벽인데다가 칸막이가 천장 끝까지 닿아있지 않아 냄새가 그대로 흘러나온다.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무언가가 튀어나와 빠르게 지나간다. 

"쥐, 쥐다."

'아, 쥐가 있는 방에서 어떻게자? 잠은 다 잔건가. 잘려면 쥐를 잡아야 할텐데....

내가? 

숙소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해볼까? 방을 바꿔달라고 할까? 아님 다른 숙소로?' 

라고 생각이 꼬리를 무는 사이,쥐는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가 주었다.

'휴...... 고맙구나.' 

어쨌거나 이젠 잘 수 있겠다.    

틱. 


전등을 끄고 보니 완전한 어둠 속이다. 

그런데 똑. 똑. 똑.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도꼭지가 잠기지 않 은 모양이다. 2-3초에 한번 꼴로 물방울이 똑. 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다.

잠가볼까 생각하다가그냥 포기하기로 한다. 낡은 수도꼭지라 어차피 잘잠기지 않을 게 뻔하고, 막 도착한 여행 첫날에 각종 생물체와 그들의 배설물들(?)과 쥐까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보아서인지 피로가 확 몰려오는 것 같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고 싶지 않다. 눈을 감아 본다. 

피곤한데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똑. 똑. 똑.

이 세상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고치지 않을 바에야 그냥 저대로 둘 수밖에. 

똑. 똑. 똑.

어느새 내 머리도 물방울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함께 똑. 똑. 똑. 울리고 있다.

내 머리도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랑 다를 게 없잖아? 

피식 웃음이 난다. 

똑. 똑. 똑. 고장 난 수도꼭지가 한껏 바닥을 튕겨 대는 소리를 자장가로, 인도에서의 첫 밤이 요란하게도 지나가고 있다.


글:엉덩이로 글쓰기 2기 이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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