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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Nov 30. 2018

#14. "왜 이렇게 결혼을 빨리 해요?"

-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

2018.9.24(월) / 교대 입학 211일째.


교대 입학 후에 맞이하는 첫 여름방학을 나는 결혼준비로 정신없이 지나보냈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결혼식과 신혼여행으로 수업에 빠져야했다. 강의마다 교수님들께 따로 말씀 드리며 양해를 구했는데, 꽤 쑥쓰러운 일이었다.


결혼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들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한 교수님은 결혼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시며 "왜 이렇게 결혼을 빨리 해요?" 라고 물으셨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결혼을 빨리 하는게 아니고 학교를 늦게 들어온 거에요."라고 답했다. 고개를 숙이고 출석부에서 내 이름을 찾고 계시던 교수님은 나의 대답을 듣고서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쳐다보셨는데, 아마도 얼굴에 드러나는 연식(?)을 추측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가끔, 농담처럼 서른살이 아니라 "스물열살"이라고 주장하며 어른 되기를 거부했다. 그런데 결혼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나를 갑자기 훌쩍 어른으로 만드는 이벤트였다.


양가의 동의를 얻어 불필요한 절차를 최대한 생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랑님" "신부님"의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더구나 두 사람만이 아니라 양가 부모님의 의견까지 잘 조율해서, 이 결혼에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짝꿍은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서, 결혼식 직전까지 너무너무 바빴다. 자정을 훌쩍 넘겨 퇴근을 하고서는 다음날 4시반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한다고 쓰러지듯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파김치처럼 시들어가는 짝꿍의 얼굴을 보고있으면, 결혼준비를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보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나는 그 힘든 마음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어서, 그걸 견디지 못해 뛰쳐나온 사람이어서, 그걸 꾸역꾸역 버티며 살아남는 중인 짝꿍이 그저 안쓰러웠다. 그래서 결혼준비에 있어서는 그의 몫 상당부분을 내가 대신했다.


원래도 무슨무슨 세리머니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은 끝없이 많고, 대부분은 '웨딩'이라는 말만 앞에 붙으면 가격이 뻥튀기가 되었고, 그나마도 내가 구매하는 상품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선택해야하는 것은 내게 큰 불안이었다.


결혼준비가 힘들기는 해도 막상 드레스를 입고 공주 놀이(?)를 해보면 즐거워질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드레스를 입어보고 고르면서도, 메이크업을 받고 식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공주놀이로 즐겁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효율적으로, 부족한 점 없이 무난하게 사고없이, 결혼식이라는 큰 업무를 해치워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마치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담당했을 때처럼.


나는 결혼은 하고 싶지만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던 신부였다.




작은 원룸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청첩장을 한 장 한 장 접어 봉투에 넣고 스티커를 붙이는 '가내수공업'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청첩장을 접어 넣다가, 청첩장에 적힌 글귀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내 스스로도 낯선, '누구누구의 딸 아무개' 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청첩장을 주문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청첩장에는 신랑과 신부의 성을 적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성씨는 아버지 이름을 쓸 때 이미 밝혀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이름이 '이영희'라면 청첩장에는 '이철수'(아버지 이름) 의 딸 '영희' 라고만 쓰는 것이다.

  

내가 엄마와 아빠의 딸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내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에 내 이름이 '누구누구의 딸'로서 새겨진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짝꿍을 사랑하고, 짝꿍은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함께 인생을 꾸려가고 싶어서 결혼을 결정한 것뿐인데.


결혼식이라는 것은 결국 누구누구의 아들과 누구누구의 딸이, 누구누구를 모시고 '인증샷'을 찍느냐에 관한 문제인걸까.




사실은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를 주제로 한 브런치 <나의 꽃같은 날들>에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도 되는걸까, 잠시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학교 재학 중에 결혼식을 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 하나의 글로 정리해 남기기로 했다.


결혼식 날에는 교대의 같은 반 동기들 전부가 와서 떠들썩하게 축하를 해주었고, 동기들 중 두 명이 축가를 불러주었다. 언젠가 술자리에 이어진 코인노래방에서 내가 노래를 듣다가 반해서 특별히 축가를 부탁한 것이었다.


2학기 개강파티에서 청첩장을 나누어주자, 본인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받는 것이 처음이라며 신기해하던 귀여운 동기들, 결혼식이라고 단정한 정장까지 새로 사입고 와준 동기들, 신혼여행으로 수업을 빠진 동안에 내가 놓친 부분을 꼼꼼하게 챙겨준 동기들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스물열살' 교대생의 특별한 결혼식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서른 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나의 꽃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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