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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Jul 25. 2023

'신림동 칼부림' 사건, '사형선고' 해야 하나?

유족에게 '희망고문'인 사형, 이대로 존치하지 말자

 '신림동 테러' 사건의 범인에게 '사형'을 선고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주장이야 말로 되레 우리 사회가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할 이유라고 생각한다. 응보와 형벌에 대한 이야기를 앞다투어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심히 유감스럽다. 진짜 필요한 논의는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응보와 피해자 유족의 고통에만 집중하는 시선은 되레 이 사건을 더 끔찍한 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형제도라는 '선택지'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러니 이 제도를 완전히 폐지해 더 이상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같은 논의가 반복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1. 사형제도는 지난 2010년 이후 그 실효적 의미를 상실했다.


 지난 2007년, 전남 보성의 한 어부가 바다로 놀러 온 청춘 남녀 넷을 연달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광주고등법원은 '그 사람'에 대한 사형 선고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사형제도는 대한민국의 영혼(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이었다.


 재판부의 주장은 5:4로 아슬아슬하게 기각됐다. 사형제도는 합헌 결정 났다. 보성 어부 오종근은 2010년 사형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사법부의 사형 선고 빈도는 극단적으로 줄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미결수 열 명 중 아홉 명이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있다.


 오종근 이후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단 세 사람에 불과하다.


 2011년, 강화도에서 총격으로 4명을 살해한 해병대원 김모 상병이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1).


 2015년,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의 범인 장재진이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2).


 그러나, 2022년 노원구 세 모녀 살해 사건의 범인 김태현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두 사건의 차이는 '발생 연도'뿐이었다.


 대법원에서 확정된 김태현의 항소심 판결에는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피고인의 범행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다만 사형제는 폐지 논의가 계속돼 왔고 1998년 이래로 집행되지 않아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한 상태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명시됐다.


 이 사건은 사형제도 폐지에 중요한 논거가 된다. 만약 사형제도가 부활한다면, 같은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누구는 사형이지만 누구는 무기징역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이는 행위자가 행한 범죄에 따른 형벌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원칙을 무척이나 강하게 위협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감옥에 있는 사형수와 무기수들의 죄질에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무기수는 어떤 사형수보다 더 나쁘게 느껴지곤 한다.


 오종근 이후 사형을 확정받은 마지막 사람은 임도빈 병장이다.


 2016년, 육군 22사단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도빈 병장이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3).


 그러나, 임도빈 병장의 범행에 대해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통상적으로 '형량'이 부당함을 이유로 사건을 대법원에 가져갈 경우, 이를 인용해 대법관 13명이 함께 판결하는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1심 및 항소심 판결을 존중해 상고를 기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임도빈 병장에게 사형이 확정되어야 한다는 1심 및 항소심의 판결에 대해, 대법관들의 의견은 일치되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6년 2월, 임도빈 병장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으나 대법관 4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어떤 대법관은 찬성하고 어떤 대법관은 반대하는 '인간의 판결'로 우리 사회의 근본인 사람의 생명의 가부를 정하는 것은 실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간 대법원은 사형 선고에 있어 무척이나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 왔다. 그 판례는 다음과 같다.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형의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누구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형의 선고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형법 제51조가 규정한 사항을 중심으로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러한 심리를 거쳐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정이 있음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2. 인간의 도덕은 늘 시대적 한계 속에 있다.


 당장의 분노를 이유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건, 인간의 기본적 감정인 응보의 영역에서 일시적으로 통쾌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삶의 긴 관점에서도 영구히 납득 가능한 것일까?


 지난 1993년, 김진태씨가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 그는 1997년의 마지막 사형 집행 당시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어머니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한강에 유기했다. 그의 죄명은 '존속살해'였다. 그러나 이 판결은 과연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누구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했을까? 불과 30년 전 일이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그에 대한 사형 선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의 어머니는 약 30년간 그의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 그날 아버지는 칼을 들었고, 그 칼로 어머니의 머리를 찍었다. 이성을 잃은 김진태씨는 아버지를 살해해 존속살해죄 및 사체유기죄로 기소돼 사형수가 됐다.


 존속살해는 예나 지금이나 나쁘지만 대한민국 형법에 '비속살해'는 없다. 자식을 죽이는 죄는 없고 부모를 죽이는 죄만 더 엄히 처벌한다. 이는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이다. 이 법률은 일본 형법에서 비롯됐고 일본 형법에서 이 법률은 이미 폐지된 상황이다.


 만약 김진태씨가 2023년에 재판을 받았다면 그는 불우한 성장 배경 등을 이유로 사형은커녕 징역 20년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기징역을 그대로 남겨, 30년 뒤 가석방될 필요가 있는 이들은 가석방해야 한다.


 별로 정확한 통계는 아닌 것 같지만, 법무부에 따르면 건국 이후 920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이중 254명이 좌익 사상범이었다. 지금 그들을 법정에 세운다면 그들 중 그대로 사형을 선고받을 사람은 몇 사람 없다.


3. 유럽연합과의 외교 문제도 크다.


 한국은 이미 유럽연합을 통해 인도받은 범죄자에게는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를 한 상황이다. 범죄자가 유럽으로 도피한 후 검거되면, 그를 인도받기 위해서는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 모순은 무척이나 해소하기 어렵다. 누구는 유럽 도피 중 체포되어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누구는 필리핀 도피 중 체포되어서 사형을 받는다? 이는 형벌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4. 죽음은 그리 대단한 형벌이라 할 수 없다.


 인간은 결국 죽는다. 예외없이 소멸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은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형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반성도 참회도 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후 오랫동안 범행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형벌이라 믿는다. 교도소는 그야말로 인간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한 곳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퍼포먼스처럼 신문지 2장 반 정도의 공간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유를 누리는 우리들에게 방문을 열고 바깥 바람을 쐬러 가는 건 자유이지만, 거기서는 방문을 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 같은 나날들이 하루 이틀을 넘어, 5년, 12년, 20년간 반복된다. 이 때문에, 장기수들은 보통 9년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아를 잃고 정신을 못차리는 상태가 된다. 교도관들의 엄중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무기수 8명이 자살했다.


 제발 자신을 사형시켜 달라고 청원하는 무기수들도 있다. 강력범들에게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는 날이 있다. 내가 그날 그 장소(범행 현장)만 안 갔다면, 그날 그 일만 안 했다면 하고 후회감에 빠진다. 이 후회가 몇 년이고 몇 십년이고 반복된다. 그렇게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반복되며, 인생의 황금기를 그곳에서 다 보내고 늙게 된다. 미래에 대한 희망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이 같은 냉엄한 형벌을 두고도 불완전한 사형에 집착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5. 인간은 모두 그 자체로 존엄하다.


 흉악범의 사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어떻게 하면 더 끔찍한 보복을 할 것인지 논의하며 사형제도를 가져오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유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림동 테러범은 무기징역을 받을 것이다. 그에 대한 응보는 형사사법제도 시스템이 할 것이니, 그 같은 극단적 범행에 나서는 인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집중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제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와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인간에는 예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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