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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Aug 09. 2024

올림픽이 세계와 한국에 대해 말해주는 것.

2024 파리올림픽에 대한 단상을 모았다

1. 올림픽은 확실히, 오늘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다.


현재 이 행성에는 200여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이중 '1억 명'을 초과하는 인구를 보유한 국가는 총 16개국이다. 이 16개국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53억 명이다. 여기서 강성한 국력을 지닌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을 제외한 12개국의 인구는 약 33억 명이다. 이는 세계 인구의 40%에 해당한다.


(지난 8월 5일) 총 33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이들 12개국의 올림픽 성적이 궁금해서, 확인해 봤다.


이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건 브라질이었다. 1/4/5로, 총 10개의 메달을 얻었다. 다음으로는 필리핀이 금메달 1개를 얻어 두 번째로 높은 성적을 냈다. 이어 멕시코가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얻었다. 에티오피아는 은메달 1개를 얻었고, 인도는 동메달 3개를 얻었다. 이집트는 동메달 1개를 얻었다.


여기까지 언급된 6개국을 제외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콩고 민주 공화국은 단 하나의 메달도 얻지 못했다.


세계 인구의 40%가 거주하는 이들 12개국, 33억 명의 종합 성적은 금메달 2개, 은메달 7개, 동메달 10개가 전부였다. 이는 당시까지 금메달 9개 등 21개의 메달을 딴 한국에게 금메달순으로도, 합계순으로도 밀리는 수치에 해당했다.


근대 올림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쿠베르탱 남작은 "모든 스포츠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소설 <동물농장>의 유명한 문장을 비꼬고 싶다. "모든 스포츠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스포츠는 어떤 사람들에게 더욱 평등하다."


올림픽은 한국의 세계적 위치 역시, 명확히 보여준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확보한 김우진 선수에게 한 일본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한국이 양궁을 잘하는 비결이 궁금하다면서, 조선이나 고구려 때부터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김우진 선수는 "(그런 것보다) 한국은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 있다"면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실업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수들에게 운동을 해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이어 "협회도 공정하고, 협회장이 양궁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지원하면서 세계 정상을 지킬 고민을 하기 때문에 한국 양궁은 지속적으로 강한 것 같다"고 했다.


김우진 선수의 말을 듣고, 확실히 현장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 그런지 정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12개국에 한국과 같은 시스템이 있었다면 오늘날 한국은 단 하나의 양궁 금메달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올림픽 메달은 재능 있는 선수를 선발하고, 연령대에 맞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발전된 기술을 토대로 연마시키고, 운동을 계속하도록 지원한 데에서 나오는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 같은 특이 케이스도 있겠지만 결국 80%는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펠프스가 미국이 아닌 베트남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대단한 성과는 확실히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든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근성으로, 잘 버티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극도로 부유한(extremely wealthy) 국가다. 아래 첨부한 사진에 나오듯 한국은 세계에서 10번째로 많은 부를 소유한 강대국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1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닌 국가 중 12번째로 많다. 인구가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에선 6번째로 많다. 이 경우 한국 위에는 미국과 서유럽의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및 이탈리아 밖에 없다. 물론 '엔저'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여전히 일본이나 스페인 같은 국가와의 비교 방식에는 고민이 있을 수 있지만, 세계적 상황을 볼 때 한국은 확실히 극도로 부유한 국가다.


한국의 이번 성적은 이와 같은 부유함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운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원이, 현대그룹의 선구안에 의해 양궁이라는 종목에 조금 더 집중되었을 뿐 전반적으로는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메달 획득은 국위선양이라는 인식 역시 이 같은 결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 글은 대충 올림픽, 재밌게 보고 있고 솔직히 기쁜 순간도 많았지만 한국이 부유한 국가들 사이에서 근성으로 고군분투한 결과 어렵게 높은 순위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얼마 전 '세계은행'이 한국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 성장의 슈퍼스타라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아마 지금의 한국이 가진 위치성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2044년에도 한국의 인구는 4900만 명을 유지하니, 당분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의 일들이 너무 힘겨웠던 탓인지 세계적인 부국의 시민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고 여유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2.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전을 봤는데, 우크라이나가 승리해 첫 금메달을 땄다.


러시아 선수와의 악수를 거부하고 우크라이나에 첫 메달(동)을 안겼던 하를란 선수가 정말 잘했고, 선수들 모두 금메달을 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이 소식이 무척이나 기쁜 소식일 만큼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이 들었다.


하를란 선수가 동메달을 땄을 때 한 말이 떠오른다.


"제 동메달은 모든 우크라이나인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안고, 초반 열세를 뒤집고 멋진 승리를 보여줬다.


한국은 은메달을 땄는데 세계 1위 프랑스를 꺾고 처음으로 결승전에 진출한 상황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줬다. 프랑스를 꺾은 것도 대단하고, 은메달을 딴 것도 대단하다.


이날 새벽 경기를 끝까지 본 후 언론의 반응을 살폈다. 경기 결과가 속보로 보도됐는데, 댓글에 최세빈, 전하영 선수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었다. 그 어떤 뉴스를 봐도 죄다 같은 류의 비난이 있었다. 그냥 넘어가기엔 솔직히 심각했다.



한국 소속 선수 중,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전에 오른 선수들보다 더 간절히 승리를 바란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고 올림픽 은메달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이 같은 비난은 누구를 향한 걸까. '우리나라'가 금메달 하나 더 따야 하는데, 라는 마음. 국위선양이니 우리가 몇 위니 하는 마음과 시선, 일종의 자격지심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딴 금메달이 1,000개가 넘는 미국은 한국이 세계 속 한국의 위치를 신경 쓰는 시선으로 자국 선수들을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꼭 많은 금메달을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니더라도, 올림픽 메달을 국위선양이 아닌 땀 흘려 노력한 선수 개인의 훌륭한 성취라 보는 시각에서는 이 같은 비난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멋진 경기를 펼쳐 세계 1위 프랑스를 이기고 은메달을 딴 선수들의 분전이었을 것이다.


한국도 그동안 금메달 딸만큼 땄으니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 한국인들이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들이 혐오하곤 하는 중국인들이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과 무척이나 유사하다. 우리는 서로를 참 많이 닮았다.


3.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빛난 광경 중 하나는 경기 도중 넘어진 상대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워준 오상욱 선수의 매너였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차드가 이번 올림픽에 보낸 선수 3명 중 1명으로서 가슴 보호대도 차지 않고 세계 랭킹 2위 김우진에 맞서 분전했던 이스라엘 마다예 선수도 빛났다.


그는 내전과 불안한 정세로 고통받는 차드 국민들이 올림픽에서 펄럭일 국기를 보며 힘을 얻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 선수들이 체계적 훈련을 받은 것과 달리 마다예 선수는 변변한 코칭도 받지 않고, 오직 양궁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스스로 공부해 세계 무대에 섰다. 그가 쏜 1점은 10점보다 빛나는 1점이었다.


메달, 따면 좋겠지만 이런 걸 보면 오직 그것만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아닌 것 같다. 올림픽 과정에서 반복되는 한국의 순위 집착과 메달 집착을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혼신의 힘을 다한 황선우 선수가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살다 보면 마음대로 안 되는 일도 많고 운도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가 확인되자 몇몇 언론은 김우민, 황선우 선수의 국대 코치가 한 발언까지 재조명하며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다.


"3시간 뒤에 결승을 뛰어야 하고, 메달을 따느니 마느니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데 핸드폰 보고 있다."


몇몇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진으로 국민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언론은 이 같은 발언을 조명하며 이게 이번 일의 원인인 것처럼 내세웠다. 어떤 반응을 원하고 있는지, 뻔히 읽힌다. 만약 메달을 땄다면 천재성의 근거였을 것이다.


아파트로 급 나누며, "내가 사는 아파트가 네가 사는 아파트보다 비싸다"는 생각을 깔고 사는 사람들의 사회, 학벌로 급 나누며 "내 학교가 네 학교보다 입결 높다"고 생각하며 사는 우리 사회의 저열한 수준이 잘 드러나 보이는 반응이다.


한국인들이 싫어하곤 하는 일본 언론의 옛 보도가 떠오른다. 아사다 마오가 2015년에 부진으로 6위를 기록하자 일본 언론은 '설마 했던 6위'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한 신문 1면에는 그의 부진을 드러내는 사진에 '설마 했던 6위(まさかの6位)'라는 제목이 대문짝만 하게 붙었다. 오늘의 황선우 선수를 향한 반응처럼 참으로 가학적이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이 같은 지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서로를 닮았다. 압박감을 주입하며, 좋은 성적이라는 가장 중요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국민은 실망한다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부여해 고통을 준다. 그 성적을 토대로 평생의 취급을 결정한다.


같은 시기에 취재진에 밟혀 라켓이 부서졌던 탁구 세계 랭킹 1위 왕추친이 단식경기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한국 언론은 그의 탈락이 '한국엔 호재'라고 보도했다.


이 모든 일들이 참 피곤하다. 우리가 금메달을 몇 개 땄고 몇 위인지,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게 어떤 시선을 받고 있으며 어떤 위치에 있는지 하여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평균 엄청 신경 쓰며 사는 사람들의 나라답다. 물론 과거보다 낫지만, 좀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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