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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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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Jan 15.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3)

2014.09.06. 나미비아

 진동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얼굴 앞에 대고 눈을 뜨자 [오전 6시 20분]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망막에 맺혔다.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윗몸을 일으키자 꽤나 길어진 머리칼이 눈썹 밑을 간질였다. 옆 침대에 붙어있는 나무 사다리를 끌고 와서 내 침대에 연결한 뒤 터벅터벅 내려갔다.

 동이 터오는 새벽은 폐부에 상쾌한 공기를 몰고 왔다. 때때로 사람들은 속이 불편하거나 머리가 지끈거릴 때 장기나 뇌를 꺼내어 세척하고 싶다는 괴기한 욕구를 표출하곤 하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속이 정화되는 느낌. 마당에 서서 주변을 쓱 둘러본 뒤, 손에 든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들고 쇳소리가 나는 문으로 향했다.


 오늘도 아주머니가 담당하신 샐러드와 함께 각기 다른 맛을 가진 네 종류의 라면이 오늘의 아침식사였다. 라면은 총 다섯 개였으며, 같은 맛의 라면이 두 개였다.

 “라면을 어떻게 할까요?”

 “그냥 스프 다 넣고 끓이지, 뭐.”

 끓는 물에 면을 넣고 가루 스프들을 개봉하려는 찰나, 타카코 누나가 막았다.

 “잠깐만요, 이렇게 하죠.”

 그녀는 아저씨와 내가 들고 있던 스프들을 뺏어서 그릇과 포크, 숟가락이 준비되어 있는 각자의 자리 앞에 모아 놓았다.

 “면만 익혀서 마지막에 각자 취향에 맞게 넣어 먹는 거예요.”

 그런 방법이! 한국에서는 짜장 라면이나 비빔 라면 종류가 아닌 경우 맨 물에 면을 끓이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생각도 못 해본 방법이었다.

 면이 다 익고, 5인분으로 각자의 그릇에 나눈 다음에 적당량의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나는 채소 맛.”

 “그러면 저는 소고기 맛이요. 유키 형은요?”

 “음, 나는 닭고기 맛으로 할래.”

 보통 이 동네에서 판매하는 라면들은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라면처럼 각각 다른 이름과 특징이 있는 라면들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에 여러 맛이 있는 형태였다. 보통 채소 맛, 소고기 맛, 돼지고기 맛, 닭고기 맛, 양고기 맛, 버섯 맛 정도의 종류가 있었다. 나미비아에서는 못 찾았지만 외국에서 파는 신라면에는 ‘버섯 맛’ 라면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물론 ‘맵다’는 단어와 함께 말이다.


 차는 오전 8시 반에 사막 하늘 백패커스를 벗어났다. 삼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왈비스 만의 해변에는 상당한 수의 흰색 혹은 분홍색 새들이 모자이크처럼 박혀 있었다.

 “이야아.”

 신이 난 타카코 누나가 해변으로 달려갔다. 수백 마리의 플라밍고, 혹은 홍학이라고 부르는 새들이 갯벌에서 식사 중이었다.

 해안으로 난 도로 위에서 누군가는 조깅을 하며 지나갔고, 누군가는 거대한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로 홍학을 담아내고 있었다. 타카코 누나는 홍학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달려간 뒤에 박수를 짝짝짝 쳤다. 그러자 갯벌을 부리로 쪼아대며 아침밥을 먹던 녀석들은 동시에 떠올라 바다 쪽으로 몰려가고는 몇 초 뒤에 자신들이 왜 바다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다시 하나의 유기체처럼 붕 날아올라 갯벌로 돌아왔다.

 “킥킥킥.”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동시에 하나의 연속된 춤사위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북쪽을 향해 두어 시간을 올라와 도착한 곳은 케이프 크로스였다. 사무실에 사람 한 명당 50 나미비아 달러, 차 한 대에 20 나미비아 달러, 총 270 나미비아 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계속하여 안쪽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차에서 내리는데, 맙소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물개 섬에서 맡았던 냄새를 응축하여 가공할만한 위력을 갖춘 화생방 가스 무기를 만든 줄 알았다. 굉장한 지린내였다.

 “으악, 냄새. 악! 냄새!”

 차를 대는 곳 옆의 모래사장에 엎어져 있는 물개 세 마리로 다가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온 타카코 누나의 첫마디였다. 그녀는 주변을 방방 뛰며 어쩔 줄 몰라했다. 입으로는 연신 “냄새 나, 으악, 냄새 나.”를 반복하고 있었다.

 물개들의 사진을 찍고 냄새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만들어져 있는 난간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덮쳐오는 더욱 진한 냄새가 바다 냄새와 어우러지며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을 문제가 아니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수의 물개 떼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빈트후크를 나선 이후 목적지에 하나하나 들를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스타워즈 촬영지 같았던 어제의 지형도 신비로웠고 오전의 홍학 떼도 굉장했는데, 이건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해변 너머로는 거칠게 다가오는 파도에 철썩 부딪히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올라오는 수백 마리의 물개들이 보였고, 붉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해변에는 그 수십 배에 이르는, 수천 마리의 물개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걷거나 엎드려 있거나, 혹은 누워 있었다. 새끼 물개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 물개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물개들 위로는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어느새 난간의 저 멀리까지 가 있었다.

 “타카코 누나, 여기 와 봐요.”

 “못 가, 죽을 것 같아.”

 “그래도 한 번 와 봐요.”

 그녀는 난간까지 다가왔다가 짙어지는 악취에 비명소리를 지으며 차로 달려갔다. 그녀는 그 장소에서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케이프 크로스 입구 변에 지키는 사람 없이 덩그러니, 가격을 가리키는 50, 100, 200이라는 나무패와 함께 아마도 소금 결정으로 보이는 각기 다른 크기의 분홍색 물체들이 놓인 좌판을 지나 차를 남쪽으로 돌렸다. 해변을 따라 ‘스바코프문트’부터 북쪽의 ‘모 베이’까지 이어지는 C34 대로를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다가 동북쪽으로 내륙을 향해 뻗은 C35 대로로 진입했다. 브란트베르크 산 국립공원의 고대 유적인 ‘화이트 레이디’라는 이름의 벽화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C35 대로는 비포장 도로였다. 도로를 따라가니 마치 핵전쟁 이후의 세기말 풍경 같은 모습이 이어졌다. 넓은 도로 한쪽에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진 단 하나의 전선이 일정한 간격의 전신주를 따라 이어졌고, 언덕 하나 찾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지평선을 뽐내는 모래벌판 위를 차가 내달릴 때마다 뽀얀 먼지만이 자욱했다. 그 세기말 풍경에 정점을 찍어준 것은 한참 달리다가 발견한, 도로 한쪽에 버려진 것처럼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노란 트레일러였다. 견인차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그 노란 트레일러는 누가 버리고 간 것일까? 우리는 화이트 레이디를 140킬로미터 남겨 놓은 사막 허허벌판에서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빵, 치즈, 햄, 케첩, 마요네즈, 양배추, 토마토를 꺼내 점심을 해결했다.


 “뭐야, 저거.”

 어느덧 모래뿐이던 지역을 벗어나 지푸라기 색의 풀들이 땅을 뒤덮고 있는 초원을 지나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타카코 누나는 초원 속에 보이는 검은 덩어리들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유키 형도 그 덩어리들을 유심하게 보았다. 뒷좌석의 가운데 앉아 있던 나도 곧 발견했다.

 이번 렌터카 여행을 떠나오면서 운전석과 조수석은 당연히 운전을 맡은 두 일본인이 돌아가며 앉기로 했고, 넓지 않은 뒷좌석에서 아저씨, 아주머니, 나는 다른 곳에 비해 불편한 가운데 좌석을 번갈아가며 앉고 있었다.

 유키 형이 먼저 검은 덩어리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타조네요, 타조.”

 이때 깨달은 사실은 타조의 발음이 일본어로도 ‘타조’라는 것이었다. 사실 ‘타죠우’였지만, 아무튼 비슷했다.

 “와, 야생 타조는 처음 봐요. 동물원에서나 봤는데.”

 창문을 내리고 천천히 달리며 사진을 찍었다. “나도 사진 찍고 싶은데.”라던 타카코 누나도 결국 차를 잠시 멈추고 창문을 열어 타조들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타조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가에 나무 탁자와 고무 타이어를 세워놓고 예쁜 모양의 돌들을 파는 노점이 나타났다. ‘바둑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개 한 마리가 탁자 아래의 그늘에 누워 있었고, 세 아이가 장난을 치며 뛰놀고 있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아이와 유치원에 들어갔을 나이일까 싶은 한 아이가 있었는데, 큰 두 아이들은 서로 술래잡기와 씨름 같은 몸 장난을 치며 놀았고, 작은 아이는 그 둘을 졸래졸래 따라다녔다. 아이들 사진을 좋아하는 타카코 누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옆에 있던 유키 형까지 붙잡아서 아이들 사이에 앉혀놓고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마을 하나 보이지 않는 벌판에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작열하는 태양빛을 받으며 노점을 펼쳐놓은 이들의 집은 어디일까 궁금했다. 차도 보이지 않는데 여기까지는 걸어오는 것일까, 아니면 저녁에 차를 가진 누군가가 이들을 데리러 오는 것일까. 먹을 것은 가지고 있을까. 돌은 어디에서 가져오는 것일까.

 다양한 궁금증을 품은 채, 이들을 뒤로했다. 어느덧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나미비아 에롱고 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위스’, 그곳의 주유소 앞에 우리의 차가 멈춰 있었다.

 “여기 닫았는데?”

 차에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방문한 주유소의 주유기에는 뽀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위스는 가로세로 길이가 1킬로미터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에 주유소가 두 군데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볼까요?”

 마침 삼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두 남자가 보였다.

 “저기요, 여기 다른 주유소 있나요?”

 “좀 비싸기는 한데 안쪽에 하나 더 있어요. 그보다 이 돌 좀 보세요. 돌 좀 사가시죠.”

 여기에서도 돌을 팔고 있다. 이 동네는 참 돌덩이를 잘 파는군.

 “미안해요, 필요가 없어서. 정보 고마워요.”

 차로 돌아간 뒤에 주유소 이야기를 하자 일단 다음 마을까지 가보기로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일행들이었기 때문에 같은 보상이라면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약 한 시간 뒤에 다시 위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위스에서 화이트 레이디로 가는 길에 도저히 다른 마을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며, 두 번째 이유는 화이트 레이디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기에는 연료가 너무나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위스에서 휘발유 값이 비싼 그 주유소를 찾았다. 다른 주유소들은 보통 리터 당 1,100원 꼴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리터 당 1,600원 수준이다. 별 다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연료를 가득 채웠는데 6만 원 정도가 들어갔다. 이왕 정차한 김에 화장실도 다녀왔는데 화장실 이용비는 200원,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200원을 내니 문을 열어주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옆의 구멍가게에서 5,200원에 아이스크림 4개를 사와 나눠주었다. 무려 하나에 1,300원이나 하는, 물가 대비 굉장히 비싼 간식이었지만 그냥 평범한 막대 아이스크림이었다. 봉지 겉면에는 [패들 팝, 무지개, 캐러멜 맛 얼린 디저트]라는 단어들이 적혀 있었고, 사자 캐릭터가 갈색 가죽 장갑을 끼고 오른팔로 용맹하게 아이스크림을 휘두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노란색, 분홍색, 하늘색이 어우러진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처음 먹는 아이스크림이어서인지 독특한 건 없었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죄송하지만 입장은 오후 4시까지입니다.”

 오후 4시 20분, 화이트 레이디 입구에 도착한 시각이다. 관광을 마치고 출구로 나서는 관광객들이 출입구 안쪽으로 보였다. 그냥 처음에 비싸더라도 연료를 넣고 올 걸, 이라는 의미 없는 푸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소득 없이 브란트베르크 국립공원을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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