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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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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Feb 19.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8)

2014.09.08.~09.09. 나미비아

 천막 안에는 의자와 탁자 몇 개가 자리 잡고 있었고 탁상에는 서류 종이들이 늘어져 있었다. 경찰은 자리에 앉더니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멀뚱멀뚱 서 있는 우리들을 향해 입을 열며 다시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 표지 말이오.”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눈을 돌리니 ‘멈춤’이라고 적힌 작은 표지 하나가 보였다. 그 표지는 정말 뜬금없는 곳에 서 있었는데, 주변에 건물, 차, 나무, 사람 하물며 지나가는 동물 한 마리조차 없는, 정말 황량한 대지 위에 잘못 심어놓은 것처럼 어떠한 목적도 없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표지 앞에서 안 멈췄어요.”

 아주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몸짓을 취했다.

 “무슨 소리야. 유키가 브레이크 밟았잖아. 우리 멈췄었어.”

 아주머니는 앞의 두 문장은 한국어로, 마지막 문장은 그들에게 영어로 소리쳤다. 생각해보니 조금 브레이크를 밟은 것 같았던 느낌도 있고, 아니 잘 모르겠다. 사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잘 보이지도 않는 ‘멈춤’ 표지가 있는 건지 그 의미에 자꾸 물음표가 떠오를 뿐이었다.

 “그래, 분명 조금 쉬었다 갔던 것 같은데.”

 아저씨도 거들면서 음을 높였다. 타카코 누나는 살짝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를 내야 하죠?”

 질문하니 아까 꺼내 놓은 종이에 숫자를 적으며 대답했다.

 “1,000 나미비아 달러요.”

 운전자 본인으로 자리에 앉아 있던 유키 형은 자신 앞에 놓인 벌금 청구서를 보며 경찰한테 영어로 욕을 한 마디 내뱉었다.

 “이거 뭔 순 날강도 아니야? 길 같지도 않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 보이지도 않는 표지판 하나 멀리 세워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차 지나가니까 와서 붙잡고 있어.”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아주머니도 한 성격 하시는 분이었고, 유키 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경찰 쪽 분위기도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까는 우리를 보며 실실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쪽으로 다가갔다.

 “여기도 우리 놔줄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적당히 합의 보고 갈 길 가죠. 시간도 없는데.”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제가 조금 이야기해 볼게요.”

 씩씩거리며 앉아 있는 유키 형 옆으로 가서 마주 앉아있는 경찰에게 말했다.

 “우리가 실수를 한 것 같네요. 하지만 외국인이어서 지리도 익숙하지 않았고, 처음 생긴 일인데 조금 너그럽게 넘어가 주거나 비용을 낮춰 줄 수는 없을까요?”

 경찰 아저씨는 옆의 사람이랑 몇 마디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규정상 정해진 벌금이 있는 거라서.”

 몇 마디 더 나눠보며 사정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벌금은 3일 내로 빈트후크에 내세요.”

 “3일이요? 우리 빈트후크에 도착하려면 3일은 더 걸려요.”

 “그러면 오샤카티에서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세요.”

 그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다음 일을 다른 쪽으로 미뤘다. 한 경찰관은 내용을 전산에 입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유키 형의 여권번호와 운전면허번호를 적어갔다.


 오샤카티는 꽤나 정돈된 느낌의 정갈한 도시였다. 공항이 하나 있는 동네였고, 쇼핑센터나 숙소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문제는 로지와 게스트하우스 몇 군데를 전전하였으나 도미토리는 전혀 찾을 수 없고 가장 쌌던 방도 한 사람당 280 나미비아 달러를 부른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시내를 헤매다가 어둑어둑해질 때 즈음이 되어 결국 ‘오샤카티 게스트 호텔’이라는 숙소에 들어섰다. 캠핑은 1인당 100, 싱글룸 하나에 330, 더블룸 하나에 420, 트윈룸 하나에 400 나미비아 달러였는데 오늘 밤은 캠핑 대신 트윈룸 2개에 5명이 들어가서 자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모든 숙소의 더블룸과 트윈룸에는 2명밖에 들어갈 수 없으며, 일행이 다섯인 경우 방을 세 개는 잡아야 하지만, 숙소에서는 선뜻 우리의 사정을 봐주었다.

 “정말 죄송한데 혹시 불도 좀 쓸 수 있을까요?”

 금액을 계산하기 전에 계산대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서 계신 곳 오른쪽이 아침 식사하시는 식당이고 그 안쪽에 주방이 있어요. 음식은 그곳에서 하시면 될 거예요. 제가 주방 직원에게 말해놓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근래 받아본 것 중 가장 친절한 환대였다. 힘바족부터 시작해서 경찰을 거쳐 도시를 이 잡듯이 헤매고 다니던 피로까지 슬슬 사라져 갔다.

 우선 짐을 먼저 풀러 방으로 향했다. 계산대가 있는 건물에서 객실이 있는 건물 사이에는 텔레비전과 소파가 놓인 실내 쉼터가 있었고, 야외 중앙에는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객실 건물 뒤로는 야영장이 위치해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부부가 한 방을 쓰고, 타카코 누나, 유키 형, 내가 한 방을 썼다.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나와서 실내 쉼터에서 유키 형과 콜라 한 병을 마시며 앉아 있으니 곧 다른 일행들이 나왔다. 우리는 식재료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시설은 훌륭했다. 굉장히 넓었고, 굉장히 깨끗했다. 직원 한 명이 잠깐 열어서 엿본 냉장고 안에도 신선한 재료들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조식뿐 아니라 다른 요리들도 하는 주방인 것 같았다.

 “파스타랑 샐러드 하자.”

 “또 샐러드요?”

 “왜, 샐러드 싫어?”

 “아니요. 좋아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반복되는 메뉴에 나도 모르게 잠시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샐러드를 만드는 일은 아주머니와 타카코 누나가 맡았다. 파스타는 면을 삶고 소스만 올리면 됐기 때문에 그다지 손이 가는 작업이 없었다.

 “오까아상, 틈메이러.”

 타카코 누나는 언제인가부터 아주머니를 ‘오까아상’, 즉,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저씨에게는 ‘오또우상’, 즉,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유키 형은 ‘오바상’, ‘오지상’, 즉, ‘아주머니’, ‘아저씨’라고 불렀다.

 “응? 뭐라고?”

 자신을 ‘오까아상’이라고 부르는 건 알고 있지만, ‘틈메이러’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아주머니가 한국어로 되물었다.

 “트, 트으, 트음메이러.”

 “킥.”

 타카코 누나가 더듬거리며 최대한 혀를 굴려 발음하는 것을 파스타 냄비 불을 조절하며 듣다가 킥 하며 짧은 웃음이 터졌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미안해요. 비웃는 건 아니었어요.

 아주머니는 타카코 누나가 동그랗게 손을 마는 것을 보며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토마토! 잠깐만 기다려 봐. 웨이트.”

 토마토는 한국어 발음으로도 ‘토, 마, 토.’ 세 음절이고 일본어 발음으로도 마찬가지로 ‘토, 마, 토.’ 세 음절이다. 타카코 누나는 아주머니의 ‘토마토’라는 단어를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곧 토마토를 가지고 돌아왔다. 재료들이 다 갖춰지자 음식이 완성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완성된 음식들을 식당으로 가지고 나와 식탁 위에 올렸다. 냄비채로 가지고 온 파스타를 각자 식기에 덜어 식사하고 가운데 놓인 샐러드는 다 함께 먹었다.


 “저 정말 괜찮은데.”

 두 침대를 타카코 누나와 유키 형에게 주고 그 가운데 있는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우니 타카코 누나와 유키 형이 자기들의 덮는 이불을 각자 내가 깔고 잘 수 있도록 주었다. 이러다 보니 두 사람은 침대만 있지 덮는 이불은 없고, 나는 혼자 푹신한 이불을 두 개나 바닥에 깔고 침낭으로 덮는 이불을 대신하는 상황이 되었다. 즉, 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저 침낭 좋아서 정말 괜찮아요.”

 이불을 돌려주려고 하자 둘 다 만류했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도 괜찮아. 너 다 써.”

 가지고 다니던 값싼 파란 침낭이 생각났으나 그건 렌터카 여행 전에 카멜레온 백패커스에 맡겨두고 와 버렸다.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괜찮다니까.”

 그렇게까지 만류한다면야 감사히 잘 쓰기로 했다. 방의 불을 끄고 스탠드 등을 켠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간 궁금했던 일본어 몇 가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고,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일본을 여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혼자, 혹은 동생이랑 저렴하게 여행할 때 찜질방을 이용했다고 말하니 일본에서는 만화방에 샤워 시설과 컴퓨터가 있고 24시간 열기 때문에 약 2만 5천 원 정도로 하룻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모텔을 비즈니스호텔이라고 부르며 하루 머무는데 5만 원 수준이라는 말도, 일본에서도 카지노와 파친코는 불법인데 밖에서 칩 같은 걸로 교환해서 법에 걸리는 것을 피한다는 등의 이야기도 들었다. 마지막에는 각국의 음식에 대한 내용까지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고요해진 사막의 밤처럼 결국 우리의 방에도 밤이 찾아왔다.


 기상 시간은 6시에서 6시 반 사이의 어느 때였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자동으로 침구류를 정리한 뒤 바깥으로 나왔다. 식당이 있는 건물까지 이어진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어제 보았던 수영장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기는 상쾌했다.

 우리가 낸 방값이 4인분이었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위해서 한 명의 조식 비에 해당하는 45 나미비아 달러를 추가로 지불했다. 식사로는 필요한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자두, 요거트, 시리얼, 곡물바, 망고 주스, 얼음물, 우유, 코코아, 커피, 차, 빵, 버터, 치즈, 초코 시럽, 땅콩버터, 햄 그리고 개인당 달걀프라이 두 개와 베이컨, 소시지가 나왔다. 4,500원이라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으나 꽤나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건 여기에서 못 내요.”

 계속 우리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우람한 덩치의 사람들을 지나, 왠지 모르게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경찰서에 들어가서 벌금 용지를 내밀었더니 나온 대답이다.

 “그럼 어디에다 내요?”

 그는 벌금 용지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보면 신호 위반 장소가 다른 행정 구역으로 되어 있어요, 이곳이 아니라. 이 벌금은 오푸우의 경찰서에 내야 해요.”

 미치겠군. 일행들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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