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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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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May 07.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12/完)

2014.09.12.~09.13. 나미비아

 “이번 주 차는 이미 다 나갔어요.”

 카멜레온 백패커스의 사무실에서 나오니 아저씨가 돌아와 있어서 함께 ‘유로카’ 사무실로 향했으나 역시 소득이 없었다.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던 남직원은 책상 달력을 내보이며 손가락으로 날짜를 가리켰다. 우리의 간절한 눈빛에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차가 한 대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택시를 타고 에로스 공항으로 향했다. 일국의 수도인 빈트후크의 공항에 설마 렌터카가 없으랴 싶은 마음이었다. 택시비로 일인당 20 나미비아 달러를 지급한 뒤, 각자 11 나미비아 달러짜리 탄산음료를 하나씩 사들고 한 렌터카 사무실로 향했다. 여기에서 얻은 소득은 ‘우와, 한 나라의 가장 큰 도시에 위치한 공항에 렌터카가 없을 수도 있구나. 세상에. 정말 신기하다.’라는 감정이었다. 뭐 오늘이 굉장한 여행 성수기에 해당하는 날이랄지, 무슨 나라에 큰일이 있나 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렌터카 사무실의 직원은 우리에게 ‘아페스 보나’라는 곳에 가보라며 종이에 철자를 적어 주었다. 원래는 차를 파는 곳인데 빌려주기도 한다고 한다. 그가 준 종잇조각에 의지하며 공항 입구에서 왼쪽 길로 크게 도니 ‘스페스 보나’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커다란 1층 건물 하나가 보였다. 아무래도 철자가 틀린 것 같다.

 건물 내부는 널찍하고 시원했으며 많은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쾌활해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에서 차를 빌릴 수도 있나요?”

 “아니요, 손님. 여기에서는 차를 판매만 하고 있습니다. 차를 빌리시려면, 잠깐만요.”

 그는 책상으로 가서 넓은 종이 하나를 펼쳐 보였다. 빈트후크 시내의 모습이 그려진 지도였다. 그는 펜을 들고 거침없이 지도 위에 동그라미를 쳤다.

 “차는 여기에서 빌릴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시내 반대편에 위치하는 곳이라 꽤 멀어요. 택시를 타고 가셔야 할 겁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까지 가면 일인당 택시비를 20 나미비아 달러를 부를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조금 더 가까운 곳, 여기, 경찰서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일인당 10 나미비아 달러거든요. 경찰서에 내리면 여기까지 걸어서 매우 가까워요.”

 그는 우리가 있는 매장, 그가 설명하고 있는 렌터카 사무실, 그리고 경찰서에 큼지막한 동그라미를 치며 소소한 팁까지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오케이,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유키 형과 나는 그 친절하고 멋있고 키 크고 잘생긴 직원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스페스 보나’ 매장을 나왔다.

 매장 밖에 바로 택시가 보이지 않아서 일단 시내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잠시 걷다 보니 다른 렌터카 회사 하나가 눈에 띄어 사무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륜구동만 취급하며, 게다가 현재 차도 없다고 한다. 다른 회사 하나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니 여기서도 또 ‘스페스 보나’를 알려주었다. 음, 도대체 자동차 판매 매장인 ‘스페스 보나’는 어째서 현지인들에게 렌터카 매장이 된 걸까. 이 매장의 직원은 전화번호도 하나 알려줬는데 직접 걸어보니 연결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택시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잡아타니 운전수는 신나게 전화 중이다. 그의 전화가 끝날 때까지 한 3분 21초 정도 기다린 뒤, 경찰서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덜컹대는 택시가 신나게 도로 위를 질주했다.     


 내리쬐는 햇볕이 지나치게 따사로운 빈트후크의 도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두 청년을 구제해 준 것은 표지판도 휴대전화 지도도 아닌 지나가는 현지인이었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참 친절했다. 행인에게 길을 물으면 대부분 그냥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동행해주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길을 알려주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는데 이곳 나미비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는 널찍한 건물 내부에서 한 직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혹시 이번 주말에 빌릴 수 있는 차가 있을까요?”

 “물론이죠. 어떤 차가 필요하세요?”

 오.

 우리 둘은 마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차 목록을 먼저 볼 수 있을까요?”

 직원은 우리에게 차량의 사진과 성능이 실려 있는 책자를 건네주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격이었다. 두 명뿐이었으므로 작을수록 좋았고, 기어 변환은 자동이면 좋았으나 수동이라도 별 상관없었다. 지난 다섯 명 여행 때는 이미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두 명이 있었고, 막상 지금 배워서 운전을 하기는 조금 두려웠으나, 유키 형과 둘 뿐이라면 형에게 좀 배우고 운전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난 한 주간 돌아다녀 본 바로는 나미비아의 도로는 경사가 많은 편도 아니었으며 교통량도 적었으므로 수동을 빌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최종적으로 결정한 차량은 ‘피아트 푼토 1.4 팝’이었다. 오늘, 9월 12일 금요일 낮 12시부터 월요일 낮 12시까지 3일, 총 72시간을 2,212 나미비아 달러에 빌렸다. 하루 약 7만 원, 저렴하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주말 포함된 가격에 사람이 두 명이므로 크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결국 수동으로 빌리게 되었는데 내일 빈트후크를 벗어난 이후 따로 연습을 하는 쪽으로 정했다.

 차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유키 형이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차를 점검한 뒤, 계약을 마치고 부드럽게 운전해 나왔다. ‘헝그리 라이언’에서 치킨과 콜라로 점심을 마치고 픽앤페이에서 빵, 딸기잼, 크림 빵, 초코 빵, 꽈배기, 과자, 주스를 산 뒤 정산을 위해 우선 카드보드 백패커스로 향했다.

     

 타카코 누나는 나미비아를 떠날 짐을 정리하고, 유키 형과 나는 야외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어느덧 짐 정리를 마친 타카코 누나가 야외로 나와서 나는 그녀에게 같이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몇 장 받고, 유키 형은 빨래를 하러 갔다. 내일 사막으로 가는 우리를 위해 타카코 누나는 나미브 사막 여행에 대한 조언을 몇 가지 건넸고, 유키 형이 돌아올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빨래를 마친 유키 형이 돌아온 뒤에는 셋이 함께 유키 형의 아프리카 일정을 짰다. 그는 내일부터 있을 사막 여행을 마친 뒤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지에 해당하는 오카방고 델타를 보기 위해 나미비아 동쪽에 있는 나라인 보츠와나의 도시, 마운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후 북미의 나이아가라, 남미의 이구아수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부르는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잠비아의 마을, 리빙스톤을 들르고, 잠비아 수도인 루사카, 짐바브웨 수도인 하라레를 거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아프리카를 벗어나기로 했다. 훌륭한 일정이었다. 나는 계속 북쪽으로 가야 했기에 짐바브웨와 요하네스버그를 들르지 못하는 것이 꽤나 아쉬웠으므로 훗날 유키 형과 다시 만나면 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이제 나는 가야겠다.”

 타카코 누나가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앞으로도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랄게요.”

 “고마워. 너도 사막 구경 재밌게 하고, 몸 건강히 여행 잘 하길 바라.”

 오후 5시에 타카코 누나는 카드보드 백패커스의 문을 열고 빈트후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녀는 이제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으로 간 뒤 아프리카를 벗어날 것이다.

 “저도 숙소로 돌아가 볼게요.”

 타카코 누나를 먼저 보낸 뒤 나도 곧 카드보드를 나왔다. 픽앤페이에서 랜턴용 건전지, 볼펜, 바닐라 맛 네스퀵 우유를 산 뒤 카멜레온 백패커스를 향해 걸었다. 바닐라 맛 우유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나중에 한국에도 생기려나. 생기면 꼭 사서 다시 마셔야지.     


 턱, 턱, 턱.

 착, 착, 착, 착.

 치익.

 감자와 양파를 썰고 냄비에 기름을 두른 뒤 볶았다. 감자가 적당히 익은 뒤 준비해놓은 소고기도 함께 볶고, 물을 부어 카레 가루를 섞었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시던 아주머니는 내가 돌아오자 옆에서 오이소박이와 샐러드를 만드셨다. 냄비에서는 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세 명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보여 카카오톡으로 유키 형에게 연락을 했다. 곧 도착한 유키 형은 모레, 14일 저녁 숙박을 카드보드의 도미토리로 예약해 놨다고 말했는데, 따라서 사막 여행을 마친 뒤에는 같이 카드보드로 가기로 했다.

 맥주와 함께 밤은 아름답게 저물어갔다. 넷이 먹기에도 식사가 너무 많아서 지나가던 쇼고 씨도 붙잡아 합류시켰다. 그는 일본인 특유의 과장이 섞인 말투로 “맛있네요, 맛있어.”를 반복했다. 비행기 조종사인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로 그가 식탁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동안 나는 빨래를 걷으러 잠시 자리를 벗어났다.

 빨래는 숙소의 야영장 쪽에 걸려 있는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빨래 옆에서는 한 아저씨가 벽에 기대어 얼굴이 적당히 상기된 채로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좋은 저녁이네.”

 “네,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왔나?”

 “한국이요. 아저씨는요?”

 “난 독일에서 왔네.”

 “오, 독일이요? 맥주의 나라죠.”

 “하하하.”

 그는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한 얼굴로 즐겁게 웃었다. 말투가 상당히 부드럽고 신사적인 느낌이었다.

 “독일에는 와 본 적이 있나?”

 “아직 없어요. 꼭 가보고 싶은 나라긴 한데. 저도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

 “좋지, 좋아. 언제쯤 와 볼 계획은 있고?”

 “지금 남아프리카 공화국부터 계속 북쪽으로 가는 여행을 하고 있어서요. 기회가 된다면 이번 겨울에라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직 정해진 계획은 아니어서 잘 모르겠어요. 다만 나중에, 몇 년 후에라도 꼭 갈 생각이에요.”

 “오게 되면 맥주라도 대접하고 싶군. 독일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악수를 아나?”

 “아니요. 어떻게 하는데요?”

 그는 나의 손을 잡은 뒤 팔꿈치를 구부려 나와 어깨를 마주 부딪쳤다.

 “오케이, 알겠어요. 이렇게요?”

 그의 행동을 재연해 보이자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훌륭해. 적을 것 좀 있나? 내 이메일을 알려줄 테니 독일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좋죠. 여기에 적어주세요.”

 수첩에 메일 주소를 받은 뒤 그와 인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돌아오니 이미 식사는 마무리된 뒤였다. 남은 식기들과 자리를 정리한 뒤, 쇼고 씨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거실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는 한국의 일상적인 식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일본과 그다지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다만 찬이 좀 많은 편이죠.”

 “식당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가정마다, 상황마다 다른 편이기는 해요. 시간이 없거나 형편이 조금 힘들면 주 요리 하나나 찬 하나에 먹기도 하지만 보통 주 요리, 국 요리, 계란말이나 장조림 같은 보조 음식들에 멸치조림이나 김치 같은 반찬들도 함께 먹는 경우도 많죠. 일본에서 밥 먹을 때 주로 먹는 건 뭔가요? 사람마다 물론 다르지만 한국에선 아무래도 김치를 많이 먹는 편이긴 하죠.”

 “일본에서 김치 같은 음식이라면 아무래도 매실 장아찌겠지만, 매끼 먹으려고 하거나 아침에라도 챙겨 먹고 싶은 거라면 된장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된장국이요?”

 “응, 된장국은 뭐랄까, 일본인에겐 소울 푸드 같은 느낌이라서. 그런 뉴스도 나온 적이 있어. 된장국 때문에 이혼했다는.”

 “된장국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요?”

 “맞아, 부인은 된장국에 꼭 두부를 넣는 사람이었는데 남편은 된장국에 두부를 넣는 건 된장국에 대한 모욕이라는 거지. 결국 가장 기본적인 식탁 위가 맞지 않아 이혼까지 간 경우지. 극단적인 경우지만 그만큼 된장국은 ‘엄마의 손맛’ 같은 느낌이 드는 음식이야.”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의 가정식에서 밥 옆에 된장국을 놓고 식사하면서 물처럼 마시는 모습. 보통 아무것도 안 넣고 물에 된장만 풀거나 잘게 자른 버섯이나 두부, 파 같은 걸 넣어 먹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 보통 그렇게 밥 옆에 두고 항상 물처럼 마시는 느낌이야.”

 수다 중에는 한국의 음식 이야기도 나왔다. 삼겹살이 고기가 세 겹으로 되어 있는 모양으로 보여 돼지의 그 부위를 그렇게 부른다고 설명하니, 그는 지금까지 삼겹살이 그 고기와 김치, 마늘, 쌈장, 상추, 깻잎, 부추 등 모든 재료를 쌈 싸서 먹는 음식의 이름으로 알았다며 놀라 했다. 삼겹살 고기만 구워서 먹어도 삼겹살이기에 맞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 식당에서 삼겹살을 주문하면 그렇게 다른 것들이 다 같이 나오고, 보통 쌈을 싸 먹는 음식으로 외국에 알려져 있으니 외국에서는 그렇게 알 수도 있겠다 싶어 나도 새삼 신기하고 재밌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국의 음식들 중에도 아마 그런 것들이 많이 있겠지.

 그와의 대화는 밤 11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내일도 먼 길을 가려면 이제 그만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겠다. 


 “그럼 저희는 먼저 출발할게요.”

 오전 7시, 카멜레온 백패커스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오자 유키 형이 운전해 온 차가 보였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나와 유키 형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다.

 “그래, 조심해서 잘 다녀오고, 운전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두 분은 케이프타운으로 가신다고요?”

 “응, 우리도 이제 준비해야지. 와, 이제 우리 한국에서나 보겠네? 유키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9월 4일 아침, 처음으로 이곳, 카멜레온 백패커스에서 만나 지금, 9월 13일 아침에 이르기까지 열흘간 밤낮으로 함께 했던 감사하고 유쾌한 분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되니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과연 아무런 접점이 없던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나 나미비아에서의 흥분되었던 자동차 여행에 대해 술 한 잔 기울이며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때도 다섯 명이 함께라면 참 좋겠네. 그 먼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우리들의 나라에서 나눈다면 얼마나 즐겁고 지금 이 순간이 찬란할까. 추억은 세월을 먹어 아름다움으로 물들고 인연은 시간을 거쳐 더욱 단단해진다. 다음에 다시 만나는 날은 아마 내년이나 내후년일 테지. 그때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기를.

 “한국에 도착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래, 건강히 다음에 보자.”

 엔진이 돌았다. 우리는 곧 도시를 벗어나 너른 평야로 들어섰다.

 차는 곧은 대로를 따라 남쪽을 향해 달렸다.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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