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요즘 SNS에서는 고양이가 세상의 중심인 것 같아보이기도 한다. 귀엽고 엉뚱한 행동들로 동서를 막론하고 집고양이 길고양이를 막론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독차지하고 있는 고양이들은 정말 세상을 구하러 오기라도 한걸까? 사실 근대화 시기만 하더라도 고양이는 이렇게 사랑받는 동물은 아니었다. 길고양이들이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며 환영받지 못했을 때가 불과 십이십여년 전이다. 인간이 고양이와 이렇게 잘 지내게 되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고양이들이 리브랜딩이라도 한 것일까? 사실 그 이면에는 인류의 의식이 진화했다는 징표가 있다.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이다. 인간과 함께 살아도 인간에게 의존적이기보다 자신의 영역과 바운더리가 중요하고, 자신의 스케쥴에 맞추어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세상에 가끔 다른 존재들을 허용해 관계를 맺기도 하는데 그 중에 인간이 있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공감능력이 없거나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다.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건적인 무리생활을 하며 사회를 형성한다. 하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인류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고양이의 모습에서 우리가 원하는 관계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에서 인류는 너와 내가 다른 이분법으로 분리되는 의식에서 경쟁하고 서로를 지배하며 살아왔다. 의식의 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인류의 모습은 하나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모든 종교와 영성에서,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있다고 이야기하고 성인(聖人)들은 항상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장자는 꿈에서 내가 나비인지 나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는 호접지몽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우리가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의식의 상태가 여기에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이 몸의 바운더리까지만이 나라고 할 수 있는가?
현대 심리학의 시조격인 칼 융 (1875 - 1961)은 우리가 개별의식을 너머 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공통으로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제시했다. 가령 서로 소통하지 않는 인류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발명을 해내는 등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인본주의 심리학과 자아초월 심리학을 창시한 아브라함 매슬로우 (1908 - 1970)는 인간은 욕구의 단계를 충족하며 성장해나간다고 제시했으며, 자아초월 심리학에 큰 공헌을 하고 통합심리학을 창시한 켄 윌버 (1949 - )는 에고에서 시작된 의식은 무경계 상태인 합일의식에 도달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제시했다.
자아초월 심리학 (초개인 심리학; Transpersonal Psychology)는 매슬로우와 윌버가 제시하는 개인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의식 상태로의 인간 발달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유불선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는데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며 함께 잘사는 방법을 도모하는 유교, 일체 만물에 자비를 추구하는 불교, 만물과 도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신선을 추구하는 도교 모두 초월 의식을 추구해왔고 우리의 문화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추상적으로 여겨져 온 영성의 상태와 의식의 진화가 과학적으로 활발하게 연구되는 중이다.
우리가 고양이를 비롯한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우리는 집을 지키거나 쥐를 잡아달라는 교환의 거래를 너머 교감하며 서로 사랑을 나누기를 원한다.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함께 삶을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의식이 진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징표이다. 먹고 살기가 급급할 때는 동물을 도구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여유가 있어지면 동물을 생명으로, 나아가 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저절로 동물과 새로운 공존 방식을 원하게 되어 가는 것이 바로 의식의 성장이다.
비록 동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와 다른 존재와 교감하고 공존하는데 켄 윌버가 말한 그대로 이것의 경계는 없다. (무경계; No boundary) 식물에도, 땅과 돌에도, 사물에도 의식은 깃들어있고 그 모든 것이 나와 하나된 의식을 공유한다. 집단무의식 혹은 집단의식은 내가 인식하는 바운더리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내가 태어나기 138억년 전부터 변화해온 우주의 의식이 우리 안에 있다. 개미 안에도 있고, 돌 안에도 있고, 그 의식은 각자 또 함께 연결되어 중첩되어 존재한다. 개인을 너머선 의식의 경계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너머서기에 영원하다.
고양이와 친구가 되어서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영성과 의식 어쩌구 복잡하고 추상적인 것 같지만 그 끝에는 결국 한가지 결론이 있다. 지구는 인류의 집이고, 우리들은 집을 지키고 가꿔야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어떤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우리는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것을 먹고 살아가고 우리의 생활에 맞게 자연을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는 머리가 좋지만 고양이 처럼 털도 없고 점프를 하거나 유연하지도 못하다. 고양이와 친구가 된다면 고양이가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자연의 어떤 면을 함께 돌보고 지켜주는 동반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부의 영혼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