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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유 Oct 20. 2024

나는 왜 쉽게 지칠까?

민감한 외향인 일지도

“엄마가 얼마나 힘든데, 왜 항상 이런 사고를 치니!”     



5살 아들이 실수로 엎지른 컵의 물이 쏟아지자 미진의 감정이 울컥 쏟아진다. 미진의 날 선 목소리가 거실 천장에 부딪히고 되돌아와 귓가를 쨍하고 울린다. 놀라서 잠시 멈칫하던 아들은 이내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걸 깨닫고 곧 죄책감에 빠져버렸다. 미진은 감정적으로 쉽게 압도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쌓여 있던 부정적 자극이 아들의 작은 실수에 폭발해 버렸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들에게 푼 모양새라 더욱 미안해졌고,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감정 조절 하나 못하는 자신이 하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을 수습하기 위해 아들을 안아주고 잠시 방에 들어가 눈을 감아보지만 이런 일이 자주 반복돼 불편하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아이 키우는 엄마가 대부분 이렇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모든 엄마가 꼭 이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외향적인 성격의 미진은 회사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가벼운 수다를 떨며 웃고,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미팅 도중 상사가 갑작스럽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던지면서 짜증스레 재촉하듯 말을 던진 순간, 자신이 비난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상사의 날카로운 눈빛과 미간의 일그러짐, 차가운 말투는 내내 미진의 마음속에 남아 분위기를 곱씹게 했다. 어디가 아픈 것처럼 갑자기 머리와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다른 사람에게 티를 내고 싶지 않아 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한다. 오히려 동료들 사이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쓴다. 미진은 주변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받아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자신이 못마땅하다.    





나만 모르는 민감한 외향인의 진실


미진의 사례는 사실 저의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나는 왜 항상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 혹은 ‘나는 왜 감정 기복이 심할까?’로 고민했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은 것도 아닌데 지내고 나면 불편한 마음이 커질 때가 많았고, 모임에 참석한다는 즐거움으로 외출했다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로 집에 돌아오는 일이 많았죠. 한때는 저의 사회성을 의심하기도 했어요. 사람을 좋아하는데 사회성이 떨어지니 ‘나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구나.’ 속상했습니다. 이런 모순된 감정이 늘 혼란스러웠고, 그로 인한 피로도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늘어갔지요. 체력이 약해 쉽게 지치고, 감정 조절이 어려운 제멋대로인 사람이라 체념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런 특성이 인간의 한 기질이라는 연구 결과를 접하게 됩니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

     

HSP(Highly Sensitive Person)는 감각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이 분야의 선구자인 일레인 아론(Elaine Aron)은 1990년대부터 ‘민감성’을 주제로 연구했습니다. 민감성은 예민한 행동과 별개로 타고난 섬세한 감각을 말하는데, 한 개인의 문제점, 취약점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기질 중 하나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HSP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감각적 자극에 민감해 빛, 소리, 냄새 등에 쉽게 압도된다.

2. 타인의 감정, 주변 환경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지만 이로 인한 감정적 소모도 크다.

3. 세밀한 변화와 작은 디테일에 깊이 반응한다.

4. 깊은 성찰과 과도한 생각을 자주 하며,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5. 에너지 소모가 빠르고, 번아웃을 자주 경험한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를 내향성과 헷갈릴 수 있지만, 일레인 아론은 연구를 통해 매우 민감한 사람 중 30%가 외향적임을 알아낸 바 있습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약 15~20%가 초감각, 초감정을 지닌 매우 민감한 사람에 해당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아직 자신의 기질을 모른 채 혼란스럽게 사는 경우가 많지요. 정신적으로 자주 지치고 피곤한 자신이 '남들보다 나약한 것이 아닐까?'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채요. 감정적으로 압도되는 상황에서는 그저 무력감을 느낄 뿐입니다.


     

 억울한 30%의 외향인
     



많은 사람이 외향인도 매우 민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에너지 넘치며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흔히 여기지요. 하지만 HSP(Highly Sensitive Person) 중 30%에 해당하는 외향인은 억울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자극과 에너지에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갖지만, 외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특성 때문에 쉽게 지치고 관계로부터 피하고 싶어지거든요. 특히 직장과 가정에서의 부담이 겹칠 때, 외향적인 성향과 HSP 기질 사이의 갈등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이로 인해 번아웃과 스트레스가 반복적으로 찾아오면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분이 듭니다.      


이것들은 외향성을 지닌 HSP에게 매우 큰 이질감과 불편함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외향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일치함을 느끼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들은 모순된 감정을 조정하려는 시도를 자꾸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외향적인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이런 애씀 때문에 매우 민감한 외형인은 남들보다 에너지를 더 쓰게 됩니다. 자동차로 따지면 연비가 낮은 사람들이에요. 똑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연비가 낮은 자동차는 수시로 주유소에 들러 기름 보충을 해줘야 합니다. 연비 좋은 차 흉내 낸다고 안 쉬고 한 번에 가려다가는 퍼지고 말지요.

      

외향성을 가져 사람 좋아하고 활동성은 넘치는데, 매우 민감한 감정과 감각을 타고나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도 크다 하니 조금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나요. 이게 나 인걸요. 우리의 특성과 기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남들과는 다른 노선,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잘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지요. 항상 정신적으로 지치고 피곤해하며, 모순된 감정에 괴로운 상태로 100세 시대를 살 수는 없으니까요.

      

아래는 일레인 아론이 완성한 <민감한 사람 테스트>입니다. 23개 항목 중 12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당신은 매우 민감한 사람입니다. 모든 심리테스트가 그렇지만 100% 맞는 것은 없어요. 다만, 12개 이하라도 몇 가지 항목에서 정도가 심하다면 민감한 사람으로 봐도 좋습니다.




나는 민감한 사람인가?     

1. 나는 주위에 있는 미묘한 것들을 인식하는 것 같다.

2.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3. 통증에 매우 민감하다.

4. 바쁘게 보낸 날은 침대나 어두운 방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 들어가 자극을 진정시켜야 한다.

5. 카페인에 특히 민감하다.

6. 밝은 빛, 강한 냄새, 거친 천, 또는 가까이에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같은 것들에 의해 쉽게 피곤해진다.

7. 풍요롭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갖고 있다.

8. 큰 소리에 불편해진다.

9. 미술이나 음악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10. 양심적이다.

11. 깜짝깜짝 놀란다.

12.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해야 할 때 당황한다.

13. 사람들이 불편해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지 안다.

14.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짜증이 난다.

15. 실수를 저지르거나 뭔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6. 폭력적인 영화, 드라마 장면을 애써 피한다.

17.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긴장을 한다.

18. 배가 아주 고프면 강한 내부 반응이 일어나면서 주의 집중이 안 되고 기분 또한 저하된다.

19. 생활의 변화에 의해 동요된다.

20. 섬세하고 미묘한 향기, 맛, 소리,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즐긴다.

21. 내 생활을 정돈해서 소란스럽거나 당황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22. 경쟁을 해야 한다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불안하거나 심해져서 평소보다도 훨씬 못한다.

23. 어렸을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민감하거나 숫기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은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가 공조한 ‘카카오 같이 가치’라는 웹에서 무료로 진단할 수 있는 <BIG 5> 성격테스트입니다. BIG5는 인간의 성격을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성으로 구분한 성격심리학계의 대표적인 성격 유형 체계입니다.  

https://together.kakao.com/big-five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매우 민감한 사람이자 외향성에 해당한다면 앞으로 내용에 관심 가져도 좋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자기 돌봄’과 ‘감정 관리’, ‘에너지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니까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의문점, 다른 사람들로부터 원치 않는 오해를 받고 억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길 바라며.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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