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육아를 자처하는 중입니다만

민과장은 오늘도 24시간 육아 중

by 미미유


단지 앞 편의점에는 느슨한 오후가 깔려 있었다. 늦가을의 햇빛이 플라스틱 의자 위로 따뜻하게 번졌다. 유모차를 밀고 편의점 앞을 지나던 민과장은 본능처럼 속도를 줄였다. 가을 햇살을 이불 삼아 의자에 몸을 맡긴 낯익은 사람이 반쯤 누워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우야!”


나른하게 감고 있던 준우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곧 웃음으로 번졌다.


“어? 선배님 여기 웬일이세요?”


“채린이 데리고 산책 나왔어.”


민과장은 유모차 바퀴의 브레이크를 채우고 준우 옆에 바로 섰다. 준우는 회사에서 보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돈된 셔츠에, 편안한 웃음. 육아만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가 아니라 자신만의 리듬으로 잘 유지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민과장은 늘 허둥지둥 정신이 반쯤 나간듯한 자신과 준우가 확연히 다르다고 느껴졌다.


“아기는?”


민과장이 묻자 준우가 입 주변에 묻어 있던 아이스크림을 쓱쓱 닦아내며 말했다.


“어린이집에 있어요. 지금은 오전만.”


순간 건조했던 민과장의 눈이 촉촉하게 커졌다.


“어린이집?”


“네. 지금은 적응 기간인데 오전에만 맡겨 보려고요.”


마치 “점심 뭐 먹었어요?” 같은 일상 얘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준우의 말에 민과장은 적잖이 놀랐다.


“여섯 달인데 벌써?”


“네. 생후 6개월부터 가능하잖아요. 와이프랑 한 달 정도 고민하고 결정했어요.”


민과장은 유모차 안을 내려다봤다. 채린이는 햇살에 눈이 부신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채린이가 12개월 되도록 어린이집에 맡길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민과장은 준우의 결단을 듣자, 망치로 머리 한 대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돌 전에는 어린이집 맡길 생각을 안 해봤어. 그래서 휴직도 최대한 쓰고 있거든."


“선배님 놀라셨죠. 어차피 맡길 거면 조금 빨리 맡기자 했어요. 그나저나 선배님은 도와주실 양가 부모님도 안 계시잖아요. 혼자서 채린이 돌보시는 거 진짜 대단하세요. "


“맞다. 원래 장모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지 않았어?”


“처음엔 그랬죠. 그런데 막상 장모님도 힘들어하시고, 저 복직하면 결국 어린이집 도움이 필요하겠더라고요. 미리 연습하면 좋죠. 그리고 ‘아이에게 어떤 하루가 더 좋은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준우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여유가 배어 나왔다. 민과장은 육아하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 여유가 어쩐지 낯설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아기들 루틴을 진짜 전문적으로 잡아주세요. 먹고, 자고, 놀고… 그게 제 손에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저는 오히려 더 조급해질 것 같았어요.”


‘조급해질 것 같았다.’


민과장 머릿속에서 '조급함'이라는 단어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민과장이 보기에 준우는 마치 조급함을 ‘관리 가능한 감정’으로 다루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래서 준우가 더 부러워졌다. 준우는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마저 베어 물며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아기랑 온종일 붙어 있으면 점점 숨이 막히더라고요. 어린이집 있는 시간에는 잠시 육아와 분리가 되니까 읽고 싶은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아요. 오늘도 운동 다녀오는 길에 햇빛이 좋아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있었어요.”


"그랬구나. 편해 보여. 부럽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선배님도 아시잖아요. 질투든 뭐든, 감정이라는 게 올라왔을 때 ‘없애야 할 문제’로 취급하면 더 커진다고.”


민과장은 순간, 지난 모임의 장면이 떠올랐다. 지오맘이 모임을 정리하면서 “질투가 나쁜 게 아니라 욕망의 신호일 수 있다”라고 말하던 순간. 준우가 이어 말했다.


“저는 육아도 똑같다고 느꼈어요. ‘좋은 아빠가 되려면 하루 24시간 다 내가 봐야 해’라고 목표를 세우는 순간, 아이도 저도 덜 행복해질 것 같더라고요.”


준우는 ‘열심히’보다 ‘균형’을 먼저 꺼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게 민과장에게는 쉽게 하지 못하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선택한 거야?”


“네.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는 오전 동안 저는 제 컨디션을 회복하고, 일도 정리하고. 무엇보다 제 시간을 갖고 나면 웃는 상태로 아이를 다시 만나니 육아가 더 좋더라고요.”


준우의 말을 듣고 있던 민과장은 가슴 한쪽이 살짝 무겁게 느껴졌다. ‘웃는 상태로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 문장은 민과장이 채린이를 낳고 돌보면서 한 번도 목표로 세워본 적 없는 것이었다. 준우가 민과장의 유모차를 힐끗 보았다.


“채린이도 이제 곧 돌이잖아요. 선배님 진짜 대단해요. 그동안 혼자 다 해오신 거. 이거 상 줘야 해.”


민과장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 쳤다.


“대단하긴. 그냥 내가 해야 하는 거니까 하는 거지 뭐.”


준우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선배님, ‘해야 하는 거’랑 ‘할 수 있는 거’ 사이에 선배님이 너무 혼자 끼어 계시진 마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주변에 충분히 양해도 구하고 요청도 해보시고요."


민과장은 숨을 들이켰다. 누가 지적한 것도 아닌데 정확히 찔린 기분이었다. 준우는 조용히 웃었다.


“지난번에 선배님 질투 카드 뽑으셨잖아요.”


민과장이 흠칫하자, 준우가 바로 덧붙였다.


“저는 그 감정이 되게 선배님 같았어요.”


“뭐가? 내가 질투하는 사람처럼 보여?”


민과장의 반응이 재미있게 느껴진 준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선배님이 원래 진짜 원하는 거 있으면 끝까지 붙잡고 해 보려는 사람이잖아요. 질투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신호 같은 거.”


"나 지금 너한테 질투 나는데 이거 신호니?"


민과장은 농담처럼 진심을 살며시 들춰 준우에게 보여줬다.


"그럴 수 있죠. 휴직하고 지금까지 줄곧 아이하고만 붙어 지내셨잖아요. 그럼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몸이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가볍게 던 지 농담이 묵직한 현실로 돌아오자 민과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민과장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유모차 안에서 채린이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민과장은 본능적으로 그 손을 잡아줬다.


“선배님,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게 선배님이 혼자 아이를 위해 다 버텨야 하는 건 아니에요."


"혼자 다 버티는 엄마. 그러게. 나는 왜 그게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을까?"






그날 저녁, 민과장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서랍 깊숙한 곳에서 3일 차까지 적어둔 감정일지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오맘이 준 양식에 따라 천천히 적어 보았다.


‘그래. 질투.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마주쳐 볼게.'





다음 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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