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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Mar 10. 2024

가족의 비밀 읽기


매주 월요일 7시 30분이면 합정으로 간다. 합정역에서 상수역 쪽으로 내려가는 골목에는 <말과 활 아카데미> 사무실이 있다. 말과 활 아카데미에서는 주기적으로 문학 관련 수업을 여는데 이번에 내가 참여한 수업은 <김화진의 다른 눈으로 소설 읽기>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4주 동안 새로운 소설을 읽는다. 작가의 국적도 소재도, 인물들의 시대 배경도 제각기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이번 소설들은 가족들에 관한 소설이다.


내가 본 소설들 속의 가족들은 우리 가족을 닮기도 했고, 닮지 않기도 했다. 세상에 우리 가족 같은 가족이 또 있네 싶어 놀라다가도 세상에 이런 가족이 존재하는가 싶어 놀랍다. 서로 완벽한 타인인 듯 보이는 각기 다른 가족들은 그 와중에 어느 한 면만큼은 우리 가족과 똑 닮았다.


1.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 첫 주에 읽었던 소설은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다. 여기에는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던 10살 내외에 가족들의 비밀을 알게 되는 소녀가 있다. 이 소녀가 가족의 비밀을 파악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저 상대방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 된다. 상대방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 상대방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 몸부림치고 있는지, 아니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약간의 초능력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 우리의 감정은 내가 아닌 타인과 이어져 있다고 느껴지고,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가 된다. 우리가 되고 나서 상대방의 상처와 아픔은 상대방 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운명 공동체처럼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2. 사라지지 않는다, 클라라 뒤퐁

: 완전하다는 건 무엇일까. 이 소설에는 불완전한 존재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불완전한 존재가 등장하자마자 한 가정은 자신들이 불완전한 존재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이 가족은 평온한 4인 가족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삶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자라나지 않는 셋째가 탄생하고 나서다. 셋째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어린아이 그 자체다.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을뿐더러 몸도 자라지 않는다. 영원히 보호받을 존재로 존재하는 이 막내의 운명을 함께하며 가족들은 자신들의 바뀐 삶을 받아들인다.


3.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부스 타킹턴

: 이것은 마지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의 절망 편 같다.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지금 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앨리스는 끊임없이 지금과 다른 삶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사 이 시기 가장 쉬운 다른 삶이란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명랑한 척 연기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며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으로 현실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앨리스. 하지만 거짓말과 허영으로 채워진 그녀의 비밀스러운 삶이 쉽게 희망으로 향할 순 없는 법이고. 끝을 알 수 없는 한 가족의 추락에 마음 쓰다 보면 그래도 한 조각의 희망은 남는다. 가장 어두운 부분을 통과해 명랑한 한 조각의 빛으로 내디는 앨리스의 뒷모습을 힘차게 응원하면서 말이다.


4. 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우스키

: 경제대공황을 거쳤던 주인공이 살아온 유년 시절에 대한 기록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난 속에서 살아온 작가와 그 이웃들은 매일같이 절망을 마주한다. 실낱같은 희망을 마주하다가도 어느새 절망은 성큼 곁에 와 있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낱낱이 파헤친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 세상에, 이렇게 상스럽고 난잡한 가족이 있나 싶다가도 그들의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배경을 떠올리면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배부른 상태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모두의 유년이 행복한 것은 아니고 그러한 불행 속에서 여전히 우리 모두는 나아간다는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일 수 있겠다.


내일은 이 수업의 마지막 시간이다. 함께 수강한 이들과 매주 피곤함과 게으름을 극복하고 새로운 소설을 읽어 왔다. 혼자서는 발견할 수 없었을 보물 같은 책들을 만났기에 이 수업의 의미는 감히 규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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