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land Apr 15. 2024

어느덧 사회생활 9년 차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금요일에는 다들 일찍 퇴근을 하기에 사무실은 벌써 텅 비어 가고 있었고, 근방에서 저녁 7시에 약속이 있었던 나는 슬렁슬렁 여유롭게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신입 팀원이 퇴근 인사를 건넸다. 출퇴근 시간이 잘 겹치지 않아 자주 보지 못하던 팀원의 인사에 반가워하던 나는 스몰토크를 나누다 그녀를 회사 앞 사거리까지 데려다주겠노라 자처했다. 횡단보도 파란 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주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문득 혹시 신입인 팀원에게는 나의 행동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덧 회사 생활 9년 차가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누군가가 나의 경력에 대해 물어오면 쉽게 대답이 나가지 않는다. 내가 몇년차인지 세는데 시간이 점차 오래 걸리기도 하거니와 조금은 믿기지 않아서 이다. 살짝 줄여 말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대학생활 기간을 넘어선 지도 오래되었고, 난 심지어 학교를 의대 다니듯 오래 다녔는데도 말이다, 진짜 이러다가는 초중고를 합친 시간보다 오래 다니고 말 터이다. 아직도 나는 신입인 팀원이 윗 선배들보다 가깝게 느껴지곤 하는데 그들에게는 내가 똑같이 어려운 선배들 중 한 명일수도 있겠다.


한 분야에서 십 년을 있다 보면 전문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여전히 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엉터리다. 물론 신입 때에 비해서는 제법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나는 내 마음속에 엉터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멀쩡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도 분명 마음속에 엉터리 같은 말과 행동이 뛰쳐나오려고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가끔 긴 끝나지 않는 긴 회의 시간이나 고삐 풀린 회식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엉터리 같은 면모를 뽐내는 동료를 목격하기도 한다.


9년쯤 회사를 다녀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단언컨대 엉터리인 면모가 없는 동료는 없다. 그럼에도 모두가 회사에서 제 몫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면모를 서로 눈 감아 주고 또 도와주기도 하면서 이 회사라는 집단은 굴러왔던 것이다. 나도 사실 마음속엔 너같이 행동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의 엉터리 같은 말과 행동을 받아들여 주면서 말이다. 다시 한번 되돌이켜 생각해 보자면 신입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나는 가끔 책상을 뒤엎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또다시 마음을 억누르고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극을 무사히 완수하고 있다.


적어도 동료들에게 내가 아직도 엉터리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정도의 영리함은 갖춰 나가자고 다짐하면서 내가 벌써 9년 차라는 끔찍한 사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혹시 10년 차가 되면 그때는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엉터리에 더해 꼰대까지 돼서는 안될 터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럴 거면 뭐라도 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