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JTBC 고양 하프 마라톤
JTBC 고양 하프마라톤에 참가했다. 첫 하프 마라톤이었다. 런데이 30분 달리기 8주 코스로 시작한 달리기 취미가 어느새 하프 마라톤까지 왔다.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느린가 불평하다가 쌓아온 기록을 살펴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느리긴 하지만 분명 점점 나아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하프 마라톤을 뛰기에는 분명 아직인데, 항상 그렇듯이 의욕이 앞선다.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잘 준비해 보면 또 어찌어찌 얼렁뚱땅 해낼지도 그리고 또 뭐 다 못 뛰면 어떠나,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귀하니까 이럴 때 그냥 해보는 거지! 그리고 살면서 집 앞에서 마라톤이 열릴 일이 있겠냔 말이다. 우선 신청부터 하고 본다.
마라톤 대회 당일. 역시나 연습은 부족했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달리기에는 딱 좋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 날 비가 잔뜩 내려 하늘에는 적당히 구름이 끼어 있었고, 기온도 낮았다. 땀이 흐르더라도 금방 식혀줄 수 있다는 듯 미풍은 상쾌하고 미세먼지 수치까지 낮다니! 이런 날 달리지 않는 건 역시 유죄다.
시작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역시나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미지의 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사실은 무겁게 다가온다. 달리면서 고비는 여러 번 왔는데, 첫 고비는 8km 내외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지금까지 달린 것보다 더 먼 거리를 앞으로도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10km 마라톤이었으면 곧 피니쉬 라인인데, 이 상태로 더 뛴다고? 나는 왜 이 고통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고 말았나!
레이스의 절반을 넘어가면서 주변에 사람들이 좀 덜 붐빈다. 아직 완주의 가능성이 남아 있기에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함에도 다리를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숫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셈만 주야장천 한다. 계산이 안되면 손가락도 이용하기도 한다. 12.7km 달렸으니 완주까지는 8.4km 내외. 13.1km 달렸으니 8km 남았고, 또 줄어드는 거리를 확인하고 싶어 워치를 반복적으로 보며 세는데 달린 거리는 쉬이 늘어나지 않는다.
15km쯤 달렸을 때 이게 러너스 하이인가 싶은 순간을 잠깐 만난다. 숨이 덜 차고, 다리는 알아서 앞뒤로 움직인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거 같다- 고 생각한 지 얼마 안 되어 여기저기서 통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남은 거리를 생각하면 여기서 포기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계속 달린다. 완주의 순간을 기다리면서, 대체 왜 완주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그때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중년 여성이 일행에게 오늘 마라톤이 열리는 줄 알았냐고 묻는다. 그리곤 느리게 스쳐 지나가는 나에게 외친다. 파이팅! 마라톤이 열리는 줄도 몰랐던 사람이 지나가며 건넨 응원이 마음에 콕 박힌다. 뛰고 있을 뿐인데 응원해 주는 마음을 생각하니 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3km 남았을 때 주로 끝에 응원 나온 엄마아빠가 보인다. 내가 팔을 흔드니 같이 팔을 흔든다. 내 이름을 외치며 힘차게 응원한다. 걱정도 불안도 섞이지 않은 순도 100% 응원이다. 멈춰서 그 순간을 담고 싶은 마음과 계속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부딪치다 관성처럼 달린다. 21.195km 하프 코스 완주다!
두 시간 반 가량 달리는 내내 고통이었는데, 막상 결승선을 들어오고 나니 해냈다는 만족감이 차오른다. 러너스 하이가 달리는 중이 아니라 달리고 나서 오는 거였나? 함께 완주한 일행과 다음번엔 더 잘 뛰자고, 풀 코스도 뛸 수 있겠다며 부푼 마음을 나눈다. 정말로 또 뛸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고통이 있을 지 알면서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일쯤엔 오른쪽 세 번째 발톱이 빠질 것 같다. (후기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