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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land May 13. 2024

부품 같은 단순함

대학생 때 대형 마트에서 시식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내가 맡았던 품목은 나뚜루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었다. 2+1 행사 등이 열릴 때면 아이스크림을 작은 종이컵에 담아두고 시식대 앞에 8시간씩 서 있었다.


나는 그 아르바이트를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우선 단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주말이나 평일 저녁을 고정적으로 빼지 않아도 괜찮았다. 행사가 열리는 장소도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부터 홈플러스까지 다양한 대형마트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속 시끄럽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작은 섬 같았다. 시작과 끝을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나면 누구도 나를 터치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작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담다 손에 묻어 자주 끈적였지만 그것도 닦으면 그만이었다. 진상인 손님은 있었지만, 뭐 다시 만날 일 없다 생각하니 역시나 넘길만했다.


나는 그저 부품처럼 시식대가 비어있지 않도록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었다. 그 부품 같은 단순함이 꽤나 반가웠다. 손을 움직이다 보면 머리는 어느새 고요해졌다. 시식대를 창고에 넣어놓고 나면 나는 마트 안에서 발생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가뿐히 함께 담아두고 텅 빈 마음으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난 뒤에도 그 고요함이 떠오를 때가 있다. 보통 사람과의 관계에 지쳤을 때이다. 불쾌하지만 계속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동료와의 의견충돌, 나를 평가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사와의 마찰, 그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나답지 못하게 행동했는지를 떠올릴 때면 더욱 그랬다. 퇴근을 하고 나서도 놓지 못하고 일을 품고 와야 할 때면 더욱, 로그아웃이 가능했던 그때 업무가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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