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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작소 Dec 21. 2020

항정살 구이와 청국장이 준 콤콤한 기쁨 한 조각

주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님을

하루 종일 심심했다.
책도 몇 권 읽었고, 세 끼 다 차리고, 틈틈이 예능 티브이도 보고, 대학원 마지막 과제들 제출도 하고, 해결해야 할 고민도 하고, 눈도 잠깐 붙였는데 그래도 심심했다.

"저녁 반찬은 뭐야?"
"음.... 항정살 구이! 낮에 먹던 청국장 남은 거랑."
"오.. 기대돼."
"혼자 먹어야 해. 아빠랑 엄마는 체중
조절해야 해서... 7시 40분 오케이?"
"콜!"
읽던 책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는다.

도 이미 앉혔지. 예약 해 놓았으니...

생각이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로 뻗는다.
'둘째가 숙소에서 24일에 나오니까 저녁을 준비해야겠지. 소고기 먹고 싶다고 했으니 저녁은 와인을 준비하고 스테이크를 준비해야겠네. 스테이크 굽기 공부 좀 해야겠다. 이 녀석은 이제 거의 적응했나 보네. 오늘은 전화 한 통 없네.'
새로 들어간 소속팀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거 같아 힘들어하던 녀석으로 생각이 옮아 탄다.

'어머, 7시 넘었네.'
며칠 전 냉동해 둔 항정살을 꺼내 굽는다.
'양이 좀 많은가? 남편한테 배추 속에 싸서 항정살 몇 점 먹으라고 해야겠다. 쌀 밥만 안 먹으면 지 뭐. 단백질이잖아. 싫다 하면서도 눈은 반짝이면서 앉아서 분명히 먹을 거야.'

"ㅇㅇ아, 게임해? 쩔 해두고 나와. 30분이면 다 먹을 수 있겠지~"
"엄마, 나 이젠 고렙이야."
"아, 그래? 지(죄) 송. 그런데 저녁밥 차릴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뭔 솔?"
"엄청 심심했거든. 저녁 준비하는데 즐거웠어.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기쁨 같은 거.. 그런 거 너 알아?"
"아... 지송!"

오 년, 십 년 이상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지만, 짧은 우울증 터널을 지나며 많은 것이 새로워졌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가볍게 얘기 못 하겠는 것.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것이 내게 있다는 것.
주는 것이 빼앗기거나 누구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는 것.
준다는 건, 내 것을 잃고 상대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기쁨을 공유한다는 것.
받지 않아도 그것으로 불러일으켜지는 소소한 감정들이 참으로 고맙다는 것.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게 선물이다.

그 기쁨이 더욱 커졌으면 하는 마음에,
제대로!
필요한 알맞은 크기로!
잘 전달해주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쓰다 보니 며칠간 고민하던 답을 찾은 것도 같다.

그림(C)CoolPublicDomain. 출처 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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