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공작소 Oct 22. 2020

내가 매력이 없나요?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지? - 사진출처 픽사베이

주 어릴 때는 나에 대한 무언가를 숨기기 급급해 하며 살았다.
항상 전전긍긍하며 뭔지 모를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정서가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듯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 과 '위축감'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들은 모자라고 부족하게 느껴지고 가진 것을 들추어 내는 것이 창피했다.
나는 무얼 해도 안될 것 같고, 어떤 것에든지 뒤쳐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대학 입시때 공부를 하면서도 '어차피 안 될 텐데 뭐.'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어떤 거짓말을 해서 위기를 모면해야 할지 그 생각만 가득했다.)

누군가에게 " 너는 **를 잘하는구나"라는 칭찬을 들으면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건지, 나의 취향인지 같은 것은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무턱 대고 들이대고 그것을 통해 나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한계에 부딫치게 되거나 마땅치 않은 피드백을 받게 되면 좌절하고 실망하며 또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는 것이 두려웠고 실수를 해서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할까봐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지고 두려웠었다.

마음 밑바닥에 깔린 수치심은 세상을 향한 나의 눈과 귀를 왜곡하게 만들었다.
내가 해내지 못 하는 것에만 집중하게되어 스스로 자책감과 비난을 선택하게 만들었고, 해냈던 것, 이루어 냈던 것, 성취했던 것들은 축소하고 뭉뚱그려 스쳐 지나가게 만들었다.

내가 가진 것은 부족하고 창피했기 때문에 멋지고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흉내내고 그 사람처럼 되려고 애를 썼던 것도 같다.
그들의 기대에 맞추려 애를 썼고 기대에 미치지 못 한 반응이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했고 나쁜 사람으로 취급해 버렸다.
그렇지만 실제로 내 마음은 그 사람의 눈 빛이 무서웠고 그 눈빛은 내게 '너는 참 부족하고 매력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 이라고 믿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만나는 자리를 만들지도 않고 주변을 피해 다녔다.
(훗 날 그 사람과 관련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에 대한 기억이 매우 달라 놀랐던 경험이 있다.)

나는 모자라고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하는 것이 그 당시 숨겨진 삶의 목표였던 것을 지금에야 알 수 있다.
그때의 나에겐 다른 사람에게 '참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너무 중요 했었다. 그래야 사람들 틈에 함께 살 수 있었고 인정 받고 어울릴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많은 염증을 싣고 온다.

그 땐 내가 왜 일주일 중 5~6일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하하 호호 웃다가, 휴일이나 주말이 되면 집순이가 되어 시체처럼 누워지내고 살 수 밖에 없었는지,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 했던 건지 잘 몰랐다. 단지 내가 체력이 약하고 민감해서 그렇다고만 여겼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사느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사용했기에 혼자가 되었을 땐 허망하고 허탈했던 것을 잘 몰랐다.
또한, 그 나이 때만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삶이 주는 아름다움은 스치 듯이 휘리릭 지나보내고 말았다는 것도 훗 날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들은 살아내면서 알게 된 고통스러운 아픔이고 슬픔이지만 앞으로 살아내야 할 가르침이었다.

개인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개인이 경험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하고 개인적인 삶의 양식을 가지게 된다.
(내가 수치심을 가지고 살았을 때 그에 관련 된 정보들만 수집하게 되는 것 처럼 반복적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같은 경험만을 반복하게 되며 그것을 사실로 믿고 점점 더 강화 된다. )
삶의 양식은 어떤 신경학적 자극 정도의 강도가 오지 않는 이상 깨어지기 힘들며, 나의 삶의 양식을 알게 되더라도 깨고 나오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생활 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네. ​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라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 뿐이야.
자네가 잘 못했다고 탓하는 것이 아닐세.

아들러의 목적론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라고 말해주는 거지.
지금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자네라고 말일세.
- 미움받을 용기 중

누군가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도움을 청했을 때, 어떤 신박한 방법을 알려 주어도 그렇게 실천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해답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체중감량의 방법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은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오히려 그렇게 하기 어려운 자신을 책망하게 되고 낙담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 그렇지. 역시 난 안돼. 정말 모지리구만."

심리학자 칼 로저스에 따르면, 적응상의 어려움의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져 있는) 정서적 요인이라고 이야기 한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수용 받는 경험이 필요하다.

(- 칼 로저스)

말하기 힘들고 찌질해 보이는 감정이라도 누군가 '이해하고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해소가 되고 아이러니 하게도 문제가 또렷히 보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용기가 생긴다.



지금 까지 만나 오던 사람이 아닌 새로운 관계를 제공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것, 혹은 그런 상황이 생긴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 아닐까 하고 뜬금없는 말로 마무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비밀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