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공포의 너머에는...
불안, 공포, 상실 등이 주는 삶의 메세지
최근에 시댁에 담장을 둘렀다.
사실 높은 담장이라기 보단 적당한 높이의 펜스지만, 집과 마당을 둘러 길게 경계를 지었다.
시댁은 서울 근교에 있는데 주변에는 밭이 많고 집 뒤로는 산이 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작고 귀여운 동물을 포함에 멧 돼지 까지 보게 된단다. 그러더니 작년에는 이상하게 조용한 낮이면 꽥꽥 소리를 지르는 고라니가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뭔가 산 속에서도 이상한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이녀석들이 사람들과 가까이 살다보니 겁이 없는지, 마당에서 천천히 걸어다니기도 한다.
처음엔 귀엽고 신기해서 두었는데, 이 녀석들이 가만히 두니 만만한지 집 안으로 들어와 밭을 망쳐 버리고 장독대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니 담장을 둘러야 겠다고 생각하셨다.
초록색 펜스가 유난히 경관을 해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 전엔 뒤에 있는 산도 앞 쪽에 있는 낮은 동산도 우리집이랑 어우러져 보기 좋았는데 말이다.
최근에 큰 아이에게 불안이 찾아 왔다.
불안이 강박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옆에서 바라보는 마음이 아프다. 나름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쓰는 녀석을 보면 속도 많이 탄다. 하지만, 그런 아이를 지켜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나에게도 무기력이 찾아왔었다. 무기력과 함께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이인증이었다.
내가 나같지 않은 느낌은 너무 무서웠고, 교과서에나 읽었던 자아가 분리되는 느낌을 내가 느낄 줄이야.
(우스운 소리 하나 하자면, 상담학 공부하면서 이인증, 이인증... 자아분리, 자아분리..하면서 외웠었는데, 그건 다 어디로 날라가고... 내가 , 딱 나 자신이 둘 로 나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검색창에 자아 분리를 쳐봤다는... 공부 따로 실제 따로.)
그 경험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된 다는 것(공감)은 매우 어렵고,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우울증(증상)은 큰 상실감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상실감은 큰 슬픔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두려움, 공포들을 훨씬 더 부각해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 또한 경험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매우 고통스럽게 하고 삶에 대해 회의적일 정도로 괴롭게 한다.
그런데 그런 감정들은 중요한 메세지를 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아픈 감정들을 제대로 바라 볼 수만 있다면 뒤이어 새로운 삶을 만나게 하고 '나를 확장'하게 한다는 것을 요즈음 심심치 않게 관찰한다.
성장은 고통을 동반한다.
어쩌면 고통 없는 성장은 없는 것도 같다. 사실 그 것이 아직은 내게 참 슬픈일이다.
아프지 않고 모두 행복하고 아름답게 잘 살면 좋겠는데,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이, 그리고 그 아픔을 그 누구도 아닌 그 자신만 해 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들러는 사람은 생득적인 열등감을 벗어 나기 위해 우월을 추구하게 되는 데, 그 과정에서 어떤 (무의식적)목표를 세우게 되고 거기에 부합하도록 개인이 의미를 부여하여 , '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삶의 양식)'을 만들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의 몸과 마음은 서로 협력한다. 마음은 동력기와 같아서 그 목표를 향하고 진취하도록 몸 속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끌어 모은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목표를 향하게 하기 위해 사람의 전체를 힘껏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들러는 '분리되는 감정'과 '결합적인 감정'으로 나누는데, 분리되는 감정으로는 '화, 슬픔, 역겨움, 두려움(공포)'를 포함하고, '기쁨' '연민'등은 결합시키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원하고, 사람들에게 소속되기 원하며 그들 안에서 자신을 실현하려는 존재로 보고,건강한 우월 추구의 끝점(목표)은 '공동체감'에 있다고 설명했다.따라서 분리되는 감정은 공동체감에서 멀어지도록 고양시킨다.
한마디로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겠다.
어머님댁에 설치한 펜스는 고라니나 다른 동물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한다. 소유물들을 지켜야 하기도 하고 멧돼지와 맞서는 일을 피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어머님댁 펜스와 같은 것도 같다.
지금껏 살아 온 방식 안에서 안전하게 목표를 고수 하도록 감정이 벽을 세운달까.
사람은 자신이 어릴 적 의미를 부여한 삶의 태도를 고수하려고 하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모두 사실(fact)는 아니다.
미숙한 어린 시절, 내 나름대로 창조하고 만들어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나의 것을 고수하기 위해 그 때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때때로 같은 상황을 보고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 상황이 내가 보지 못하는 삶의 다른 각도를 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방어한다. 감정이 방어하도록 개입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탓 하거나,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거나,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여 받아들이지 못 하도록 한다.
만일 주체하지 못 할 정도의 어떤 큰 감정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 감정은 내가 그동안 보지 못 했던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하는 시그널 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들러의 말이 아주 이상하거나 잘 못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폭 큰 감정은 나의 틀이 무너질 정도로 균열이 생겨 그것을 감지하여, 나의 삶의 양식이 깨질 위험을 느껴 온 몸으로 막기 위해 신호를 보낸다.
"너 지금 너의 목표가 흔들리고 있어. 위험해. 그러니까 그 틀을 고수하도록 움직이지 말고 피해."
내가 살아 왔던 안전(하다고 생각)한 울타리가 흔들려 지진이 나는 것이다.
그 공포 때문에 나의 것을 더 견고하게 하게 다지고 남 탓으로 돌려 버려 다시 회피를 한다면... 생각만해도 그게 더 무섭다.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고통 스러울 것이다.
'살던 세상이 낯설다'라는 감정을 느껴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담장 너머엔 산도 있고 졸졸 흐르는 상쾌하고 발랄한 시냇물도 흐른다.
담장 사이로 보는 시냇물과 산은 담장 없이 보는 시냇물과 산은 같지만 낯설 것이다.
큰 아이가 큰 고통을 지나 낯설지만 자유로운 세상을 만나길 기대한다.
그림 출처 @healing photographer /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