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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Dec 31. 2018

2018년 리뷰

한해를 정리하며

2007년부터 자성한 연간계획이 10년이 넘었다.

중간에 쓰지 않은 해가 1.5년이 되니 만 10년인가? 


올해는 졸업으로 바빴다라는 핑계로 연간계획서를 쓰지 않다가

이미 연말이니까 라는 핑계대신 이제라도 실천하자라는 다짐으로 

4/4 분기 계획을 수립했다. 


먼저 올 한해에 대해 퇴고 없이 생각나는데로 쓴 나의 돌아봄이다. 


2018년은 참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성취

6년의 공부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다리도 짧은데(영어 부족) 주변을 경치를 보며 천천히 걷다보니(삶의 균형에 초점)

이제야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끌어주고, 응원해준

지도교수님 Lisa, 학문적 멘토 김진희 선생님, 든든한 응원군 은경이, 

낙스빌의 아버지, 어머니인 이사장님, 매니저님, 목자님

그리고 멀리서 응원 보내주신 가족들

모두에게 참 감사하다. 

박사학위는 도달점이 아니고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에 한 부분을 완료했다는 토닥임과 같은 응원이다.      


도전 1

학위 취득을 앞두고 미래로 가는 인터체인지 앞에서

고속도로가 아닌 시골로 길이 나 있는 작은 길을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아직 달리지 않아 국도 이름도 붙지 않은 그런 작은 길로

작은 길로 간다하여 목적지가 없을까?

작은 길로 간다하여 속도가 느릴까?

작은 길로 간다하여 나의 꿈은 작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끌림 하나로 나는 몽골로 향했다.      

이별

나만의 선택을 한 후 참 많은 정이 들었던 또 다른 나의 고향인 낙스빌을 떠났다.

미국을 떠남에 있어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많은 이들이 미국에서 JOB을 잡기를 권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외부인이 아닌 구성원으로 지내고 싶어 미국의 떠남을 결정했다.

그 결정이 가져온 이별

가족 같은 나의 사람들, 내 집 같던 아파트, 우리 동네 같던 낙스빌과의 이별

이별의 순간이 무서워서 10월에 낙스빌로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는 이별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저 곧 또 와요. 비행기표도 이미 끊었어요.”하며 그 이별의 순간을 유예했고, 

슬픔을 희석시켰다. 

그렇게 어떠한 눈물 없이 이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10월 다시 방문해 이별을 건너 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감사

몽골 비자를 받기 전까지 한국에서 1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몽골에 있으면서도 두 번이나 한국에서 1주일씩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만났다.

김진희 선생님, 중범이 형, 내친구 승환이와 미나(귀여운 유진이도), 희정누나,

교육공학연구소 팀 멤버들, 안동의 지인들(임주누나, 윤희누나, 수빈씨, 형영씨)

교수님들, 기철형님, 재한이, 수향이, 승환이, 상수형님, 은담이, 재우

소연씨, 오랜만에 만나 예지, 민지누나, 동주, 은혜누나, 혜천이

사촌 형님들과 함께 한 벌초, 

이 모든 만남과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 감사하다. 

무엇보다 나의 집에서 부모님과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도전 2

비자가 나와 몽골로 향했다. 

내가 생각했던 몽골과는 참 많이도 달랐다. 

내가 해야 할 일도, 이곳의 사람도, 문화도, 환경도, 온도도, 문자도, 언어도, 공기도

모든 것이 달랐다.

그 다름은 미국에 처음 가서 경험과 다름보다 더 크고, 더 어려웠다.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새로운 도전의 에너지로 적응을 시작했다. 

9시부터 6시까지 참 분주한 시간을 보내었다.

언어가 1도 통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를 위한 통역이 2달이나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통역을 구걸해가며 나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 노력했다. 

불평 전에 최선을 다한 자가 되고 싶었다. 

일상이 도전이었다.      


고난

봉사의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어느 순간 내가 수행하고 있는 것이 봉사인지 나의 연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과연 나의 교육적 행위가 개인의, 이 대학의, 이 사회의 변화에 

아주 조금이라도 이바지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학교를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작은 가게처럼 운영하는 이사장 체계 안에서 과연

나의 이 행위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다름이 주는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나의 두 다리를 쭉 벌려도 그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는 순간을 많이 맞이했다.

내가 속한 조직을 불평하는 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

하지만 입만 열면 나오는 나의 불평에 

나는 과연 봉사의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일의 시스템, 직원들의 행동, 학교의 중심 가치, 12층의 계단, 언어의 장벽, 

돈이 만들어낸 걱정, 자꾸 주어지는 책임들 이것들과 싸웠다. 

포기라는 단어를 싫어하기에 다른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이 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곳의 이들은 “포기”라는 내가 싫어하는 단어를 인질 삼아 나를 잡으려 한다.      


보람

이러한 불평과 고난 안에서도 물론 보람을 발견한다.

조금씩 변해가는 교수들, 

내게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교수들, 

학교의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변화를 도모하자는 교수들, 

격려해주는 총장님, 

학교가 내게 주어진 과분한 역할로 인해 만나게 된 사람들, 

꿈에 대한 강의에서 손을 들어 자신의 꿈을 발표해준 학생들

이러한 모습들 안에서 보람을 느끼고 희망을 발견한다.      


아픔

올해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모교에 교수직이 난다면 도전하는 것이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어떠한 혜택도 바라지 않았다.

모든 경쟁은 공평해야 한다. 

담담히 지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채용공고의 조건으로 인해 나는 지원할 수도 없음을 느꼈을 때

아픔을 느꼈다.

이 아픔을 행여나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전환시킬까 스스로를 점검했다. 

나의 부족함으로 지원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함에 아팠다.      


불안

아픔은 스스로의 성찰을 바탕으로 잘 정리하였다. 

하지만 이 아픔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불안 키웠다.

“과연 한국에서 교수가 될 수 있을까?”

한국 교수채용 시스템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내정자”라는 단어가 무서웠다. 

어쩌면 나의 불안을 “내정자”라는 핑계로 합리화 하려한 것 같기도 하다. 

자기개발 강사로서 지금까지 내가 외쳐 온

“지금의 행복을 위해 살자.”, “걱정보단 행복하자.”, 

“뒤쳐지는 시간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이다.”, 

“직업적 꿈에 얽매이지 말고, 어떤 사람이 될지를 꿈꾸자.”

이런 말들이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말들을 너무나도 쉽게 조언한 나를 반성했다. 

마음의 불안은 너무나도 쉽게 커져간다. 

어느덧 내 마음을 가득채운 미래에 대한 불안 앞에서 나도 모르게 조급해져갔다.

불안 앞에서 걱정만 하는 이가 되기 싫어 실천을 했다. 

연구교수와 작은 대학의 교수를 지원했다.

자신만만했건만 서류에서 탈락도 했고, 공개강의도 했지만 아님을 깨닿기도 했다. 

나를 잠식하는 불안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채용공고 사이트를 확인한다.        


다짐

하지만 내가 누구냐! 긍정긍정 열매와 실천실천 열매, 계획계획 열매를 먹은 도재우 아닌가!

그리고 주변에 닮고 싶은 삶을 사는 참 좋은 멘토들을 두고 있는 도재우 아닌가!

그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쓸데없는 없는 불안과 조급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썼다. 

불안과 조급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멋진 도전을 하고 있다. 

내 앞에 놓여진 충실하지 않은 채 행할 수 없는 것들에 얽매여 있는 나를 반성했다.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불안과 조급은 나의 꿈은 잊게 하고 

바로 앞의 안정에 나를 얽매이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업이 안정을 가져올까? 나를 아는 나는 답한다. 

나는 직업을 통해 안정을 찾을 사람은 아니라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걱정 대신 행동하기를 다짐했다. 

부정적 생각보다는 내가 꿈꾸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로 다짐했다.

합격공고일은 다음 주인데 매일 그 홈페이지에 들어가 결과를 체크하는

그런 조급함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나를 더 믿기로, 내가 앞으로 할 노력을 더 믿기로 했다. 

내가 나를 못 믿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멋진 삶을, 바른 삶을 살 것이라 믿는다.

사실 부모님이라는 내 어깨의 가방이 무겁긴 한다. 

하지만 이 가방의 무게는 나의 근력을 키워줄 것이다. 

많은 감정을 느꼈던 2018년은 

내가 2019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주었다. 

그렇기에 감사하다.     

나의 미래는 모른다.

다음 학기 몽골을 떠날 수도 있고, 몽골에서 계속 일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어디에 있건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란 것이다. 

그런 2019년을 다짐하고, 계획하자.     


올해의 반성

불평을 많이 한 것, 걱정을 많이 한 것, 논문을 쓰지 않은 것     


올해의 칭찬

걱정을 잘 정리한 것, 졸업을 한 것, 새로운 도전을 한 것, 

감정을 멘토들과 많이 나눈 것           


2018년 12월 31일

울란바토르의 한 커피점에서 


연간계획에 대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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