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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Jan 26. 2023

슈크루트

이쪽과 저쪽의 경계

      프랑스와 독일이 경계에서 만들어진 양배추 요리는 양다리 걸친 메뉴답게 두 가지의 언어로 불린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쓰고 읽는 것이다.

 슈크루트와 사우어크라우트.


     프랑스에서 겨울마다 마트에 가면 커다란 솥에 슈쿠르트가 김을 뿜으며 익어가고 있었다. 포장을 주문하면 하얀 가운을 입은 판매원은 뚜껑을 열고 시큼한 향의 김을 헤치면서 양배추와 소시지, 삼겹살, 감자를 담아 건네주고는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겨울이 되자 슈크루트가 간절했다. 대부분의 식재료는 구할 수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슈, 양배추 절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양배추 절임을 병입한 제품을 수입하는 곳에서 구할 수 있었으나 가격은 비싸고 양이 턱없이 적었다. 4인 가족이 슈크루트라는 메뉴를 식사로 하기에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슈크루트는 그렇게 잊혔다.

    그리고 다시 식탁에 등장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마트에서 본 양배추가 실했다. 마침 양배추 스테이크가 유행이라기에 고민 없이 샀다. 채소로 만드는 스테이크라니. 뭔가 힙하고 핫했다. SNS에 떠도는 레시피를 여러 개 훑어본 후 그 힙&핫 메뉴를 만들었다. 웬만해선 채소 메뉴에 반기를 들지 않는 입맛인데도 불구하고 취향이 아니었다. 

     양배추는 8분의 6 정도의 양이 남아있었다. 양배추는 자르는 순간 부피가 두세 배로 늘어났다. 달리 말해 먹어도 줄지 않는 식재료였다. 양배추로 뭔가를 해치워야만 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 말라가는 양배추를 눈앞에서 치워야 하는 중차대한 난관을 앞에 두고 불현듯 떠올랐다. 

    슈크루트.


    양배추를 썰어야 했다. 역시 손보다는 기구였다. 일본 오코노미야키용 채칼이 있었다. 몇 년 전 부모님이 일본 여행에서 사다 주신 채칼인데 더할 나위 없이 가늘고 긴 채를 만들어주었다. 

    물기가 꺾인 양배추 반 통을 채칼로 저미자 하나의 양배추 산을 이뤘다. 겹채소는 이렇다. 양적으로 기특한 식재료다. 

    커다란 통에 정수된 물을 약간 채우고 3년 묵힌 신안 천일염을 넣어 녹인 후 양배추를 담고 주니퍼베리를 위에 20알 정도 뿌린다. 그리고 23도쯤 되는 실온에서 3일간 상온에 둔다. 생각날 때마다 교반, 위아래를 뒤집어준다. 기분 좋은 새콤과 아슬아슬한 시큼의 중간 정도되는 매우 미묘한 향이 날 때쯤 냉장고에 넣는다. 

    사용할 때는 통에서 꺼낸 양배추 채를 짜서 사용하는데 이 방법은 취향에 따라 다르다. 시큼한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물기가 있는 채로 만들기도 한다.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편으로 썰어 놓은 마늘로 향을 낸다. 그리고 슈크루트를 넣어 약한 불에 볶는다. 강한 불에 색을 내면 안 되기에 약할 불로 살살 볶다가 화이트 와인과 육수를 넣는다. 그 위에 팬에 익혀 놓은 소시지와 졍봉 등 샤퀴테리와 삶은 감자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 약불에 익힌다. 이 과정은 와인향과 육수가 모든 재료에 배어들고 어우러지도록 하는 데에 목표로 한다.


     스테이크가 목적이었던 양배추는 잠시 길을 잃었지만 오래된 기억 속 좌절의 아이템이었던 슈크루트로 다시 태어났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상이었지만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약간의 용기와 상당한 귀찮음, 자료조사를 수반해야 했다. 그 과정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실망과 만족의 경계.

       실패와 용기의 경계.

       사랑과 미움의 경계.

       실은 같지만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이름들. 

       슈쿠르트와 사우어크라우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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