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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Jan 26. 2023

45cm

不可近不可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허용하는 거리. 45cm.

      나를 중심으로 반지름 45cm의 원. 

      면적 6358.5제곱센티미터는 인간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최소한의 공간이라고 한다.


      원 바깥에 존재하는 타인은 경계의 대상도 불안의 상대도 아니다.

      마치 결계가 쳐진 듯 그 어떤 존재도 허락 없이는 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요원한 희망일 뿐이다.


     45cm는 비무장지대다. 물리적인 거리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여야 한다.

     자의식으로부터 해방된 중립적이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다. 그 어떤 개성도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다. 다만, 발아래 숨겨져 있는 지뢰를 잊으면 안 된다. 방심하는 순간, 마음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중년이 되었다.

     중년이 된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갑! 자! 기! 의 의미를.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낯선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날 나를 규정해 왔던 삶의 모습과 생각들이 얼굴과 표정과 몸에 지문처럼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깨는 굳어지고 숱은 적어졌다. 혈관은 선명해지고 피부는 얇아졌다. 탄력은 없어지고 주름이 윤슬처럼 빛났다. 인중은 더 길어지고 눈꼬리는 약간 내려갔다. 볼은 긴장감을 읽었다. 눈빛만큼은 형형한 채로 남기를 바라지만 그마저도 어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젊었을 때의 미의 기준은 평준화되고 각자의 삶 속에서 고수해 온 인생철학이 드러난다.

    놀랍다. 40대를 지난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가진다는 링컨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니.


    20대는 늘 전전긍긍했다.

    삶은 매 순간 불안했고 흔들렸다. 

    안전 또는 안정이라는 단어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들이 20대를 채우고 있었다.

    시간시간이 버거웠을 청년이 중년을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럴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중년이라는 단어는 우주 다른 은하계만큼이나 실감 나지 않는 단어였다. 다만, 누군가 중년이 된다면 모름지기 감정으로부터의 번뇌는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예단했을 뿐이다.

    이제와 보니 아주 몹쓸 오해였다. 

    중년의 나이는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오르고 얻는 트로피라는 생각은 심각한 착오였다.

    중년은 청년보다 조금 오래 살았다는 사실뿐 아무런 발전이 없는 인간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不可近不可遠.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는 길고 안전한 우정을 담보한다고 믿었다. 

    지금까지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노력은 종종 수포로 돌아갔다. 의도적인 거리 두기는 때때로 서운함을 안겨주기도 했고 쌀쌀맞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그 아쉬움에 죄책감을 느끼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허물어버린 거리의 가벼움은 관계의 막바지를 향한 속도만 가중시켰다.

     실수가 반복되면 허물이 된다.

     인간관계 역시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봤자 변명은 폐허가 된 상황에 어떤 치유도 되지 못했다. 그저 잠깐의 자기 위로랄까.


     불가근불가원. 가깝지고 멀지도 않은 관계의 건강함.

     나이가 들었다고 감정이 더 단단해지지도 두터워지지도 않는다. 

     45cm, 近과 遠의 그 사이에 식물과 길동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과일도 열리고 다양한 허브도 자랐으면 좋겠다. 바람이 불면 바질과 로즈메리 향이 날아다니면 좋겠다. 고양이도 있고 유니콘도 하나쯤 있으면 환상적이겠다. 일 년 내내 초가을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혹시라도, 실수라도 당신이 선을 넘었을 때 멋진 비무장지대를 경험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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