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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Jan 26. 2023

긴 시간을 건넌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빵까지 만들 생각이 없었다. 

     빵 말고도 만들 것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이미 좋은 빵은 많았다. 잘 만든 빵을 사다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MTB는 매력적인 취미였다. 하지만 위험한 산길을 타기에는 겁이 많았다. 

     막 이사를 하고 난 후 주말아침이었다. 날씨는 집에 앉아 정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바람은 서늘했고 하늘은 투명했다. 깊은 초록의 나뭇잎들은 흔들흔들 운동장 만국기처럼 펄럭거리며 어서 나와보라고 부추겼다.

     그동안 쉬었던 MTB를 꺼내어 닦고 기름을 칠했다. 어렵지 않은 코스로 나가자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날의 사건은 시작되었다.

     자전거 도로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먼저냐. 자전거가 먼저냐. 고민할 틈도 없이 위태위태한 자전거 도로를 지나 한적한 산길로 들어섰다. 그제야 자전거의 느긋한 속도에 맞춰 바람을 즐길 수 있었다. 늘 훌쩍거리던 비염은 자취를 감추고 비강이 시원해져 기분까지 날아갈 듯했다. 

      한두 시간쯤 지나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시 들어선 자전거 도로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크게 좌회전을 해서 산길을 타야 하는 지점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자전거를 탄 채 서서 입구를 막고 있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회전을 하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보자 당황했고 그들을 피해 회전을 한다는 것이 핸들을 급하게 꺾어버렸다. 핸들이 돌아간 채로 만난 급경사는 위기를 만들었다. 급기야 핸들을 놓친 채 왼쪽의 돌무더기로 가속 낙하하고 말았다. 

     한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앞서가던 가족은 다시 돌아와 돌무더기에 머리를 처박힌 채 널브러진 나를 발견했다.

     무릎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파여 있었고 왼팔은 뭔가 힘없이 흔들렸다. 헬멧의 홈마다 돌이 박혀 있었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헬멧이 생명을 구했다며 혀를 찼다. 왼팔 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


     5주 정도 깁스를 하고 풀었다. 재활이 필요하다는 말에 의문이 들었지만 깁스를 제거한 팔은 ㄱ자로 굳어져 펴지지도 더 굽혀지지도 않았다. 그 후 6개월이 넘는 눈물의 재활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재활은 손가락부터 시작했는데 이유는 손가락도 굳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손가락이었다는 걸 자주 기억해내야만 했다. 손가락 운동을 위해 뜨거운 파라핀에 손을 담갔다가 펴고 접고 해야 했다. 그 과정이 수월해지자 손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했다. 새로운 재활법. 빵 만들기였다.


     재활로서의 빵 만들기는 빵을 만든다기보다 밀가루 놀이를 한다고 봐야 했다.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는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글에서 유명한 베이커들의 레시피를 20개 정도 출력했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밀가루를 25kg 주문했다. 각 베이커들이 추천하는 이스트를 구입했다. 그러고 나서 레시피 하나씩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오븐은 컨벡션 오븐인 스메그와 전기 데크 오븐이 있었으므로 대충 빵 놀이는 진용을 갖춘 셈이었다. 첫 번째 레시피의 빵을 구워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 기쁨은 얼마 못 가 가족들의 악평으로 잊혔다. 

     굽고 난 뒤의 빵은 돌덩이가 되었다. 이유를 알기에는 빵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용감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빵에 대한 책을 읽고 유명 베이커의 동영상을 보고 다시 만들고 1년 여 만들고 만들고 만들었다.

     주말 아침에 빵을 구워 브런치로 내면서 가족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발끈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했다. 빵에 대한 평가에 민감했던 탓일까. 가족들은 빵을 만들면 가벼운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렇게 3년째 빵을 굽고 있다.

      3년 전의 레시피와 지금의 레시피는 많이 다르다.

      조급했던 나는 빵에게 시간을 넉넉히 줘야 한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긴 시간 발효되는 재료는 천천히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갔다. 온도와 습도, 발효되는 지점이 매번 다른 빵 만들기는 왼손의 재활로 시작되었지만 실은 동일한 상황에 지루함을 쉽게 느끼는 인내심 제로의 나 같은 사람에게 적합한 취미이기도 했다.

      계절마다 다르고 아침과 오후가 다르고 밀가루나 물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은 매번 의문을 일으키고 답도 주지 않은 채로 상황을 변주해 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스터리 한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놓치는 아슬아슬한 탐정 같은 느낌의 작업이었다. 만족은 쉽지 않았고 좌절과 새로운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자극했다. 불만은 자괴감만 가져올 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주말 아침이었다.

     며칠 전 구운 통밀빵을 두툼하게 썰어 토스터에 살짝 구웠다. 

     팬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계란을 한 면에 튀기듯이 익히고 그 위에 바다소금, 후추, 파프리카 파우더를 뿌렸다. 빵을 크게 찢어 올리브 오일과 노른자를 푹 찍어 적신 후 모카포트에서 막 따른 진한 커피와 함께 먹었다.

      통밀빵에서 소여물 냄새가 난다며 좋아하지 않던 가족이 빵을 오물거리다가 커피를 한 모금 먹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어딜 가도 이만큼 맛있는 빵은 없더라고. 


      이 말 들으려고 3년 전 나는 갑자기 MTB를 탔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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