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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Apr 04. 2023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걀레뜨 드 뽐드떼흐


      

      어느 나라에서는 뢰스티라고 불리는 걀레뜨 뽐드떼흐.

      프랑스에서 걀레뜨 뽐드떼흐라고 불리는 감자요리는 실은 감자전이다.

      감자는 세계 어디서나 구황작물이었고 특별한 조리법이 없이도 서민들의 공복을 채워주는 식재료였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떠올리면 감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늦은 저녁, 그들은 힘든 노동을 끝낸 후 지친 몸으로 겨우 귀가했을 것이다. 어둡고 좁은 집이지만 아늑함과 평화는 그들에게 노동을 마감하고 휴식을 시작하게 하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상태지만 허기를 채워야 진정한 평화가 시작될 터였다. 물에 넣어 삶기만 하면 한 끼가 가능한 감자는 휴식의 시작과 노동의 마감을 앞당길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였을 것이다. 

      감자는 낙후된 지역의 노동계층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식재료였다. 세계 어디서나.


      누이는 엄마가 키워 보낸 감자를 꺼내어 흐르는 물에 담그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이는 형제의 식성을 알 수 없었다. 어릴 적 우유 알레르기가 잠깐 발현된 것 외에는 특별하게 어떤 식재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왔던 기억이 아득해졌다.

     

      그들은 누이와 형제들이었지만 친구였고 동업자였다. 그들과의 놀이는 어른이 부재한 공간의 불안한 기억으로 재생되고는 했다. 왜지? 같은 공간에 늘 함께였던 엄마는 우리들의 놀이 속에는 등장한 적이 없다. 성숙하고 단호함이 결여된 공간은 미성숙한 존재들의 어설픈 놀이로 가득했다.


      뜨거운 여름 한낮이었다. 공기에는 태양의 깊은 호흡이 담겨 있었다. 물속을 느리게 유영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고기가 된 듯했다. 바람은 축축했고 강렬한 빛조차도 공기 중의 습도를 낮출 수 없었다. 사방에 매미 소리만이 가득했다. 기억은 낭만적이기보다는 약간 공포스러웠다.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누이와 막내는 다락방에 숨어들었다. 그 더위에도 불구하고 이기겠다는 쓸데없는 집념으로 다락방의 많은 물건들 사이에 제법 꽁꽁 숨었다. 심성 여린 가운데 형제가 술래였다. 술래는 크지도 않은 집안 안팎을 돌아다니며 찾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땀도 흐르고 그들이 하던 놀이가 숨바꼭질이었을까. 아니면 놀이를 하고 있던 것은 맞을까.

      시간과 기억과 놀이는 느슨해질 때로 느슨해져 마구 뒤엉키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지금처럼 손목시계가 흔하지도 않았고 집에 벽시계는 밥을 줘야만 움직이는 장식품이었는데 정각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자주 깜빡하고는 했다.


      누이와 막내는 잠깐 잠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 사이에 술래는 다락방을 기웃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선잠을 깬 누이는 막내를 데리고 내려와야만 했다. 사방이 지나치게 고요했으며 여름 한낮의 이상한 고요는 어린 나이의 누이에게도 공포감이 들게 했다.

      살금살금 막내를 앞세워 내려온 누이는 작은 거실, 마루 한가운데에 등을 보이고 미동 없이 서 있는 술래를 발견했다. 아무리 살금살금 이래 봤자 인기척을 못 느낄 리가 없을 텐데 술래는 움직임조차 없었다. 마치 굳어있는 듯 보였다.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누이와 막내는 술래의 등을 밀며 작은 고함을 질렀다.

      술래는 깜짝 놀라야 했다. 하지만 술래는 놀람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누이와 막내는 당황했다. 놀이에서 울음이라니. 의아하거나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술래는 많지도 않은 방안을 뒤졌다. 

      상식적이라면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까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가 연탄창고와 창고 위 장독대까지 뒤적였다. 그러다가 옆집 마당에 앉아있는 새 한 마리를 봤다. 소리가 귀여웠다. 그리고 시끄럽게 울고 있는 매미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떡갈나무가 있었다. 옆집 마당의 나무에는 수천 마리의 매미가 울고 있는 듯 귀가 얼얼했다. 

     그 나무에는 송충이 많이 살았다. 송충이는 후드득 떨어져 마당에서 놀고 있는 술래의 목이나 머리에 떨어지고는 했다. 송충이는 징그럽기도 하지만 이름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건 누이나 술래, 막내 모두 싫어하는 이름이었다. 

     하필 송 씨람. 셋은 송으로 시작되는 모든 명사를 경멸했다. 

     송충이가 눈앞에 꿈틀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발을 들어 슬쩍 밟았다. 입은 틀어진 채. 그 상황이 끔찍했지만 송충이가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술래는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대체 누이와 막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해가 자리를 많이 바꾼 것 같았다. 

     숨바꼭질을 시작하던 처음 그 자리에 와 섰다.

     매미 소리는 여전했고 공기는 약간 어두워졌다.

     <못 찾겠다. 꾀꼬리> 외쳐야 할 순간이 왔다.

     하지만 그럴 기분도 기력도 없었다.

     세상은 종말을 지나 새로운 세상에 혼자만이 덩그러니 놓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미 소리 대신 우웅하는 기계적 공명이 귀를 울리고 몸은 중력을 벗어난 듯 무게감이 없었다.

     그때였다.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술래가 정해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숨바꼭질이 끝나지 않았다는 알았지만 술래도 누이도 막내도 더 이상 숨거나 찾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강렬한 외로움은 어린 마음에 버거웠던 것일까.


     이후 갓 쪄낸 감자를 담은 바구니를 든 엄마가 등장했다. 갑자기. 

     그 깊은 고요함과 매미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공존하던 이상한 나라의 숨바꼭질에 엄마는 존재하고 감자는 삶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의 존재를 확인한 어린 존재들은 무너지듯 긴장의 줄을 놓았다. 한여름 숨바꼭질에 지친 누이와 술래, 막내는 파근파근하고 뜨거운 감자를 손을 돌려가며 잡고 하얀 백설탕을 찍어 먹었다. 좀 전에 느꼈던 진공상태 속 작은 하루살이 같은 기분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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