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음 Jul 03. 2023

가외수농업자의 바질 수확기

세상에 유기농은 없는 걸로.

qkwlf

      가드닝은 책에서나 보는 단어였다.

말이 가드닝이지 작은 화단에 허브 몇 종 키우는 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농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가드닝이라고 하기에는 식재료 위주의 식물 키우기였다. 그래서 이도저도 아닌 이 과정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가외수농업.

말장난 맞다. 집 밖이니까 가외. 손으로 하는 흙 관련 일이므로 수농업. 그래서 가외수농업.


     옥상 한 켠에 만들어진 작은 농장은 각종 허브를 보유 중이다. 

루꼴라, 타임, 오레가노, 딜, 민트, 펜넬, 바질.

이 외에도 더 있지만 이름도 모르겠고 이름을 안다 한들, 쓰임새를 알 수 없으니 관심 밖이다.


     허브를 키우게 된 이유는 요리에 싱싱한 허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요리 좀 하는 사람에게는 싱싱한 요리재료에 대한 갈망이 깊고 뜨겁다. 

게다가 요리의 화룡점정을 담당하는 장식용 허브를 언제든지 싱싱하고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은  예상할 수 있는 단점을 감당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각종 허브와 바질은 씨와 모종으로 옥상 테라스 작은 텃밭에서 가외수농업의 농장이 되었다.


     <허브는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라고 책에 쓰여있었다.

이 문장은 식재료 외 식물과 별다른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비호감의 이유에는 식물과 늘 함께 등장하는 벌레에 대한 혐오도 한 몫을 했다. 

책에서 본 약속과는 달리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 자라기 시작한 바질 잎사귀에 쿠사마 야요이의 폴카닷, 데미안 허스트의 스팟페인팅을 미러링 하는 존재가 나타났다.

현대미술좀 아는구나.

찬찬히 둘러보다 까만 가루들이 잎사귀 근처에 있는 게 보였다. 혹시 다른 집 바비큐의 재가 날아왔을까 했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며칠 후 검은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먼지였고 비에 씻겨 내려간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전히 잎사귀에 만들어지고 있는 명작의 오마주는 진행 중이었다.


     한낮의 빛은 뜨거웠고 습도는 적당했다. 

손수 키운 허브의 수확을 갈망하고 있던 가외수농업자는 이틀에 한 번 물을 뿌리고 시든 잎을 따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기에 식물의 성장 속도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식물은 동물과 달리 확실히 성장속도가 달랐다.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달랐다.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놀라운 성장에 열렬한 박수로 답해주고는 했다.

박수 덕분인지 어느 순간, 바질의 잎사귀는 예술하던 잎사귀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수가 살아남아 성장했다. 


     이른 아침, 

수확의 순간만을 기다리던 가외수농업자는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나무 보울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꿀풀목 꿀풀과의 쌍떡잎인 바질 잎사귀를 쌍으로 똑똑 조심스레 따기 시작했다.

잎사귀에서는 줄기에 난 상처에서 바질향이 강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나 둘, 나무 보울에는 바질잎이 쌓이고 향기는 그윽하고 이른 햇빛은 아직 부드러웠고 바람은 적당했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타샤 할머니의 기분이 이러려니 흥에 겨웠다.

그러다 잡은 잎사귀, 제법 큰 잎사귀를 잡은 손에 미세한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직 영국의 시골 정원의 할머니 컨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의 게슴츠레한 눈으로 잎사귀를 뒤집어 보는 순간, 불안함의 원인을 보았다.

검은 줄무늬의 그것.

불안이 공포로 전이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꿈틀거리지만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필 그 존재는 길고 가늘고 꿈틀거렸다.

이제와 말이지만 잠시 전원의 삶을 연기하며 바질을 수확하던 가외수농업자는 보울을 던져버렸고 따 모은 바질잎은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날아갔다.


     허브는 특유의 강한 향으로 벌레나 해충이 생기지 않아 키우기에 어렵지 않다. 

책의 저자는 어떤 근거로로 명제를 단언한 것일까.

마켓에서 구입했던 커다랗고 통실하고 흠 하나 없던 바질 잎사귀는 어떻게 자라고 만들어진 잎사귀인 것인가.

책의 저자에게 닿지도 않은 질문이나 다른 허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가외 수농업자는 반드시 바질을 따야만 했다. 

그리고 싱싱한 바질을 사용해서 요리를 해야만 했다. 

어찌되었든 벌레를 없애야 했다. 벌레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했지만 그저 싱싱한 허브를 먹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가외수농업자의 텃밭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점에서는 약간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선입주자의 권리라고 생각해 주길 기원하면서 벌레퇴치제를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를 했다.


     인간과 동물에게는 무해하지만 벌레는 한 방에 죽입니다.

이런 광고 카피를 읽으면서 그게 가능할까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벌레와 약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런 가보다 할 뿐이었다.

가외수농업자도 왕년에 광고 카피 좀 썼었지만 요즘은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광고 카피가 범람하고 전직 카피라이터조차 깜빡 속아 구입한 제품들이 부지기수인 터라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구매를 완료했다.

벌레 퇴치제는 새벽에 도착했다.

태양이 기운을 차리기 전에 약을 살포했다. 

약간 시큼하고 쌉쌀한 향이 코로 무작정 흡입되었으나 걱정이 없었다. 인간에게는 무해하다는 문장을 몇 번이고 꼭꼭 씹듯 중얼거렸다.

두 통을 가차 없이 살포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이후, 해가 떴고 비가 왔고 바람이 불고 날이 흐렸다.

며칠 사이 바질 잎사귀는 더 튼실해지고 커졌다. 벌레가 예술을 한 흔적이 없는 깔끔한 쉐입의 잎사귀였다. 

드디어 진정한 수확의 시간이 왔다.

예전보다 더욱 경계가 삼엄해진 수확과정은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엄중한 테스트를 통과한 잎사귀만이 보울에 입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수확은 오직 벌레와의 전쟁, 유기농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문득 도시에서 전원생활로 돌입했던 7년 전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 가외수농업자야. 시골에 가서 농사를 보니까 세상에 유기농이란 없더라. 약이 없이는 먹을 수가 없어. 

아니나 다를까. 

수확한 바질로 만든 페스토의 즐거움이 가시기도 전에 텃밭의 바질 주위에는 또다시 까만 존재가 보였다.

그래, 나에게는 <인간과 동물에게는 무해하지만 벌레만 죽여드리는 퇴치제>가 있다.

     덤벼라. 벌레여. 






작가의 이전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