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많이 먹고 어른이 된지도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님들을 보면 나는 때때로 수십 년 전의 어린이로 돌아가고는 한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는 것도, 잊었던 어리광이 다시 살아나 엄마 아빠 앞에서 그런 것들을 부리기 때문은 아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아빠와 TV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어릴 적 엄마 아빠와 나눈 장면이 다시금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엄마와 아빠는 당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하거나, 나의 과거 이야기를 해주시고는 한다. 그럴 때면 느끼고는 한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이런 사소하지만 비슷비슷한 시간들이 쌓여서 나라는 인간을 만드는 데에 영향을 끼쳤구나 하는 것들을 희미하게나마 느낀다. 마치 나의 느낌들 처럼,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는 부모와 자식이 조금씩 교감하고 같은 시간을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의미가 되어가는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나간 책이다.
나는 이 책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를 방법론으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자녀의 인성 교육론이나 어떤 모습이 이상적인 아버지상인지, 그런 걸 가르치는 책으로 보지 않았다. 아마 저자 역시도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저자 이규천은 머리글부터 자신에게 이런 교육서를 쓸 자격이 특별하게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두 딸이 미국에서 저명한 교수와 변호사가 되고, 대중의 인기를 얻는 가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공이 특별한 자신의 방법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역시나 '성공한 두 딸'을 키워낸 비법에 관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비법이 과연 무엇인지는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텐데) 역시나 예상대로 딸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예상되는 답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지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두 자녀들에게 항상 '용기'를 주는 것에 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저자인 아빠와 딸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잊어버려"라는 말이 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잊어버려(forget about it)'이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딸들의 성장기 속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응원해주어야 했던 역할의 아버지가 해준 일이란 이런 메시지의 공유였다. 그런데 나는 이 메시지를 아직 성장하고 있다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마 이규천 저자 역시도 자신에게 이 메시지를 줄곧 던지면서 좌절의 상황이 닥쳤을 때마다 자신을 다독이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의 입장이 아닌 내가 궁금했던 것은 나 자신이 나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였다. 다행히도 책에는 답이 있었다. 잊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