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쿠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4년 전 <내 곁에 있어줘>였다. 나는 그해 부산영화제에서 보게 되었는데, 영화제 기간 동안에도 나름 입소문을 탔던 것 같다. 싱가포르 감독의 영화를 보는 일이 흔치는 않아서 감독과 작품의 국적 만으로도, 영화를 보기 전부터 너무 설렌 기억이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 라멘 샵>을 보러 간다고 했을 때 그때의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실제로 <내 곁에 있어줘>는 이색적인 것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상당히 감정에 밀착되어 있는 영화라서 그 섬세함에 내내 압도되고는 하였다. 싱가포르 하면 '부자' '경제' '강소국' 이런 이미지만 있었는데, 영화는 전혀 그런 이미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라멘 샵>의 장면 장면들은 그런 섬세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 라멘 샵> 영화 자체는 감정만 중심으로 가기에는 서사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이전 영화와도 같은 감정 위주로 갈 수는 없지만, 에릭 쿠 감독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우리 가족: 라멘 샵>은 사실 제목에 영화의 모든 내용이, 주제가, 메시지가 다 들어가 있는 영화다. 원제인 <라멘 테>라고 하더라도 역시 영화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다. 내용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굳이 간단하게 범주화하자면 '가족드라마'의 어떤 전형도 닮아있고, 가족드라마의 메시지 역시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채 담겨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 영화는 굉장히 상투적이다. 분리되었던 가족들이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하나가 되는 순간은 특히나 상투적이어서 이게 에릭 쿠의 영화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깨 주는 것은 결국에 에릭 쿠의 연출 방식이었다. 그는 인물들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는데, 보통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연출되는 감정과는 다른 것을 이끌어낸다. 지나온 시간이 새겨진 에릭 쿠 영화 속 인물들의 표정은 마냥 기쁠 때도, 혹은 너무 슬플 때도 그것 뒤에 감춰진 어떤 시간들이 드리워져있다. 아마도 클로즈업 쇼트를 전후하여 밀착되어있는 플래시백 기법이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표현 방식 덕분에 에릭 쿠의 영화는 보다 감정에 충실할 수 있고 조금은 오그라들더라도 그의 영화에 감복하게 된다.
영화의 제목은 '우리 가족' 그리고 '라멘 샵'이라는 명징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물질적인 어떤 것을 뜻하는 것과 동시에, -가족이라고 하는 인물, 라멘 그리고 바쿠테라고 하는 음식,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가게라는 공간-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존재가 되고 의미가 된다는 것을 잘 담고 있다. 사실 이렇게 붙여진 제목이 아주 심사숙고하여 붙여진 것 같지는 않다. 영화에서 다루는 내용 그대로를 그냥 담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순간 그 어떤 것도 이 영화의 제목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 역시도 뻔할 뻔자라 하더라도 지루하지 않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