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의 큰 수확은 엠마 톰슨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혹시 다른 관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대단한 발견이라 말하는 것 같다면 미안하다(나는 이 배우의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 그 전에는 없었다). 영화의 시나리오나 구성, 연출 모두 나무랄 데 없기는 하지만, 엠마 톰슨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다른 영화적인 요소들은 조금 평범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엠마 톰슨은 법조인이라는 극중 배역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면서도, 이런 직업적 상황에 있는 사람의 복잡다단한 성격까지도 차분하지만 깊은 무표정으로 표현했다. 사실 이 배우의 표정만 따라가면서 영화를 좇아가 보아도 <칠드런 액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판사로 일하고 있는 피오나(엠마 톰슨)는 커리어적으로는 유능하고 철저한 사람이지만, 정작 내 가족에게는 소홀한 사람이다. 유일한 가족인 남편과는 육체적인 교감은 커녕, 정서적인 유대 역시도 멀어진 지 오래다. 결국 남편의 인내심은 폭발하게 되고, 피오나에게 외도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에까지 이른다(사실 이 장면이 아주 대단한 사건의 전개를 암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부의 외도가 이 영화가 주요하게 다루는 감정적인 기쁨과 슬픔의 원인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의 결심과 선택을 말리지 못한 채 파국으로 가는 듯한 이들 부부 생활은 힘겹게 이어진다.
그런 나날 도중 피오나의 일상에 갑자기 수혈과 치료를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애덤'의 사건이 들어오게 된다. 예의 그렇듯 피오나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애덤을 설득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그런 그녀의 최선은 애덤에게는 유일한 희망과도 같은 것이 된다. 이렇게 시작된 피오나의 '설득'은 결국 애덤에게는 의학적 치료를 목적으로 한 법적 설득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애덤의 인생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 된다.
여자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스케치하는 초반의 시퀀스에서는 엠마 톰슨의 연기력에 대한 잠재력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중년 부부의 흔한 사건의 발생과 갈등을 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사건의 문이 열리고, 상대 배역인 남자 주인공-핀 화이트헤드가 등장하며 어떤 찰나의 교감이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영화의 괴력이 크게 발휘된다(스포일러가 될 테니 내용 설명은 구체적으로 하지 않겠다). 그 괴력의 순간은 사실 대단한 사건, 대단한 분위기, 대단한 대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감정적으로 조금 깊어지는 순간이었을 뿐인데도, 그것이 감정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아주 큰 힘이 된 것이다. 단순히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장면이었을 뿐인데도, 관객들은 어느새 이 영화의 대단한 느낌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감상은 이 짧은 장면에 대한 긴 이야기만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만큼 이 장면은 <칠드런 액트>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힘이 이렇게 크게 발휘되는 영화는 흔치 않다. 이런 힘이 궁금한 사람에게 <칠드런 액트>를 추천하겠다. 나의 인생에 갑자기 삶의 이유가 생긴다거나 삶의 이유를 잃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면 이 영화의 느낌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이 <칠드런 액트>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