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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15. 2022

캐나다 스카이다이빙 여행기

하늘에서 뛰어내릴 결심


그날 아침이 밝자마자 비장한 마음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 단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저는 오늘 스카이다이빙하러 갑니다.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연락할 테니 걱정 마세요.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스카이다이빙>. 어릴 적부터 '하늘'을 유난히 좋아해서 핸드폰 앨범은 늘 하늘 사진으로 있었다. 공항과 가까운 동네에서 자라면서 비행기를 자주 보아와서 그런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대한 동경도 컸다. 오랜 마음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살면서 언젠가 스카이다이빙을 꼭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겁이 많아 놀이기구도 잘 못 즐기는 편인데다가 물아래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 같은 건 죽었깨어나도 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익스트림 스포츠의 끝판왕인 스카이다이빙은 인생의 로망이자 목표였다. 하늘 높은 곳에서 멋지게 날아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캐나다 일 년 살이의 끝무렵, 기회가 생겼다. 밴쿠버에 스카이다이빙장이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던 친구의기투합해서 마침내 스카이다이빙에 함께 도전하기로 했다. 다운타운 랍슨 스트리트 끝자락에 있는 업체 사무실로 신청하러 갔다. 맛집에 가면 유명인들의 사인이 붙어있는 것처럼 이곳은 하늘을 나는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스카이다이빙만 하면 350달러이고, 사진과 영상까지 남기려면 150달러가 추가된다. 촬영 인력 한 명이 더 투입되는 비용이다. 어쨌든 합쳐서 500달러이니 한국돈으로 50만 원 정도. 꽤나 큰돈이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로망을 실현할 기회이고, 목숨 걸고 하는 도전이며,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테니까.


젊음의 용기는 아무도 못 말린다.

비장의 문자를 보내고 일찍이 집을 나섰다. 일생일대의  앞두고 빈 속으로 가선 안된다. 터미널 근처 빵집에서 산 수제 샌드위치를 가는 길에 든든히 챙겨 먹었다. 플레이리스트 1번, 김동률의 '출발'을 들으면서 소풍 가는 아이들 마냥 한껏 들떴다.



다운타운에서 스카이다이빙장이 있는 아보츠포드까지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밴쿠버 동쪽에 위치한 아보츠포드는 한적한 외곽 지역이다. 주로 다운타운 쪽에서만 지내다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새로운 동네로 멀리 나가니 설렜다. 차창밖으로 말없이 하늘을 자꾸만 올려다보게 됐다. 



터미널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허허벌판 동네였다.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콧노래를 부르며 십여분 쯤 걸어갔다. 'SKYDIVE'라고 써진 표지판이 반겨준다. 하늘도 청명하고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표지판을 지나치니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멋지게 착륙하는 낙하산. 잠시 후 우리의 모습이 될 거라며 신나게 재잘거렸다.



여유 있게 출발한 덕에 예약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공터에서 한참 뛰어놀았다. 비행기 박물관에 온 것 마냥 정차되어 있는 여러 대의 경비행기를 구경한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무념무상 여유부려다. 평온 그 자체. 이때만 해도 몰랐다. 잠시 후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제 우리 차례, 대망의 시간이 왔다.

스카이다이빙을 위한 본격적인 절차가 시작된다.


Step 1. 동의서 작성

첫 단계는 인적 사항과 면책 동의서 작성이다.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스포츠인만큼 혹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업체 측에는 책임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서명을 한다. 쉽게 말해 죽어도 몰라요.



Step 2. 점프수트 착용 + 안전 교육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과정과 방법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고 간단한 영상 자료를 시청한다. 그리고 나서 점프수트를 착용한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데 빨간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연분홍색의 수트를 골라 입었다. 입고 온 옷 위에 그대로 입는 거라 얇고 편한 옷으로 가는 것이 좋다. 나는 검정색 면 소재의 가벼운 상하의를 입고 갔었다. 점프수트를 착용하고 트레이닝존에낙하할 때 자세와 착륙할 때 자세를 간략배운다. 고글 헬멧도 착용한다.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나면 전체적으로 몸이 끼여오고 답답하지만 이게 다 저항력을 줄여서 살기 위함이다.



Step 3. 경비행기 탑승 

사진과 영상은 뛰어내릴 때뿐만 아니라 사전 과정부터 남겨준다. 비행기를 타러 가기 직전에 지금 소감이 어떤지를 묻고 답하는 영상은 지금 봐도 당시의 설레는 감정이 생생히 담겨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의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러 간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떨리진 않았다. 스카이다이빙도 처음이지만 경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라 여러모로 두려움보다는 설레고 신나는 발걸음이었다. 작은 비행기 안에 총 일곱 명이 탔다. 조종사 한 명, 인스트럭터 두 명, 카메라맨 두 명, 나와 친구.



Step 4. 이륙 (이 감정 변화)

비행기의 바퀴가 땅을 떠 올라간다. 창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경치 구경만 해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로망은 온 데 간 데 없고,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잠깐.. 이거.. 생각보다 너무 높이 올라가는데..!! 올라간 만큼 뛰어내려야 하는 거잖아..??"


정해진 고도에 다다라 비행기의 움직임이 안정적으로 느껴졌을 때. 지상의 자동차들이 개미만 해졌을 때. 신남은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막상 올라와 보니 못할 것 같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앞설 뿐, 사실 현실 감각이 무뎌지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비행기에 내가 마지막으로 올라탔는데 마지막에 탄 사람이 문 바로 앞이라 순서상 제일 먼저 뛰어내려야 한다. 타자는 나였다.



Step 5. 생명줄 점검

이제부터 믿을 사람은 나를 데리고 뛰어내려 줄 숙련된 인스트럭터뿐. 마지막으로 인스트럭터가 자신의 골반 양쪽과 양 어깨에 달려있는 연결 고리를 나와 확실하게 바짝 고정시킨다. 몇 번이고 잡아당기면서 재차 확인한다. 시키는 대로 고글을 내려쓰고 자세를 갖춘다. 이때부턴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고 해탈한 상태였다. 찍혀있는 사진을 보면 급속도로 얼굴이 굳어졌다.



Step 6. 비행기 문이 열리고 <자유낙하>

정신줄을 놓을  같은 무렵, 비행기 문이 열렸다. 엄청난 바람 소리와 함께 나를 찍어주기 위한 카메라맨이 "See you soon. ^^" 을 외치며 겁도 없이 냅다 뛰어내린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오 주여. 이제 진짜 내 차례다. 내가 용기를 낼 때까지 기다려준다거나 지체할 시간 따윈 없다. 나의 의지와 발걸음과는 상관없이 인스트럭터가 나를 끌고 열린 비행기 문 앞까지 간다. 그리고 박자를 타더니 엄청난 힘으로 나를 데리고 뛰어내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시속 200km 속도로 바람을 가로지르며 약 10초간 하늘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뛰어내렸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낙하한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극도의 감각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굳이 비유를 하자면,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가장 끝자리에 타서 내려올 때 심장이 붕- 하고 공중에 떠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하지만  강도는 배 천배는 더한다고 보면 된다. 아드레날린 대폭발. 그래서 자유 낙하하는 10초간은 눈을 뜨지 못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양손은 생존 본능으로 내 몸의 안전끈을 꼭 붙들고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인스트럭터가 앞에 카메라를 보라며 어깨를 툭툭 쳐줬다. 그제야 눈을 뜨고 여유 있는 척 포즈를 취했다. 물론 강한 바람에 얼굴살이 밀리고 꽉 끼는 고글을 쓰고 있어서 예쁜 사진을 남길 순 없다.



Step 7. <낙하산 타고 하늘 구경>

무아지경 10초간 떨어지다가 낙하산이 촥 하고 펼쳐진다. 그때부터는 놀라우리만큼 고요한 세계가 펼쳐진다.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는다. 세상의 그 어떤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적막만이 흐른다. 맨몸으로 하늘에 앉아 이 공기를 그대로 흡수하면서 발밑 세상을 내려다본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낯설고 황홀한 경험이었다. 약 5분 동안 천천히 하늘을 날며 하강하는 이때가 스카이다이빙의 꽃 중의 꽃이다. 이대로 계속 하늘에 머물고 싶어진다.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다시 느껴볼 수 있다면 죽기 전에 한 번은 더 도전해볼 수 있을 정도다.


우주인이 지구를 바라보고 신비감과 허무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은 다사다난하지만 위에서 보면 이렇게 평온하구나. 너무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비현실적인 장면에 아무 말 없이 감탄만 반복하며 열심히 눈에 담았다. 그러다가 내 뒤에 붙어있는 인스트럭터의 존재가 느껴졌다. 이름은 Tom이었다. 매일 이렇게 하늘을 나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단순히 그가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 정말 멋진 일을 하는구나. 매일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볼 수 있다니!"

"일이니까. 하루에 세 번도 뛰어내려."


"지금은 무슨 생각하고 있어?"

"내려가면 피자 먹을 생각하고 있어."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뛰어내리는 일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인 것이다.


Step 8. 착지

착지할 때가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걱정했는데 무사히 안착했다. 혹여나 다리뼈가 충격에 부러지지 않도록 최대한 다리를 들어 올리고 착지해야 한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살아 돌아와서 감사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풍경의 여운이 너무 컸다. Tom과 연결되어 있던 생명 고리를 풀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인증샷도 남겼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파라솔 아래로 터벅터벅 걸어가 피자를 먹는데 그 모습마저 신기했다. 가만히 앉아서 나보다 한 발 늦게 뛰어내린 친구의 무사 착륙을 기다렸다.



Step 9. 수료증 + 사진 + 영상 발급

동의서를 썼던 사무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흥분을 가라앉힌다. 10분 정도 기다리면 백 여장의 사진과 잘 편집된 영상이 담긴 CD(지금은 USB로 준다고 한다) 그리고 스카이다이빙 수료증을 준다. 지금껏 살면서 많은 수료증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럽고 값진 수료증이다.




하늘에서 뛰어내린 경험으로 우리는 앞으로 살면서 뭐든 할 수 있고,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겨낼 수 있다는 엄청난 자신감에 휩싸였다.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버스를 타러 가면서 올려다본 하늘이 이전과는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경험과 시야를 확장해가는 일은 언제나 짜릿하다. 그 방법으로는 여행만큼 좋은 수단도 없는 듯하다.

길을 물었는데 가는 길이라며 터미널까지 태워주신 노부부


오늘 하늘에서 내려다본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말자!


이 순간을 잊지 말고 살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집까지 무사히 도착 후,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하늘에서 찍은 사진 한 장과 함께 생존 신고를 했다. 자려고 누웠는데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그 찰나의 강력한 기분이 생생하게 반복됐다. 하늘을 나는 오랜 꿈을 이뤘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해 잠들 때까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다운타운으로 돌아와서 먹은 피자


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와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이국땅에서 하늘을 같이 뛰어내릴 결심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인연은 아닐 텐데. 늘 씩씩하고 유쾌했던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 링크 정보 >

 vancouver-skydiving.bc.ca (skydivevancouver.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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