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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희 Jun 02. 2016

나의 쇼핑 회고록

그 스웨터를 사기로 결심했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1 내가 가장 처음으로 산 사치품은 ‘뉴 키즈 온 더 블록 New kids on the block’의 사진집과 비디오였다. 엄마 몰래 사놓고는(그래도 내 돈으로 산 거였는데)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돈을 이렇게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데, 라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2 대학에 들어와서 홈쇼핑으로 메이크업 브러시 세트를 샀다. 왜 샀을까? 왜 사긴. 홈쇼핑의 메커니즘은 원래 그런 거다. 저런 걸 누가 사지? -> 나도 하나 살까? -> 왜 샀을까? 그걸 제대로 활용만 할 수 있었다면 20대 초반에 내 연애운도 탄탄대로를 달렸을 텐데, 아무리 더듬어 봐도 그런 기억이 없다(사실 나는 머리도 잘 안 감고 다니는 애였는데 그 브러시를 쓸 일도 없었겠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그 브러시를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는 거다. 전문가들이 들으면 기절할 얘기겠지? 

3 인도에 너무 가고 싶어서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텔레마케팅으로 대학 졸업생 명부 팔기, 교차로 교통량 조사하기, 지하철 2호선 객차 내에 컴퓨터 학원 전단지 꽂기, 식당 서빙, 설문 조사 등등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다 했는데, 그렇게 번 돈을 먹고 마시고 싸구려 옷을 사느라 다 써버렸다. 결국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44만 원짜리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어차피 인도에 가서 잘생기고 돈 많고 착한 외국 남자애를 만나서 불타는 로맨스 행각을 벌인 후 그 남자애와 잘 먹고 잘살 계획이었으니 그 정도 빚쯤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정확히 두 달 후 나는 로맨스는커녕 마약사범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몰골로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그 카드빚은 무슨 스토커처럼 2년 동안이나 나를 쫓아다녔다. 그때부터 나는 신용카드를 자르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4 내 발은 255mm다. 가끔은 260mm이기도 하다. 아시다시피 여성용 구두는 가장 큰 사이즈라고 해봤자 250mm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발에 맞지도 않는 구두를 신고 고문당하는 기분으로 걸어 다녀야 했다. 그렇게 사는 인생은 정말로 힘들다. 혹시 사는 게 너무 편해서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한 번 자기 발 사이즈보다 5~10mm 정도 작은 구두에 발을 구겨 넣고 일주일만 살아보기를 바란다. 발에 맞는 구두를 신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까. 내 소원은 아무 구둣가게에나 들어가서 아무 구두에나 발을 넣어보는 거다. 그런데 만약 내 발이 그렇게 작았다면 나는 구두 쇼핑을 하느라 패가망신했겠지? 아무튼 돈이 좀 생기자 나는 백화점 구두 매장으로 달려가 구두를 두 켤레나 맞췄다. 구두는 정말 예뻤고 발에도 꼭 맞았다. 행복했다. 그때 나는 패션잡지사에서 편집 보조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내 구두를 보고 기자 중 한 명이 크리스찬 디올 구두냐고 물었을 정도였다(그럴 리가?). 그 구두 두 켤레는 몇 년 전에 이사하다가 잃어버렸다. 정말 슬프다. 


5 태국에 놀러갔다가 ZARA에서 소매가 없는 무릎길이의 화이트 원피스를 발견했다. 목부터 가슴까지 종이접기를 한 듯한 프릴이 세로로 달려 있었다. 심플하고 특별했다. 입어봤더니 몸에 꼭 맞고 잘 어울렸다. 결혼식이나 비슷한 행사가 있을 때 입고 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샀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입어봤는데 이 원피스를 입고 지하철을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피스를 입으려면 차를 사야 했다. 게다가 ‘결혼식이나 비슷한 행사’에 참석할 일도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원피스를 살 때 생각했던 ‘비슷한 행사’가 뭔지 나도 참 궁금하다). 어쨌든 그 원피스, 입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누굴 줄 수도 없다.   


6 회사에 다닐 때 남편은 퇴근할 때마다 이상한 물건을 잔뜩 사왔다. 각종 컴퓨터 주변기기는 물론, 냄새가 끔찍한 코코넛 오일, 평범한 수돗물을 육각수로 바꿔준다는 정체불명의 링을 사온 적도 있다. 어느 것 하나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물건들이었고, 심지어 효과도 없었다. 나도 만만치 않았다. 심심하고 쓸쓸하고 울적하면 마트에 가고 백화점에 가는 게 취미였다. 우리는 주말이면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백화점에 가서 아이쇼핑도 하고 그러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을 가격의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 들고는 식당가에서 식사를 하고 서점에서 책을 봤다. 그렇게 월화수목금요일을 일하고 토일요일에는 돈을 썼다. 그때도 썩 나쁘지 않았다. 그때도 우리는 나름 신중히 물건을 골랐고 그 정도 여유는 부려도 돌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갑자기 남편이 실직을 하고 집안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하자 더 이상 그렇게 쓸 수 없다는 것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정말로 어려웠다. 타의에 의해 절약을 해야 하는 상황은 눈앞에 벽이 가로막혀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하지만 소비도 습관이었다. 어느 정도는. 본성은 못 고치지만 습관 정도는 힘들어도 바꿀 수가 있다.  

지금은 가끔 쇼핑을 하고 싶다. 단것이 급 당기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쇼핑이나 하러 갈까?’ ‘계절이 바뀌었으니까 옷이나 사러 갈까?’라는 마음은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게 다르다. 가끔 ‘아, 예전엔 그런 마음으로 살았구나’ 하고 깨닫고는 마치 ‘내가 저런 애를 좋아했었단 말이지’ 같은 착잡한 심경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절약은 쉽지 않다. 


7 가끔 나는 좀 비싼 빵집에 가서 갓 구운 단팥빵을 산다. 가격은 아마 2,000원에서 2,500원 정도?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단팥빵을 야금야금 다 먹어치운다. 갓 구운 단팥빵은 정말 맛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거기에 다 들어 있다. 열량, 따뜻함, 부드러움, 달콤함, 기쁨, 배려, 다정함, 담백함. 이런 것을 단팥빵의 격려라고 하면 너무 낯 간지러우려나. 돈을 아껴 쓰게 되면 모든 걸 좀 더 음미하게 된다.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니까. 가능하다면 하얀 종이봉투에 다섯 개쯤 집어넣어 가고 싶다. 아마 집에 도착하면 봉투가 텅 비어 있겠지? 그런 동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종이봉투 안의 단팥빵. 


8 쓰던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 나서 3년 전에 새 노트북 컴퓨터를 샀다. 30만 원이 채 못 되는 작은 넷북이다. 3년 동안 이 컴퓨터로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돈도 많다면 많이 벌었다. 나는 물건을 함부로 쓰는 사람인데 이 컴퓨터는 단 한 번도 고장이 나지 않았다. 애플 맥북처럼 멋지진 않지만 든든한 내 사업 밑천이다. 브랜드를 말해 주자면 ASUS인데 지금은 단종된 모델이다. 아마 내 생애 가장 잘 산 물건 중 하나일 것이다. 다음엔 애플 컴퓨터를 사고 싶다. 

9 얼마 전에 유니클로에서 회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7만 9,900원이라는 가격에 판다고 했다. 요즘 쇼핑을 쉽게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참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유니클로 매장에 가서 스웨터를 들어보고 몸에 대보기만 서너 번을 반복했다. 집에 와서는 그 스웨터를 입은 내 모습을 상상했다. 회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은 나는 왠지 지금의 나보다 좀 더 공정한 사람일 것 같았다. 인생의 여러 가지 면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남의 결점에 관대하고 어떤 일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흥분해서 침을 튀기며 남의 험담을 하지 않을 것도 같았다. 또 충동구매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회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으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스웨터를 사기로 결심했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10 그 스웨터를 사서 입고 다니는데(심지어 지금도 그걸 입고 있는데)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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