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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희 Jun 07. 2016

고독한 식사

혼자인 것은 결국 나 자신과 함께 있는 것.

누군가 그랬다. 혼자 점심을 먹지 말라고. 아예 그런 제목의 책까지 나왔었다. 인맥, 네트워킹 같은 문제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 말에 심하게 찔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나는 혼자 밥을 잘 먹는 축에 속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꼭 먹는 편이다. 아, 물론 혼자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어보지는 못했다. 혼자 샤브샤브집에 가거나, 혼자 회를 먹어보지도 못했다. 혼자 술을 마셔본 적도 없다. 그 정도로 대범하지는 못하다. 그래도 그럭저럭 혼자 먹을 만한 곳에서는 혼자 잘 먹는다. 햄버거도 잘 먹고 자장면도 잘 먹고 김밥도 잘 먹고 떡볶이도 잘 먹고 순대국밥도 잘 먹는다. 


내 부모님은 중국집에서 만났다. 아빠와 엄마는 그해에 속초 시내에서 이상하게 자주 마주쳤는데, 서로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어느 날 한 중국집의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 서로를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고 했다. 스물네 살 해군 하사였던 아빠에게 열아홉 살 어린 나이의 엄마가 혼자 자장면을 씩씩하게 먹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 피를 물려받은 것이 확실하다. 


스물세 살에 사귀던 남자는 먹는 데 관심이 없었다. 나는 먹는 데 관심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서 그와 만나지 않는 날엔 혼자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메뉴를 실컷 먹었다. 그 남자와 내가 잘 되지 않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함께 여행을 간 날에 나는 혼자 치킨 한 마리를 시켜서 오기로 다 먹어버렸고, 그 남자는 나를 무슨 짐승 보듯 쳐다봤으니까. 그와 헤어지고 스물다섯 살에 소개로 만난 다른 남자는 혼자서는 밥을 못 먹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싫어졌다. 사람을 그런 걸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오만한 나이였다. 

혼자인 것은 결국 나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 자신은 혼자 있기에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도, 그렇게 본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무섭거나 싫기도 하다. 또 혼자일 때 우리는 낯선 타인들에게 나를 이해시켜야 한다. 내게는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표지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나 동행이라는 표지 말이다. 어색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함께 실소라도 터뜨리며 그 감정을 공유할 사람도 없다. 의지할 사람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다. 무엇보다 시선을 둘 곳이 없다. 특히 혼자 밥을 먹을 때는. 


그래서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20대에 혼자 여행을 하다 태국 남쪽의 한 섬에서 두 명의 한국 여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전에 만난 한국 여자들은 다들 나를 멀리 했는데 그럴 만도 했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 지쳐 몰골이 거의 마약 중독자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 후 경유지로 태국에 들른 간호사 출신의 그녀들은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녀들과 해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저녁에 해변의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나는 한 달 동안 혼자 지내며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과 함께 있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웅녀가 사람이 되고 나서 처음 느낀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날 우리의 맞은편 테이블에서는 한 서양 노인이 홀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낮에 숙소의 리셉션에서 외국인 손님들의 수속을 도와주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은퇴를 하고 여행을 다니다 여기에서 일자리를 얻은 것 같았다. 급여는 적지만 숙식을 제공받을지도 몰랐다. 그는 저무는 해를 보며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 먹었고 맥주를 천천히 마시기를 반복했다. 그는 오랫동안 편안하게 해변에서의 식사를 즐겼다. 누군가가 옆에 앉기를 기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 노인처럼 이 아름다운 섬에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여생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혼자 밥을 잘 먹는다. 내가 계속 혼자 밥을 잘 먹는 이유는 혼자 먹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있다. 그러니까 점심 정도야 혼자 먹는다고 해서 비참할 이유가 없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굳이 메뉴를 통일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상대가 먹는 속도에 맞출 필요도 없고, 상대가 불편한 사람일 경우 어색한 침묵 속에서 먹지 않아도 돼서 좋다.  집에서 혼자 밥을 먹어도 처량하다는 느낌 같은 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혼자 먹을 수 있다니, 나는 참 복 받은 인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친한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뭔가를 먹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친하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을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 나는 어색한 사람과 함께인 것이 싫은 것이 아닐까? 내게는 함께 있을 때 어색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닐까? 이런 사람이라 인맥을 만드는 일, 네트워킹을 하는 일에는 젬병인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인기 있는 사람들의 패턴을 안다. 꼭 와 달라고 부탁한 파티나 행사 같은 곳에 굳이 시간을 내고 용기를 내어 가보면 입구에서부터 알게 된다. 내가 꼭 가지 않았어도 좋을 자리라는 걸.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머릿수를 채워주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그들은 사람들을 관리한다. 그들은 보통 두 부류다. 진심을 떨이상품처럼 싼값에 떠안겨 아리송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진심을 감추고 항상 생글생글 웃거나.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이건 사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인기 있어본 적이 없는 여자의 질투심이다. 그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 나름대로 잘 살아갈 것이다. 나는 언제나 파티장 입구에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각자의 인생인 것이다.  


소셜 다이닝이라는 것이 인기라고 한다. 낯선 사람들이 긴 식탁에 나란히 앉아 소박한 식사를 하는 멋진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라온다. 아름다워 보인다. 동시에 나는 태국의 섬에서 홀로 천천히 식사를 하던 노인의 모습도 떠올린다. 그 지독했던 쓰나미가 섬을 초토화시키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노인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어쩌면 노인의 고독도 쓰나미와 함께 쓸려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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