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환상에서 깨어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스물한 살의 여름에 처음 남동생과 둘이서 한 달 동안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이후, 지금껏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여행을 다녔다. 방콕의 어떤 골목은 그냥 우리 동네 같고, 오사카나 교토는 옆집 마실 가듯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고, 작년에는 무슨 복인지 파리와 런던까지 다녀오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그것도 공짜로!). 하지만 여행을 간다고 해서 아주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녀왔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나는 낯가림이 심한 만큼이나 낯선 곳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낯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면 울적한 기분마저 든다. 뭐 하러 그 돈을 들여 여기까지 온 걸까? 여행 기간이 일주일을 넘어가면 집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데 왜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걸까?
여행을 떠나면 특별해진다. 공항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나는 공항에 가는 사람이야. 그것도 김포공항이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왠지 어깨가 펴진다. 출세했구나. 해외에도 다 가고. 감개가 무량하다. 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아의 방주에 오를 자격이라도 갖춘 사람 같다. 그러니까 나도 선택받은 인간 중 하나처럼 느껴진다.
까다로운 출입국 심사를 거친다. 출입국 심사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줄을 서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줄을 서봤자 기다리는 사람은 날 역겹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다. 매일 나 같은 사람의 얼굴을 수백, 수천 명씩 봐야 하니 역겹기도 하겠다. 이해도 된다.
면세 구역으로 들어서면 이제부터 천국이 시작된다. 여기에는 치욕스러운 과거나 구질구질한 현재 따위는 없다. 우리는 반짝이는 면세품을 사들고는 비행기에 올라타 여길 떠나버리기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은 미래 지향적이다. 화장실이 언제나 깨끗하다는 점도 정말 마음에 든다. 나는 지저분한 공중화장실에서는 일을 못 보는 까다로운 여자이기 때문이다.
밥값이 아무리 비싸도 여기에서는 용서가 된다. 어차피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지도 않을 값비싼 명품들을 하염없이 구경한다.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면세품을 살 기회가 허락되는. 어쩌면 평양의 백화점을 드나드는 고위층 가족들의 마음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에 타서 자리를 찾을 때는 어리숙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도 많이 타봐서 지겨워 죽겠네’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흥분을 억눌러야 한다. 어쩌면 스타벅스에 들어갈 때의 표정 관리와 비슷한 건지도 모른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나, 홍대에 있는 클럽에 들어갈 때와도 마찬가지다. 기내식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로 흥분을 억누르고, 가급적 뭐라도 남기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뭘 남긴 적은 거의 없다.
이런저런 표정 관리 과정을 거쳐 이국에 도착하면 묘한 세상이 시작된다. 무균질의, 갓 소독을 마친 것 같은 공항과는 다른 곳, 독특한 냄새와 다른 풍경과 낯선 말들이 세균처럼 버글거리는 곳. 이곳에서도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이곳의 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돈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곧 떠날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대우를 받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고, 기분이 나빠질 때도 있다. 어쨌든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에서는 내가 지나가도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나를 쳐다본다.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어주기도 한다. 수작을 걸기도 한다. 친구가 되기도 한다. 사기를 치기도 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다른 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기 몸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아마 나이도 반밖에 안 될 젊은 현지인 여자친구의 손을 혹시 놓칠새라 꼭 잡고 있는 서양 노인은 자기네 나라에서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혼한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식들은 연락도 안 할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도 은퇴한 지 오래고, 친구라고 해봤자 양로원에 들어가 있는 몇 명과 양로원에 들어갈 계획을 세울 몇 명뿐인지도 모른다.
구릿빛 피부를 꿈꾸며 7박 8일을 해변에 누워 있었으나 인종 특성상 화상 환자가 되어버린 새빨간 서양 젊은이는 고향에서는 여자들의 눈길조차 끌지 못하는 연애 불능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는 자유분방하고 낯선 사람들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붙이는 쾌활하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이런 한심한 이유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걸까?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어느 순간 그런 환상이나 허위에서 깨어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나는 두 달째 인도를 홀로 여행 중이었다. 외로움에 찌들어 마지막 여정을 함피라는 시골 마을로 정했다. 여기서 3일 정도 머물다가 뭄바이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함피로 가기 전 호스펫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 뒤쪽에 앉아 있던 동양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니?”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랜 여행에 찌들어 있는 것 같았던 그 여자는 “아하” 하고 심드렁하게 내뱄더니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외국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이해시키는 것에 완전히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 기분이 나빴다.
함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 옆에 선 프랑스 남자는 바캉스를 온 파리 출신의 금융권 종사자였다.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눴고, 그가 전혀 내 타입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와 친해지기를 꿈꿨다. 하지만 몇 마디 말 후에 대화는 끊어졌다.
함피에 내려 숙소를 잡다가 그 프랑스 남자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동양 여자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보았다. 속이 쓰렸다. 나는 홀로 마구간 같은 숙소 방에 누워 있었다. 밖에서 외국 사람들이 밤새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이었다. 내일 밤 떠나는 기차를 탈 때까지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함피의 한국식 칼국숫집(한국 사람들이 칼국수와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단다)에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나타났다. 그들 중 여자 두 명은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에 같이 탄 여자들이었다. 한 명은 슈퍼모델 출신의 미인이었다. 다른 이들은 별 볼일 없는 남자들로, 슈퍼모델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쩌다 그 사람들 틈에 끼어 가고 싶지도 않은 사원에 가고 시내에 가서 인도식 치마도 맞추기로 했다. 나는 그 일들 중 하나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단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들 틈에 끼려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그들이 기차표를 예매하는 데까지 따라갔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예매한 기차는 내일 밤이 아니라 오늘 밤 떠난다는 것을. 날짜를 착각했던 것이다. 오늘 밤 여길 떠나는 기차를 타지 않으면 나는 내일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
정신없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그들 중 누구도 나와의 이별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짐을 꾸려서 곧바로 기차역으로 달려가서는 플랫폼 바닥에 주저앉아 한밤중에 출발하는 기차를 기다렸다. 그곳에는 나처럼 여길 떠나려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시골 기차역은 어두웠다. 나는 할 일도 없이, 말할 상대도 없이 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고, 또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어둠 속의 선로를 응시하면서 고국에 있었다면 겪지 않았어도 될 외로움에 뼈까지 저렸다. 그때 저쪽에 모여 있던 프랑스 남자들 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니?
한국에서.
한국은 여기서 기차 타고 갈 수 있는 곳이야?
헛! 그럴 리가. 비행기 타고 가야 해.
그렇구나. 난 요리사야. 니가 생각하기엔 프랑스 요리사가 한국에서 일하는 거 어떨 거 같니?
글쎄.
그때 알았다. 나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었다.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영어를 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말은 많이 할수록 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입을 닫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영어를 잘하겠는가. 나도 말을 잘하고 싶었다. 농담도 하고 옆 사람을 때리면서 웃고 싶었다. 별것 아닌 일로도 호들갑을 떨면서 있는 수다, 없는 수다를 풀어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랬더라면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동양 여자와 의기투합해서 함께 숙소를 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인 무리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요리사와 인도에서 프랑스 식당을 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인생 중 어떤 인생도 잡지 못했다. 내가 잡지 못한 모든 인생들이 어둠 속의 철로를 따라 지나가 버렸다. 내가 미웠고 내가 싫었다. 이렇게 태어난 내가 짜증스러웠다.
얼마 후 기차가 도착했다. 나는 기차에 올라탔다. 내가 남겨두고 온 것들을 향해 다시 떠났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비행기에 올랐고, 담담하게 내가 떠나온 것들을 다시 맞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특별할 것도 없이 평범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마음을 추슬렀다. 내가 나인 것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런 것을 위해서 나는 떠났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