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행복해한다.
할머니가 쓰러진 이후로, 8월 한 달은 모든 게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거실 달력 날짜 밑에 내가 오는 날은 내 이름을 크게 적어두었다.
내가 이 상황에 함께한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는 신호였다.
할아버지는 자주 까먹으니까 달력에 적어놔도 내가 언제 퇴근하는지를 항상 물었다.
주말은 본가에 가야 하니까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달력을 보라고 해도 금요일 저녁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 먹으러 오니?"
그럴 때면 전화해서 천천히 설명해야 했다.
"할아버지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잖아.. 집에 갔다가 일요일 저녁 늦게 들어갈게요."
설명을 해두어도 또 까먹으니까 일요일 저녁에도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 먹으러 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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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내 뒤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할머니를 부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또 어느 날은 저녁 메뉴로 테이크아웃해간 딤섬을 처음 먹어보아 이게 뭔지를 연신 물었다.
다른 어느 날은
할아버지랑 가장 많이 붙어 지냈던 8월 첫째 주와 둘째 주는
아침을 먹어야만 했고 퇴근 후에는 집 가는 길이라고 연락을 쳐야만 했다.
고3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다.
이모들은 혼자 밥 먹으면 맛이 없잖아 혼자 있으면 밥도 거르게 되고
네가 있으면서 챙기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실 거야
할아버지는 80이 넘어도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지하철 안내원이라도, 노인정에서 하는 쓰레기 치우는 봉사활동이라도,
코로나가 퍼지고 경로원이 문을 닫고
할머니가 집에 없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깨우고 밥을 차리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국을 끓이고
그런 것이 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저녁식사 때는,
아침에 병문안을 다녀온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이모들이 유치하다고 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최애 드라마
위험한 유혹과 기막힌 유산을 연달아 감상하며 할아버지랑 악역에게 욕을 해준다.
"저놈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먼!"
"감방에 들어가서 정신 차려봐야 해!"
9시는 할아버지의 막걸리 타임
9시 뉴스를 보면서 코로나 조심하라고 말하고 나는 방에 들어간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놓치는 것들이 많을 수 있다.
그렇게 3주 차에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해졌고 일반병실로 돌아왔으며
말도 하고 식사도 하고 전화도 하고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온 날 할아버지는 계속 웃었다.
할머니 옆에 붙어서 아직 마비가 풀리지 않은 발을 계속 주무르고
아침/저녁 약을 챙기고
식사를 챙기는 건 당번을 정해서 이모들이 오고
조금 더 모두가 가까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