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세상을 향해 뛰쳐나간다. 빨리 학교에 가야 하고, 숙제를 끝내야 하며, 친구들과 놀아야 하고, 시간이 남으면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보거나 게임 한 판을 해야 한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그 아이의 하루는 ‘빨리’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다. 그 아이는 사실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빨라지기만을 강요받게 된 걸까? ‘느림’은 언제부터 게으름의 동의어가 되었을까? 아마도 그 시작은 기계화 시대와 함께였을 것이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줄 기계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
‘느림’이란 단어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낭만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느리게 걷는 사람은 뒤처진 사람이고, 느리게 일하는 사람은 무능력한 사람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달팽이가 느리다고 해서 바다를 가로질러 대륙을 여행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느림은 다른 방식의 효율성일 뿐이다.
느림의 미학은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데 있다. 무작정 빠르게만 살아가는 삶에서는 지나가는 풍경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느리게 걸으면 발밑의 낙엽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시간이 아니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느림’을 배워야 한다. 시간을 적의처럼 다루는 대신 동반자로 여기는 법을 익혀야 한다. 매일 5분만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거나, 느린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을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한 작은 습관이 결국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느림을 선택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가 결국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산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