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걷는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흐른다. 하루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시계의 숫자에 맞춰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그 발걸음이 지나는 곳곳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숨어 있다. 그 시간은 흙과 시멘트 틈에 남아 흔적으로 묻어 있고, 지나가는 바람과 간판에 반사된 빛 속에 녹아 있다. 이 도시는 한 권의 책이자,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이야기다.
출근길의 지하철 안, 모두의 눈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눈을 들어 잠시만 바라보면, 오래전부터 지하철을 따라 흐르던 지하의 시간도 볼 수 있다. 과거의 유령처럼 잊혀진 역들의 이름과, 벽면에 남은 오래된 광고판의 흔적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오래된 시간은 어딘가 지금도 숨을 쉬고 있을지 모른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놓인 돌 하나에도 시간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인도에 박힌 낡은 벽돌은 처음엔 새로웠겠지만, 비에 씻기고 발에 차이면서 본래의 빛깔을 잃어갔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돌이 묵묵히 삼킨 시간은 어딘가 남아 있다.
도시의 밤은 또 다른 시간의 문을 연다. 낮 동안 빠르게 움직이던 자동차와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오래된 가로등과 불 켜진 창문들만이 남는다.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흐릿한 음악 소리나,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살아있는 누군가의 시간이다. 그것은 도시가 잠시 멈춘 것 같지만, 사실 더 조용하고 깊은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도시를 스쳐 지나가지만, 그 도시 자체는 결코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건물, 길, 나무, 그리고 벽에 남은 작은 낙서 하나까지도 자신만의 시간을 품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서 있는 이 순간, 우리가 있는 장소에도 다른 차원의 시간이 겹쳐져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쯤은 시간을 놓아두고 도시를 걸어보자. 발밑에 남겨진 시간, 창문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 그리고 보도블록 틈새로 새어나오는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보자. 도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시간들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어쩌면 수백 년 전의 누군가와 같은 자리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도시의 어디에나, 그러나 아무 데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