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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pr 04. 2020

분노를 쏟아내는 인간의 발화

가까이 하기엔 너무 화가 많은 그대들이여

대체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이상 남의 욕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놀라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줄곧 화를 쏟아내는 상대와 시간을 보내면 머리로는 튕겨내려고 맞장구도 안 치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주제를 바꾸려고 해도, 몸이 반응한다. 나는 지난 하루 끔찍하게 앓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것인데, 이 배경에는 세상 만물을 욕하는 선배 A가 존재한다. 사람 하나 때문에 아프다니 웃긴 노릇이지만, 머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몸이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이 사람 어떻게 떼어내야 하나. 혹은 어찌 자연스레 멀어져야 하나 따위의 생각을 1초 정도 하는 것이다. 가지치기 하려는 걸 알아챌 만큼 눈치 빠른 사람도 아니라서, 그냥 어른인양 살아가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러면서, 그냥 살아온 지난 세월이 야속해진다. 이런 사람과 일하려고 그리 살았나 싶어서. 그건 남을 탓하기 싫고, 이 환경에 처해게 한 건 나 스스로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위안 혹은 순간을 넘길 수 있어서다.


선배 A는 자신을 가리켜 "순간 화를 내고 곧 까먹는 사람"이라고 몇 번이고 주장한다. 치밀한 선배 A만의 대화 방식이 있다. 남의 욕을 이만큼 쏟아낸 후 마지막에 "그 사람 입장에선 그럴 수 있지" 또는 가슴을 쿵쿵 치며 "요즘 화를 자주 내" 또는 "그래도 나는 의연해. 이렇게 화내고 금방 잊어" 등의 자기 보호형 구절을 끼워넣는 것이다. 선배 B는 식당 종업원 등에게 자주 시비를 건다. 목소리 큰 남자들을 욕하면서 그 스스로 그 욕하는 유형의 인간이 돼 식당에서 큰소리로 욕을 하거나 남의 품평을 한다. 본인 자신은 돌보지 않으면서, 젊은 여자들을 그리 품평한다. 그 대상에는 나도 들어가 있어 불쾌할 때가 있지만 '변태 아닌 게 어디야' 하고 넘길 때가 많다. 그런 것 저런 것 다 신경쓰면 일할 수가 없다. 이 업을 택한 내가 잘못이지. 이제서야 안다. 이 업에 들어온 사람들 중 일부는 '세게 말하는 것'을 자기 장점 혹은 '세게 말하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상대가 불편할 거라 예상도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이들과 밥을 먹고 나면 내가 아픈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나는 익명에 숨어 가진 자 혹은 가져 보이는 자를 욕하는 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SNS 등에 올라온 유명 연예인, 특히 여자 등을 욕하면서 화를 내는 A, B 선배의 대화 행태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남의 SNS에 뭔 글이 올라오듯 무슨 상관인가. 그것이 남을 비방하는 게 아닌 그저 자신의 휴식 사진 등을 올려둔 사진이라는데, 거기에 가서 댓글을 달고 시비를 거는 그 상황이, 어째서 당연한 거냐는 말이다. 그런 뉴스(라고 불러야 하나) 혹은 소식 등은 그저 안 보고 안 들으면 되는 것을, A 선배는 굳이 그걸 다 찾아 보면서 화를 낸다. 제3자가 보기엔 부러움의 산물이다. 작년 한 해, 들어가는 나이와 시간, 그러나 홀로인 것에 고민을 많이 했다는 A 선배는, 제3자가 보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남이 자신과 다를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그 스스로가 분노 표출하는 데 습관화 되어 있어 그 모습이 굉장히 불안전해보인다는 것. 그것을 모르고 떠드는 것인지 알면서도 후배들 앞이라 마음 편하게 얼굴 벌개져 남 일에 분노를 표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 가면 그는 계속해서 외로우리라는 것. 그것이 불쌍해 동정하다가도, 그것조차 오만은 아닌가 하여 나는 생각을 거둔다.


B 선배는 부족한 능력을 숨기려 부단히 남을 욕하는 인물이다. 뭐든 남탓을 하며 맥락을 짚지 못한다. 감이 떨어지는 부분을 화를 내거나 상황, 남탓을 하며 넘기니 그의 주변은 매번 욕할 거리 투성이다. 홍보대행사, 상사, 주변 선배, 주변 후배, 부모, 친구…. 가만히 내버려 두면 신나게 한 시간 반이고 두 시간이고 모든 걸 욕하는 B 선배는 보고 있으면 애틋(?)해진다. 마음이 아프고 귀여울(그런 의미의 귀여움이 아니다. 웃기지도 않단 말이다.) 때가 있다. 귀엽다고 생각해야지 내가 B 선배의 리듬 따라 오가버리면 같이 귀여워질 테니 그저 '귀엽다' 정도로 넘겨 줘야 한다. 그가 하는 말의 90%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말을 위한 말이라서, 그저 듣고 그러냐고 넘겨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몸이 자꾸 스트레스를 받아 아파하니, 멀리하는 수밖에. 애틋하고 귀엽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부담스럽고 무서운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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