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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pr 02. 2020

진심을 오해받는 일

프레임부터 씌우고 보는 인간을 만났을 때

# scene.01


여자는 이 직업이 남의 도움 없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공생관계 같은 거다. 여자는 약자의 소리를 듣겠다고 이 직업을 택했지만 때론 약자의 도움을 받아 연명해 간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직업으로부터 '이 일, 여우같다'는 억지 이유를 붙여 멀어지려 했다. 당분간은 멀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여자는 그래도 이 직업을 사랑하니 하루 이틀 뚝딱 몇 년을 버텼다. 버티는 게 답이라면 엉망일 거라고 자신하던 초년생의 여자는 몇 번의 도전을 거쳐 오늘을 만들었다. 그 오늘, 최선일까를 매일같이 묻는 스스로의 질문에 여자는 다른 일로 대체했다. 운동을 하거나 걷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술을 마셨다. 다른 일을 해댔다. 청소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안 쓰는 것들을 정기적으로 내다 버렸다. 쓸고 닦고 몸을 돌보고 사람을 만나며 피해 다녔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여자가 바라던 모습 그대로 이뤄진 오늘은 아니라서, 여자는 다른 의미, 사명, 다른 길을 걷는 이유 따위의 것을 찾다가, 초기의 자신을 오롯이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1퍼센트의 생각이 드는 날이면 다른 일을 해댔다. 정신없이 살아야 했다. 생각이 들지 않게. 떠오르지 않게.


# scene.02


여자는 약자를 함부로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약자는 누구인가. 상대적 정의인가. 상대적 정의는 무엇이 기준인가. 그 기준은 누가 내리는가. 정의가 있다면 그것의 정당성 여부는 어떤 다수결이 내린 결론인가. 여자는 갸우뚱했다. 상황에 따라 약자와 강자는 쉽게 갈렸다. 쉽게 갈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어릴 적 어른들이 하던 말, 도덕 교과서에 적혔던 말들이, 얼마간은 사실이라는 걸 마침내 인정했다. 세상은 구조다. 정말 다양한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일부분 묶어 정의하고 사회 구조적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일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그럴지도 모른다는 걸, 여자는 이제서야 조금씩 깨달았다.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배웠던 사람과 계속 배우는 사람, 경계하던 사람과 느슨해진 사람, 기타 등등의 분류, 순간의 선택들은 사람들을 다양하게 갈랐다. 그 가름이란 것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여자는, 세상에 그런 가름 따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마침내 조금 받아들였다. 나이브했던 여자는, 성장하길 거부하던 여자는, 어떠한 어른의 형태에 속해가고 있었다.


# scene.03


세상엔 무서운 일투성이였다. 일기를 쓰고, 사진을 찍는 등 과거보다 두려움을 많이 내려놓은 여자다. 아무 이유 없었다. 어떠한 형태의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일견 프레임 등에 갇혀 해석되는 걸 여자는 바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는 아주 조금은 두려움을 걷어냈다. 홀로 서야했던 세상에서, 여자는 자신을 조금은 드러내야 했다. 그것마저 폐쇄적이라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속내를 알 수 없다, 왜 이리 웃느냐, 너무 행복해 보여서 괴롭히고 싶다는둥의 피드백들을 들어야 했으나 그게 여자였다. 꾸민 게 아니라 정말 즐거웠으니 여자는 뭐 달리 할 말이 이젠 없었다. 과거엔 의심에 지쳤지만 여자는 지치는데 지쳤다. 그러니 행복하면 웃고 그걸 의심하는 이와는 멀어지려 하거나 왜 그러는지 떠드는 걸 들어나 준다. 행복해보이는 게 싫다면 숨겨준다. 그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니까.


# scene.04


여자는 어설픈 힘을 가진 이가 더 무섭다는 걸 깨달았다. 여자는 상처받는 일에 익숙했다. 여자가 하는 일은 매일 거절당하고 제안을 하고 다시 굴하지 않고 제안하는 일이었다. 과정에서 상냥하고 신중하며 예의있는 태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여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취재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했고 실천했다. 그리 들어왔다. 그러다 보면 1년에 손을 꼽을 정도로 가끔 소위 말하는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분노를 표출하는 분류의 이러한 인간은, 자신의 화를 풀 대상을 찾아다닌다. 여자는 다른 이의 선택적 필요에 의해 여자의 진심을 오해받는 순간, 선의였던 일들이 여자에게 큰 상처로 돌아올 때 여자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상하다', '싫다' 따위의 감정이 아닌, '두렵다'였다. 여자는 인간이 두려웠다. 100명의 좋은 사람을 만나도 1명의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100명의 좋은 사람들마저 두려워졌다.


# scene.05


대개 전화나 만나서 인사를 하거나 등에서부터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이 사람, 일을 안해봤구나', '이 사람, 이런 일을 처리할줄 몰라 되레 자신이 화를 내거나 부침을 느끼겠구나', '일방적으로 박탈감을 느껴 표출하겠구나' 등이다. 그렇다고 '안녕히 계세요' 또는 '잘못 걸었어요' 할 수 없다. 우리 일은 그렇다. 그러니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이고 매일 긴장의 연속이다. 여자는 매일같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푹 빠져 일하고 잠깐 빠져나왔다가 다시 일한다. 매일같이 밤을 새우며 일을 한다. 이것저것 챙기느라 탄력적인 일상을 운영하고 있지만 때론 번아웃이 온다. 모든 건 사람에서 온다. 진심을 오해받는 순간, 여자는 '약자'의 탈을 쓴 '일상의 숨은 강자'들에 '싫다'는 감정 또는 두려움을 느낀다. 약해빠진 인간이라. 아직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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