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로 쓰는 앎Arm Feb 21. 2020

선한 거짓말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은 금세 좋아진다. 일상을 영위하면서 기쁘게, 행복하게, 마냥 밝게 가면을 쓰고는 하하 호호 웃는 증후군에 걸려버린 인간 1에겐, 쉬는 날 하루 없이 매일 인간과의 새로운 교류를 이어나가는 역할을 하다보면, 새벽에 앉아 키보드를 도닥이지 않고는 조금은 공허한 날이 생긴다. 금세 털어내 버릴 기분이지만 잊기 싫으니 굳이 일기를 쓴다. 잊기 싫다는 건, 이 감정이 싫다는 건 아니다. 나로 살면서 익숙해져야 하는 감정들이기 때문에 쓴다. 익숙해져야 하나? 생각을 하던 때는 지났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순간을 살면 된다. 그러니 쓴다. 완전히 평온한 상태를 위해, 오롯이 마음에 집중해 굳이 남은 찌꺼기들을 집어내 올린다. 물에 흩뿌린다.


가끔 지치면 어두운 방 안에서 깊이 침잠한다. 침잠하다 보면 마침내 바닥을 딛고 다시 튀어 오른다. 서서히 올라간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다. 그저 일어나는 일.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린 일. 가끔 한 번은 있는 일. 인간은 혼자 사는 걸 일찍이 깨달아 버린 이상, 예전부터 읊조리던 말이지만, 나 자신을 제일 잘 알고 나와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 평생을 의지할 건 결국 나 자신이니까. 예전엔 조금 결연하게 이런 말을 속에 대고 했다면, 혹은반포기 상태로 했다면, 지금은 그냥 평온하게, 당연한 일을 받아들이듯 말한다. 같은 내용, 같은 의도, 의지지만 조금은 결이 달라졌다. 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과거의 내가 물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내가 기록하긴 그래. 미세하게.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마음은 세상의 혼란으로 접히고, 어디든 떠나기로 했던 마음은 여러 이슈로 접히고. 그러다 보면 그냥 현실에 다시 침잠해 받아들인 후 수년 후를 기약한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의 나도 물론 행복하고 충만하지만, 언젠가는, 떠나고 싶다. 그러니 나는 지금을 살면서 허덕이도 지쳤고 피곤하며 귀찮다고 생각과 말은 하면서도 할 일을 무한대로 해내고는 곧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잠시 나를 속여 보는 것이다. 속인다니. 어쩌면 이것은 진실이다. 나는 떠날 것이다. 그러니 속이는 건 아니라, 그저 미래의 일을 앞당겨 읊조려 보는 행위일뿐. 인간은 나약하니 홀로 서려면 이러한 가짜 당근도 필요하다. 힘든 일이겠지만, 물론 떠날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하면 또 힘들겠지만, 뭐든 현실이 되면 힘들 수 있으니, 그래도 나는 충만하게 행복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나란 인간은 무엇이든 손 놓고 있으면 더 불편해 하는 인간이니까. 뭐든 해야 하니까.


어쩌면 과거보다는 삶을 즐기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가끔이지만 일기를 쓴다. 가끔 평온하다. 평정심을 가진 인간인 체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태생이 밝아보이는 지라 가만히 있으면 오해를 사 그것이 싫어 가면을 쓰는 게 익숙해졌는데, 최근의 나는 그런 오해쯤 어떠냐는 듯 버틸 여유, 지위, 직책 같은 게 생긴 덕분인지 혹은 시간의 흐름 덕분인지, 아쉬울 게 예전보다 없는 건지, 아니, 그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면을 쓰는 일에 익숙하고 기꺼이 쓰니까. 순간에 취해 행복한 체할 수 있는 인간이니까. 그게 싫다고 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게 설계된 인간이니까. 그냥 지쳐서는 언젠가 떠나자고 나를 위로하면서 어쩐지 가벼워진 마음으로, 현재 기준으로는 참 선한 거짓말을 내게 해주는 것이다. 언젠가는 실현될 거니까. 거짓은 아니다. 참말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가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