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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Jul 22. 2020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씁쓸한 일이 이어졌다. 회사서 급하게 뽑은 막내는 마음에 안 들었다. 껍데기만 막내지 내게 다가와 나와 동기로 묶이려 들어 어처구니 없어 대꾸하지 않았다. 듣자하니 경력을 속이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개기는 모양이었다. 극초반, 나라도 가서 고쳐주라는 얘기가 들렸으나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폐쇄적 조직에선 괜히 나서다 덤터기 쓰니까. 게다가, 별 것 아닌 것가지고 과장되었을지도 모르니 지켜보자는 판단이었다. 일하기도 바쁜데 속시끄러운 일이 이어졌다. 코로나19로 회사는 긴축정책에 들어갔고 전망도 밝지 않다. 다른 이의 유책으로 내 결과물에 손해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러려니'로 보아 넘길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일이 되었다. 어른이 된 건지 내가 지친 건지 근육이 늘어난 건지 알 길이 없다. 포기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조직에 대한 기대, 이 직군에 대한 기대, 나아질 거란 믿음 등은 매일 배반당했다.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최선책이며 주의를 돌릴 곳은 많았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바빠서 나는 스트레스들을 유연하게 조절했다. 당장 해야할 일이 많으니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건 꽤나 도움이 된다.


끌어오던 것 중 하나를 잠시 쉬는 기간이 되고 나니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지난주부터일까. 잠을 자면 어김없이 악몽을 꾸는 날이 이어졌다. 운동을 하고 돌아와도 마찬가지였다. 격하게 운동량을 늘리니 하루 나아졌다가 다시 적응했는지 또 꿈을 꾸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여유가 생겨 기뻤다. 평소라면 깨어있는 시간에 겪어야 했을 고통들이 꿈 속으로 돌아와 '고통 총량의 법칙'을 완성하려 애를 쓰는 기분이 들었다. 잠겨있던 트라우마가 순서대로 찾아왔다. 바쁘다고 고맙게도 잊었던 것들이 다가오자 꿈인 것도 모르고 나는 전력을 다해 싸웠다. 꿈 속에서조차 혼자 스트레스 받으며 고군분투했다. 소리내어 싸우지 못하고 그냥 스트레스만 극단으로 받았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 깨고나면 '꿈이구나' 하고 잠들기를 일쑤였다.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렵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내가 원한 것은 돈이 아니다. 명예도 아니다. 그저 내 초심에 어울리는 일일뿐이다. 나를 실망시키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지나친 완벽주의는 버리자고 다짐한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나는 연이어 실망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실망하지 않았다가, 다시 선 넘는 실망을 맛보다가, 그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상황 탓이다. 운도 실력이다. 별 소리가 머리를 채웠다. 차가운 머리를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을 끄집어내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연달아 악몽을 꾸면서 나는 내 마음의 불안을 생각했다. 뭐가 잘못되었으니 악몽을 꾸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그 원인을 고쳐보자고 결심했다. 많은 걸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오랜만에 친구 A를 만났다. 좋지 않은 장소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오래 만난 친구는 많이 변해 있었다. 선 자리가 달라지면 사람은 달라진다는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언젠가 선배 B는 말했다. '특히 여자들은 결혼하면 친구가 없어진다. 용쓰지 말라.' 그 말이 아프게 다가오는 날이었다. 친구의 남자친구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졌는데, 직업마저 수상했다.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선 넘는 발언일까봐 나는 꾹꾹 참느라, 온 대화가 스트레스였다. 아끼는 친구가 그런 남자를 만난다는 것부터 화가 났지만 눌렀다. 언젠가 친구는 그런 남자를 만났다가 내 말을 듣고 생각을 하다가 아버지께 보였다가, 결국 아버지 덕(?)에 이별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의 아버지를 믿어보기로 했다(?). 오지랖도 유분수다 싶어서. 나는 가뜩이나 사라지는 친구 중, 소중한 남은 이들 곁에 왜 나쁜 이들이 꼬이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눈에 뻔히 보이는 누군가의 거짓과 수작질이, 왜 친구에겐 수년간 유독 안 보이는지 궁금해 했지만, 그냥 '푹 빠졌나보다' 하고 말았다.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으면 속이 상했으니까. 말 끝마다 '오빠가~' 하며 자신의 생각은 0이 되고 '그 오빠'의 생각이 100이 된 친구의 공허한 이야기들이 나를 울렸다.


요즘 나는 딥해져서는, 대체로 그냥 누구를 만나도 행복하지 않다. 사랑하는 그를 만나는 시간, 사랑하는 누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그냥 숨만 쉬고 있다. 숨을 쉬고 할 걸 하고, 뭐든 느끼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슬프다. 어렸던 나는 뭐를 바랐을까. 전력을 다한 후 남은 이 공허함에 대해서, '기쁨으로 채워야지' 했으나 '악몽'만 가득한 이 현실에서, 나는 왜, 무엇을 바라기에, 뭐가 틀렸다고 생각하기에, 풀어야 할 어떤 과제가 남았기에 마음이 이리도 요동치는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질투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대체 어떤 길을 가겠다고 이리도 버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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