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직업이 좋은 건 발전하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는 거다. 나아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한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맞나? 발전하고 있나? 제자리 걸음은 아닌가? 아니, 퇴보하진 않았나?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스스로에 대한 감시도 끊이질 않는다. 적절한 소비인가? 적절한 대사인가? 적절한 등장인가? 어디서나 이목을 끄는 탓에 과하게 조심하는 것도 습관이다. 그냥 어딜 가질 않는다. 귀찮은 말들이 들리고 지어낸 말들이 오가는 게 싫기 때문이다. 그냥 등장 자체를 않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한다. 쓸데없는 모임 같은 걸 피하는 게 오래된 건 그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관심, 로맨스, 지어내는 말들. 사절이다.
스스로는 그렇게 일-집 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데 (물론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이 있지만 그런 맥락이 아니다.) 선배가 말했다. 왜 그러고 사니. 너처럼 재미없게 사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그 얘기만 몇 번인지. 사람들의 기대 어린 눈빛에 실망을 주기도 부지기수다. 아, 뭔가 색다른 걸 기대했는데. 네? 그런 거 없다. 나는 그냥 일하고 혼자 운동하고 바다 보고 기구 타고 걷는 게 좋다. 집에 있는 것도 좋다. 이 평화를 깨는 일은 사절이다. 안 그래도 일하면서 잠깐 스친 이들이 말같잖은 루머 지어내는 것도 지겨운데 내가 사서 루머를 집에 들이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은 못됐다.
별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지만 인간중 자신의 잘못을 알고 반성하는 이는 꽤나 드물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일을 한 덕분인지 탓인지. 덕이라고 하자. 말 바꾸는 게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고 나이를 막론하고 입에 거품 물고 자기에게 과분한 걸 얻기 위해 아집을 부리며 그저 힘만 좇는다. 그런 인간들이 태반이라는 걸 알아버린 이상 더 재미없게 살 수밖에 없다. 세상이란 곳이 참 다단계 같은 곳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이제야 알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모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냥 모르면 좋을 것들이 태반인 이 곳에선 더 재미없게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건조한 내 삶이 재미없지 않으니. 그걸로 됐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