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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Sep 28. 2024

가벼운 것들

이젠 힘든 일이 생기면 기대돼서 견디기 어렵다. 내일 당장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럴까? 매일같이 모멸감을 견딘다. 치욕스러운 경험들이 이어진다. 살면서 이런 치욕을 견딘 적이 있을까? 있지만 결이 다르다. 뭐가 다르냐면, 이 치욕스러움은 마음을 갈기갈기 찢지만 흔적을 남기진 않는다는 거다. 어떠한 흔적도 없다. 덤덤하다. 아마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내게 NPC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런 이들에 의해 상처를 받진 않는다. 이렇게 쓰면 "뭔가 받았으니 적겠지" 싶은 부분도 있다는 걸 알지만, 놀랍게도 우스운 마음이 더 크다. 우습고 가볍다. 지나치게 가벼워서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저 그 얕음에 감탄할 뿐이다. 어쩜 이렇게 예상대로 움직일까.


가벼운 것들에 마음을 쓰기엔 너무 지쳤나보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큰가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히려 좋아"에 중독된 삶의 모토 덕일 거다. "아, 오늘 좀 많이 모욕적이고 힘드네" 하면 "밖에서 좋은 일이 얼마나 있으려고 이럴까" 싶어 기대되는 이상한 순환에 중독됐다. 치욕스럽고, 모멸감을 느끼는 이 날들이 나의 다른 장면에 얼마나 아름다운 거름으로 남을까.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며 "그 때 참 유치했어. 그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웃겼어. 나름 웃겼어." 하고 그저 한 줄로 정리할 걸 아니 더 그렇다.


그제, 어떤 만남에서 대화를 하는데 그 어떤 모멸감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멸감을 겪는 언론환경에 있다는 건 달라진 게 없지만, 그냥 알아주는 사람이랑 있으니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의 선배와 동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오늘 아침엔, 그간 나를 지켜준 사람들 덕분에 용케 버텼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며 걸었다. 사실 자주 생각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함께 견뎌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안다. 치열하게 혼자일 때도, 그래도 그나마라도 덜 혼자일 수 있게 지켜준 사람들이 있던 걸 안다.


그런 걸 다 잃어버리고, 내 손으로 잘 가라고 떠밀고는 온 지금, 난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나? 알 수 없다. 난 정말 알 수 없다. 좋다는 걸 걷어차고 왜 이럴까? 동기 A랑 카톡을 하는데, 스카우트 제안에 고민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A는 멋진 기자인데,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고, 내 자신에게 놀랐다. 뭐가 놀라웠냐 하면, 초심과 꿈이란 것에 취해 멍청한 선택들을 해온 게 아닐까 하는 관점으로 나를 보게 돼서 놀랐다. 선택의 무게는 내가 짊어지는 것이다. 근데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괜찮다고 느낀다. 언제든 열린 문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 참, 모욕적인 날이었다. 그러나 가벼워 다행이다. 내일 얼마나 좋은 일로 갚아주려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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