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힘든 일이 생기면 기대돼서 견디기 어렵다. 내일 당장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럴까? 매일같이 모멸감을 견딘다. 치욕스러운 경험들이 이어진다. 살면서 이런 치욕을 견딘 적이 있을까? 있지만 결이 다르다. 뭐가 다르냐면, 이 치욕스러움은 마음을 갈기갈기 찢지만 흔적을 남기진 않는다는 거다. 어떠한 흔적도 없다. 덤덤하다. 아마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내게 NPC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런 이들에 의해 상처를 받진 않는다. 이렇게 쓰면 "뭔가 받았으니 적겠지" 싶은 부분도 있다는 걸 알지만, 놀랍게도 우스운 마음이 더 크다. 우습고 가볍다. 지나치게 가벼워서 충격적이지도 않다. 그저 그 얕음에 감탄할 뿐이다. 어쩜 이렇게 예상대로 움직일까.
가벼운 것들에 마음을 쓰기엔 너무 지쳤나보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큰가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히려 좋아"에 중독된 삶의 모토 덕일 거다. "아, 오늘 좀 많이 모욕적이고 힘드네" 하면 "밖에서 좋은 일이 얼마나 있으려고 이럴까" 싶어 기대되는 이상한 순환에 중독됐다. 치욕스럽고, 모멸감을 느끼는 이 날들이 나의 다른 장면에 얼마나 아름다운 거름으로 남을까.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며 "그 때 참 유치했어. 그런 일을 겪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웃겼어. 나름 웃겼어." 하고 그저 한 줄로 정리할 걸 아니 더 그렇다.
그제, 어떤 만남에서 대화를 하는데 그 어떤 모멸감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멸감을 겪는 언론환경에 있다는 건 달라진 게 없지만, 그냥 알아주는 사람이랑 있으니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의 선배와 동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오늘 아침엔, 그간 나를 지켜준 사람들 덕분에 용케 버텼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며 걸었다. 사실 자주 생각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함께 견뎌주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안다. 치열하게 혼자일 때도, 그래도 그나마라도 덜 혼자일 수 있게 지켜준 사람들이 있던 걸 안다.
그런 걸 다 잃어버리고, 내 손으로 잘 가라고 떠밀고는 온 지금, 난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나? 알 수 없다. 난 정말 알 수 없다. 좋다는 걸 걷어차고 왜 이럴까? 동기 A랑 카톡을 하는데, 스카우트 제안에 고민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A는 멋진 기자인데,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고, 내 자신에게 놀랐다. 뭐가 놀라웠냐 하면, 초심과 꿈이란 것에 취해 멍청한 선택들을 해온 게 아닐까 하는 관점으로 나를 보게 돼서 놀랐다. 선택의 무게는 내가 짊어지는 것이다. 근데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괜찮다고 느낀다. 언제든 열린 문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 참, 모욕적인 날이었다. 그러나 가벼워 다행이다. 내일 얼마나 좋은 일로 갚아주려나. 기대가 된다.